있는 그대로가 통했다

우리의 건축은 아직 눈치를 보고 있는가

by 건축가 김성훈
대성.png 코첼라에서 당당하게 한국말로 본인을 소개하고, 트롯을 불러버린 빅뱅의 대성

코첼라의 밤, 빅뱅의 대성이 무대에 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음악 축제. 수만 명의 외국인 관객. 그는 거기서 순 한국말로만 구성된 트로트를 불렀다. 영어 한 마디 없이. 번역 자막 한 줄 없이. 심지어 설명도 없이.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트로트를? 코첼라에서? 이게 통하겠어?" 하지만 그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자기가 가장 자기답다고 믿는 것을, 그 기세로 그냥 밀어붙였다. 계산하지 않았다. 세계 시장에 맞게 다듬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이었다.

그리고 통했다.

며칠 전, BTS는 아리랑을 컨셉으로 한 새 앨범을 냈다. 빌보드 1위였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런 말이 돌았다. "너무 상업화됐다. 이제 한국 음악이라고 보기 힘들다." 한국성을 앞세웠는데 오히려 한국성을 잃었다는 역설. 더 많이 계산할수록 더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두 사람 모두 틀렸다고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코첼라의 그 밤, 대성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분명했다.

있는 그대로가 통했다. 눈치 보지 않는 것, 그 자체가 힘이었다.

광화문에서 열린 오징어 게임_한국경제.jpg 오징어게임의 열풍에서 보여준 있는 그대로의 한국의 놀이는 세계에 통했다. <출처: 한국경제>

오징어게임을 생각해보자.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콘텐츠. 그런데 그 안에 뭐가 있었나. 달고나. 구슬치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골목에서 했던 것들이다. 세계 시장을 겨냥해 기획한 콘텐츠가 아니었다. 한국의 가장 로컬한 기억을, 있는 그대로 올려놨을 뿐이다. 설명하지 않았다. 번역하지 않았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도 마찬가지다. K팝 아이돌과 한국 무속 세계관을 아무 거리낌 없이 섞었다. 서양 장르 문법에 끼워 맞추지 않았다. 한국의 로컬한 정서와 신화를 있는 그대로 들이밀었다. 외국인들은 그것을 보면서 열광했다. 왜 열광하는지 설명하지 못하면서.

그렇다면 나는 여기서 건축가로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건축은 지금 있는 그대로인가. 아니면 아직도 눈치를 보고 있는가.


고성 햇살마루.jpg LH 임대주택, 햇살마루! 나 역시 건축가로서 처마, 한국전통 띠살 등의 한국성을 건축에 담을려고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한국 건축계가 오랫동안 씨름해온 방식은 크게 세 갈래였다.

청기와, 단청, 처마 곡선을 현대 건물에 얹는 것. 형태의 인용이다. 그러나 이것은 코첼라 무대에서 갓을 쓰고 나와 팝송을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기호는 한국적이지만, 감각은 한국적이지 않다.

글로벌 건축 문법을 완벽하게 따르되 어딘가에 한국적 요소를 슬쩍 끼워 넣는 것. 세련됐지만, 번역된 트로트처럼 무언가 핵심이 빠져 있다.

혹은, 서울의 압축 성장 자체가 한국성이라는 시각. 50년 만에 폐허에서 미래도시를 일군 역동성. 이것은 진짜이고 강력하다. 하지만 속도와 밀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여전히 남는다.

세 가지 모두 틀리지 않는다. 그래서 더 어렵다.


나는 지역 프로젝트를 자주 한다.

진도, 부안, 인제, 진주. 서울에서 벗어나 지방의 땅을 밟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이 나라 구석구석에는 아직 건드리지 않은, 아니 어쩌면 아직 제대로 발견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야말로, 어떤 정교한 설계보다 강하게 공간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전남 진도가 그랬다.

매년 봄, 진도와 앞섬 모도 사이의 바다가 갈라진다. 외신들은 이것을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 바닷길에는 그보다 훨씬 오래된 이야기가 있다.

아주 옛날, 호랑이를 피해 마을 사람들이 모도로 피신했고, 뽕할머니 한 명만 홀로 남겨졌다. 가족도, 이웃도 없는 자리에서 그녀는 용왕님께 간절히 빌었다. 그날 밤 꿈에 용왕이 나타나 말했다. "아침에 무지개가 뜨면 바다를 건너라." 이튿날 아침, 바다가 열렸다.

서양의 시각으로 보면 조수간만의 자연 현상이다. 과학으로 설명 가능하고, 관광 자원으로 개발 가능한 콘텐츠다. 그래서 외신들은 가장 익숙한 서사로 번역했다. 모세의 기적.

그러나 한국인들은 그 바닷길을 뽕할머니의 간절함으로 기억한다. 자연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가 공간을 열었다고 믿는다.

형태가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공간을 완성한다.

진도만이 아니다. 부안 줄포만의 갯벌에는 오랜 어부들의 삶이 켜켜이 쌓여 있고, 인제 용대리에는 황태 덕장의 겨울 냄새가 그 자체로 하나의 공간이다. 지역마다, 마을마다, 골목마다 이런 이야기들이 잠들어 있다. 아직 건축의 언어로 깨워지지 않은 채.

그것이 있는 그대로다. 그리고 그 있는 그대로가 가장 강하다.


익선동 한옥거리.jpg 익선동 한옥거리, 골목과 시간과 장소를 동시에 보여주는 바로 우리의 <건축,공간>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건축과 도시에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공간에 담고 있는가. 그 이야기는 있는 그대로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눈치를 본 번역본인가.

우리에겐 이미 그 언어가 있다.

설계된 적 없이 사람이 다니다 생긴 골목이 있다. 서울 익선동과 을지로가 전 세계 여행자를 끌어당기는 것은 완성도 때문이 아니라, 그 비완성의 층위 때문이다. 허가도 고정도 없는 포장마차가 있다. 그 임시의 자리에서 오히려 가장 깊은 정(情)이 쌓인다. 비어 있어서 모든 이야기를 받아내는 마당이 있다. 온돌의 뜨거운 밀착과 마루의 시원한 통풍, 그 극단의 공존이 있다. 그리고 뽕할머니처럼, 이 땅 구석구석에 잠들어 있는 수천 개의 지역 이야기가 있다.

이것을 현대의 언어로 옮기는 것. 재현이 아니라 재해석으로. 설명이 아니라 경험으로. 눈치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대성처럼 그 기세로 밀어붙이는 것으로.

그것이 가장 한국적인 건축이 가야 할 방향이라고, 나는 점점 더 확신하게 된다.


코첼라의 관객들은 트로트의 가사를 몰랐다. 오징어게임을 본 세계인들은 달고나를 뽑아본 적이 없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열광한 시청자들은 한국 무속의 맥락을 모른다.

그런데 모두 통했다.

번역되지 않은 감각, 설명되지 않은 정서가 오히려 더 깊이 닿는 순간이 있다. 있는 그대로였기 때문에 닿은 것이다.


가장 로컬한 것이 가장 글로벌하다. 나는 오랫동안 이것을 믿어왔다.

이제 그 믿음을, 이 땅 구석구석의 이야기를 안고, 설계의 언어로 옮길 차례다. 눈치 보지 않고.



작가는 지속가능한, 오래 남을 공간을 고민하며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건축가입니다.

건축가의 건축과 공간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litt.ly/geeum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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