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브즈』와 『린치핀』 , 두 책이 건축가에게 말을 걸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참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 있다.
세스 고딘의 『트라이브즈』와 『린치핀』이 내게 그랬다. 그는 '마케팅의 대가'라 불리지만, 나는 이 두 권에서 마케팅 이야기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무언가를 읽었다. 변화와 불확실성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고유한 자리를 만들어 가는지에 대한, 아주 오래되고 아주 새로운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나를 데려갔다.
건축가로서 나 자신에 대한 질문으로.
'건축가(建築家)'라는 단어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어 *아키텍톤(arkhitekton)에 닿는다. "arkhi"는 '으뜸, 우두머리', "tekton"은 '만드는 사람, 장인'이라는 뜻이다. 건축가란, 직역하자면 '만드는 사람들 중의 우두머리'다.
도면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짓는 행위 전체를 이끄는 사람.
나는 이 직업이 좋다. 진심으로.
파리에서 13년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유럽과 한국의 건축가를 둘러싼 사회적·경제적 환경이 다르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차이가 이 일의 본질을 바꾸지는 않는다. 어느 땅에서든, 건축가는 사람의 삶을 공간으로 번역하는 사람이다. 누군가의 꿈을 현실의 벽돌과 빛으로 구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완성될 때, 그 공간에서 사람들이 살고 웃고 일하고 쉬는 것을 볼 때, 이 직업만큼 큰 보람을 주는 일이 얼마나 될까 싶다.
니체는 말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어려운 환경은 나를 더 단단하게 벼렸다. 더 창의적으로, 더 예민하게, 더 본질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 그것에 감사한다.
‘트라이브(부족)’란 공통의 열정과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의미한다. 트라이브즈에서 고딘이 말하는 '트라이브'는 단순한 팬 집단이나 조직이 아니다. 공통의 열정과 가치로 연결된 공동체다. 그리고 그 공동체를 이끄는 리더는 반드시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일 필요가 없다. 다만 먼저 믿고, 먼저 움직이고, 먼저 연결해야 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나의 현장을 떠올렸다.
하나의 건물이 완성되기까지 수십 명의 사람이 움직인다. 건축주, 시공사, 구조 엔지니어, 설비 기술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조경가, 지자체 담당자… 이 모두가 서로 다른 언어와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 그것이 건축가의 리더십이다.
그런데 이 리더십은 권위에서 나오지 않는다. 신뢰에서 나온다.
나를 믿어주는 건축주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협력 파트너들, 함께 고민해온 동료들. 그들이 바로 내 트라이브다. 건축주가 예산 이야기를 꺼낼 때, 시공사가 난색을 표할 때, 지역 주민이 불안해할 때, 그 모든 순간에 건축가가 먼저 귀를 열고, 먼저 언어를 맞추고, 먼저 손을 내미는 것. 그 축적이 신뢰가 되고, 신뢰가 트라이브를 만든다.
그리고 이것은 건축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지금 건축 설계와 함께 문화기획, 도시재생, 지역 컨설팅에도 발을 담그고 있다.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공간을 구상하고, 흩어진 자원을 엮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지속가능한 도시의 밑그림을 그린다. 이 모든 프로젝트에서 나는 같은 질문과 마주한다.
누구와 함께, 무엇을 향해 가는가.
그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 바로 리더십이고, 그 답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트라이브다.
‘린치핀’은 기계 부품 중 핵심 연결 고리를 뜻하며, 조직 내 없어서는 안 될 존재를 의미한다.
린치핀은 더 날카롭다. 저자는 말하낟. 평균적인 일을 평균적으로 해내는 사람은 머지않아 대체된다. 살아남는 것은 '린치핀' 수레바퀴가 굴러가게 하는 그 작은 핀, 없으면 전체가 무너지는 존재다.
요즘 건축계에도 AI 바람이 거세다. 몇 가지 조건을 입력하면 순식간에 평면도와 입면도를 뽑아내는 시대다. 일부에서는 "건축가도 결국 AI에 대체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나는 이 질문에 단호하게 답한다. 겁낼 필요 없다고.
AI는 도구다. 강력하고 유용한 도구이지만, 도구는 도구다. 망치가 등장해도 목수가 사라지지 않았듯, AI가 도면을 그려도 건축가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 도구를 능숙하게 활용하면서, AI가 절대 할 수 없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한다.
이 땅의 결, 이 도시의 기억, 이 사람의 삶을 읽어내고 공간이라는 언어로 번역하는 능력. 건축주의 말 뒤에 숨은 진짜 욕망을 꺼내는 감각.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현장에서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내는 지혜. 이것은 매뉴얼이 아닌 판단이고, 규칙이 아닌 감각이며, 효율이 아닌 의미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건축주는 늘 예산의 벽 앞에 서 있다. 공공 프로젝트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법규는 상상력의 발목을 잡는다. 민간 건축에서는 클라이언트의 경제적 가치를, 공공 건축에서는 지역 사회 전체의 공공 가치를 동시에 실현해야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바로 그 제약의 한가운데서 창의성이 태어난다.
한계가 없다면 해법도 없다. 문제가 없다면 건축가도 필요 없다. 나는 그 긴장감을 즐긴다. 예산과 현실의 압력 속에서 새로운 공간적 가능성을 발견하는 그 순간을. 지음플러스에서 'Make Plus'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이 길을 걷는 이유도 거기 있다. 설계를 넘어, 지역의 이야기를 담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고, 문화와 도시재생의 층위에서 더 큰 가치를 만드는 일. 작은 공간 하나가,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나아가 도시와 지역을 바꾼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이 내가 이 직업을 사랑하는 이유다.
리더십은 직함이 아니다. 먼저 나서는 태도다.
린치핀은 천재가 아니다. 진심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공감과 진정성으로 관계를 쌓고, 창의성과 용기로 문제를 헤쳐나가며, 자신만의 트라이브를 키워가는 것. 그것이 이 시대 건축가가 가져야 할 리더십의 모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건축가다. 공간을 통해 사람의 삶을 조금 더 아름답고, 조금 더 편안하고, 조금 더 의미 있게 만드는 사람. 그리고 그 한 땀 한 땀이 모여 이 세상을 조금씩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간다고 믿는 사람.
이 직업이 좋다. 오늘도, 내일도.
작가는 지속가능한, 오래 남을 공간을 고민하며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건축가입니다.
건축가의 건축과 공간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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