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으로 짓고 '즐거운 지속가능성'으로 채우다
최근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역동적인 시대의 한복판에 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 소식과 함께, 드라마, 음악을 넘어 스포츠 분야에서도 전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그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기운 속에서 연휴 기간 동안 한국을 찾은 수많은 외국인들의 모습은 K-콘텐츠가 만들어낸 한국 거리의 인기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선 현상임을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정작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 공간들을 행복하고 좋은 공간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러한 공간들이 단발적인 유행을 넘어, 지속적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나는 이러한 물음을 던지며 한층 높아진 사회적 지위와 더불어 삶의 가치를 되짚어보는 흐름을 마주한다. 나는 이 시기에 스포츠 스타 김연경 선수의 신인 감독 도전이라는 예능에서 특별한 의미를 발견했다. 화려했던 선수 시절을 뒤로하고 초보 감독으로서 고군분투하는 그녀의 모습뿐만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선수들의 진솔한 성장 이야기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이다. 가식적이고 자극적인 내용보다는, 실패를 딛고 함께 성장하며 기뻐하고 웃는 삶의 진솔한 모습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가 간절히 찾는 가치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콘텐츠에 열광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흔히 해외 드라마들이 처음부터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불륜 코드로 가득 차 있다면, 한국 드라마는 마치 청소년의 첫사랑처럼 풋풋하고 진솔한 관계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드라마 속에서 인물들이 겪는 내면의 갈등과 성장이 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전체적인 분위기는 빠르게 변하고 예측 불가능한 시대 속에서 사람들이 의지할 만한 것, 즉 진실되고 꾸밈없는 서사를 갈구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진정성'은 단순한 겉모습을 넘어, 우리 삶의 뿌리와 본질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간절히 찾는 이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건축은 어떻게 담아내야 할까. 나는 건축 또한 이러한 시대정신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건축은 단순히 물리적인 기능을 넘어, '시간을 담아내는 서사'를 가져야 한다. 일회성으로 쉽게 사라지거나 유행에만 민감하게 반응하여 금세 낡아버리는 '힙한' 공간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며 끊임없는 시간의 연속성을 가진 공간이어야 한다. 단순한 외형적 아름다움이나 기능적 효율성을 넘어, 그 공간에 스민 시간의 깊이와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진정성 있는 서사를 담아낸 건축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공간에 가치를 부여하고 오래 머물고 싶게 만드는 매력을 선사한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가치를 느끼고 마음이 움직이는 공간이라면, 그들은 그 공간을 아끼고 사랑하며, 스스로 찾아와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내고자 할 것이다. 나는 바로 이런 힘이 도시의 시간적, 유산적, 문화적, 환경적 가치를 풍요롭게 하는 진정한 '지속가능성'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지속가능성은 절제나 불편함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워야' 한다. 도시가 지닌 소중한 가치들이 사람들의 감성과 함께 지속되며 즐거운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바로 '즐거운 지속가능성(Hedonistic Sustainability)'이 의미하는 바이다. 즉, 매력적인 콘텐츠와 즐거운 경험을 통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환경, 문화와 상생의 가치를 체감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즐거운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진정성 있는 건축은 특정 세대나 취향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세대들이 함께 어우러지고 추억을 만들어갈 수 있는 포용적인 공간이어야 한다. 찾는 모든 이들의 감정을 보듬고, 그들이 공간과 상호작용하며 우리들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공간 말이다.
우리는 이제 '어떤 건축이 진정성과 즐거움이 있는 건축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다. 획일적인 효율성이나 시각적 자극만을 좇는 것을 넘어, 우리 도시의 깊은 시간과 문화 그리고 환경을 존중하고 이를 바탕으로 모두에게 즐거운 지속가능성을 선사하는 건축은 어떤 모습일까.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나의 구체적인 생각과 건축적 방향들을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한다. 이 시대가 갈망하는 진정성 있는 공간을 위해 우리 건축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