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불수교 140주년 새로운 공생

한국의 위상 변화와 한불 도시건축 문화의 새로운 만남

by 건축가 김성훈

프랑스의 익숙한 거리에서, 나는 10여 년이 넘게 건축가로 사는 삶과 아이들의 부모로서의 삶을 동시에 살았다. 그 기간 나의 아이들도 그 땅에서 태어났으니, 프랑스는 나에게 단순히 유학이나 직장의 공간을 넘어, 삶의 깊은 뿌리를 내린 또 하나의 고향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프랑스에서의 10년을 넘게 보내며 나는 한국과 프랑스의 도시, 건축, 그리고 문화를 늘 비교하고 고민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하였다. 두 나라의 차이와 공통점을 피부로 느끼는 과정은 나의 건축적 시야를 넓혀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바로 내년은 한불수교 140주년을 맞는 의미 깊은 해가 된다.

한불수교 140주년.jpg 한불수교 140주년 포스터

역사를 돌아보며: 아픈 과거에서 찬란한 현재로


한불수교의 역사는 병인양요라는 가슴 아픈 사건, 천주교인들의 순교와 관련된 좋지 않은 관계로 시작되었다. 당시 우리나라가 힘이 없었고, 그 아픔은 나에게도 오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내가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시절(2006년, 한불수교 120주년), 프랑스 사람들이 나의 국적을 물어보면, 초반에는 단 한 번도 한국이라고 맞추지 못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말하면 "너가 왜 중국, 일본 사람도 아닌 한국인이야?", "한국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나라냐?", "혹시 북한이냐?"라고 되묻곤 하였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한국이라는 나라는 서구 사회에 그 존재감이 미미했음을 나는 온몸으로 체감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내년 14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한국의 위상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K-컬처는 전 세계를 휩쓸고 있으며, 수많은 한국 제품들은 고급화와 선진화를 통해 세계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다. 더는 한국은 지도에서 찾아야 하는 낯선 나라가 아니라, 많은 외국인이 찾아오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나라가 되었다. 최근 내가 파리에 가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먼저 한국말로 한국인이냐고 묻는,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일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나의 오랜 프랑스 생활은 이러한 한국의 변화를 누구보다 선명하게 목격하고 경험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 도시와 건축에서 길어 올린 통찰

나는 프랑스의 도시와 건축에서 ‘진정성’과 ‘시간적 가치’, 그리고 ‘유산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가 어떻게 사람들의 감성과 함께 즐거운 서사를 만들어내는지 깊이 배울 수 있었다. 그곳의 건축물들은 단순히 벽돌과 시멘트의 조합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거치며 쌓인 이야기가 담겨 있는 살아있는 역사였다. 특히, 프랑스 도시들이 단순히 새로운 장소를 만드는 것을 넘어, 사람들이 도시에 머무르며 일상을 소비할 이유와 명분을 어떻게 제공하는지에 대한 그들의 관점은 나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이는 내가 평소 고민하는 도시 계획 철학, 즉 ‘사람들에게 도시에 머무를 명분을 주는 도시’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었다. 프랑스 도시와 건축에서 마주했던 다양한 디자인적 접근과 도시를 바라보는 깊이 있는 통찰은 나의 디자인 철학인 ‘즐거운 지속가능성’과 ‘진정성’을 확고히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오래된 건축물이 그 역사와 흔적을 간직한 채 현재의 삶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으며, 지속가능한 미래 건축에 대한 나의 비전을 구체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한불 도시·건축문화, 140년을 넘어 새로운 공존과 발전의 길을 모색하다

이제는 프랑스의 문화를 무작정 받아들이는 사대주의적 태도를 넘어, 양국이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영유하며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각자의 장점을 결합하여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 시기가 온 것이다. 한불수교 140주년은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양국이 과거의 역사를 되짚고 현재의 위상을 확인하며, 미래를 향한 새로운 건축적 대화를 시작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진정성 있는 건축을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지속가능한 도시를 설계하여 미래 세대에게 더 나은 환경을 물려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건축가로서, 한국과 프랑스의 상호 존중과 협력을 통해, 더욱 풍요롭고 아름다운 도시와 건축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데 내가 작은 역할이나마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의 건축적 비전이 양국 국민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를 희망한다.

afex 방문.jpg 2024년 AFEX(French Architects for Export)의 방문은 한불 건축문화교류 기획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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