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같은 행복

'즐거운 지속가능성' 공간으로 채우는 행복의 빈도

by 건축가 김성훈


"행복은 무엇일까?" 건축가로서 오랫동안 이 질문을 던져왔다. 그 질문은 결국 내가 만들어가는 공간이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최근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을 통해 한 가지 놀라운 깨달음을 얻었다.

행복의 기 원.jpg 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아마 당신의 기억 속에도 있을 것이다. 쨍한 여름날, 얼굴 가득 땀방울을 매달고 먹던 달콤한 아이스크림의 순간. 혹은 사랑하는 이와 마주 앉아 나누어 먹던 한 스푼의 시원함. 누구나 유년의 행복한 기억이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 속에,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순간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달콤하지만 이내 녹아 사라져 버리는 그 찰나의 쾌감. 이 책은 행복이 바로 그 '아이스크림'과 같다고 말한다. 행복은 삶의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인간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진화의 산물이며, 그 본질은 '생존을 위한 쾌감'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행복의 진정한 비밀은 한 번의 강렬한 기쁨이 아니라, 삶의 매 순간 자주 맛보는 '빈도'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뇌는 행복을 느끼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이라는 원초적 본능을 따르도록 진화했다. 행복은 그 본능을 따랐을 때 주어지는 일종의 '보상'이다. 즉, 배고픔이 해소될 때, 안전을 느낄 때,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과 연결될 때, 우리는 본능적인 쾌감을 느끼고 그것을 행복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러한 쾌감은 '아이스크림'처럼 오래가지 않아 자꾸자꾸 다시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 통찰은 나의 건축 철학인 '즐거운 지속가능성'의 심장을 관통했다. 지속가능성이란 결코 지루하거나 불편한 희생이 아니다. 오히려 삶의 가장 원초적이고 즐거운 행복들을 끊임없이 제공하며 지속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이 된다고 믿는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거대하고 추상적인 행복만을 좇으며 지쳐간다. 그러나 우리의 공간은, 어쩌면 이 '아이스크림 같은 행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채워줄 수 있는 장치가 아닐까. 우리가 매일 발 딛고 살아가는 도시와 건축이, 어떻게 하면 이 찰나의 즐거움을 자주, 그리고 지속적으로 맛보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다.


본능의 초록빛 속삭임: 자연이라는 가장 오래된 행복 아이스크림

우리의 본능적 쾌감은 사실 지극히 단순한 곳에서 출발한다. 신선한 공기, 따스한 햇살, 졸졸 흐르는 물소리 같은 것들이다. 고층 빌딩 숲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수십만 년 동안 자연 속에서 살아온 우리 유전자가 여전히 '안전하고 푸른 공간'을 갈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의 기원'이 말하는 본능적인 쾌감은 바로 이런 자연과의 원초적 교감에서 비롯된다.

'즐거운 지속가능성' 건축은 이 점에 주목한다. 우리는 건물을 지으면서 자연을 배척하는 대신, 자연을 공간 안으로 끌어들인다. 바이오필릭 디자인처럼 실내 곳곳에 식물을 배치하고, 큰 창을 통해 햇살을 듬뿍 들인다. 물이 흐르는 소리,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만들고, 주변 조경과 건물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이것은 단지 예쁜 인테리어를 넘어선다. 잠시 복도를 지나는 순간 스치는 시원한 바람, 창밖으로 우거진 나무를 보며 느끼는 편안함, 비 오는 날 빗소리를 들으며 느끼는 아늑함. 이 모든 것이 크고 특별하진 않지만, 매 순간 우리에게 주어지는 작고 달콤한 '행복 아이스크림'이 된다. 이것은 한번 쓰고 버려지는 소모품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생되며 우리에게 쾌감을 선사하는 가장 지속 가능한 행복이다.


관계의 풍미: 사람과 사람을 엮는 공간의 따스함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깊은 행복을 느낀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만큼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먹는 그 즐거움이 크다고 책은 말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공간은 종종 효율과 프라이버시만을 강조하며, 오히려 사람들의 관계를 단절시키기도 한다. '아파트 문을 닫는 순간 우리는 단절된다'는 말처럼 말이다.

여기서 '즐거운 지속가능성' 건축은 '관계의 풍미'를 되살리는 역할을 한다. 내가 만드는 공간은 '우연한 만남'이 설계된 공간이다. 이웃과 스쳐 지나며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열린 복도, 잠시 멈춰 서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작은 벤치, 함께 차를 마시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커뮤니티 라운지, 심지어 작은 공용 정원까지. 이러한 공간들은 사람들이 의도하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짧은 교류를 시작하며, 더 나아가 깊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씨앗을 뿌린다.

엘리베이터 안의 어색한 침묵 대신, 따뜻한 눈인사와 미소가 오가는 짧은 순간들. 이곳에서 나누는 작은 대화와 연대는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게 마음을 녹인다. 비록 이 순간이 오래가지 않아도, 이런 긍정적인 상호작용의 빈도가 높아질수록 우리는 외로움 대신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사회적 연결망 속에서 안정감을 얻는다. 이는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핵심적인 행복의 원천이다.


진정성의 특별함: 시간의 이야기를 담은 공간의 깊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진정성'과 '시간적, 유산적, 문화적 가치'는 공간에 깊이와 의미를 부여하고,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는 행복의 빈도를 높이는 또 다른 중요한 전략이 된다. 그동안 프랑스에서 보낸 시간 동안, 수백 년 된 골목과 건축물이 현대인의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 숨 쉬는지 직접 목격했다. 단순히 낡은 것이 아니라, '시간의 가치'를 인정받는 유산이 되었다. 이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와 '지역 자산'과 '문화유산'을 건축에 접목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바로 그 지역만이 가진 고유한 매력을 발견하고 건축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도시 풍경 속에서, 지역의 역사와 이야기가 담긴 공간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경험의 아이스크림'을 선물한다. 예를 들어, 한옥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은 카페, 오래된 시장의 골목길을 사려 만든 문화 공간, 지역 특산 재료로 지어진 건물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단순히 건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이 품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와 감정을 함께 느낀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변치 않는 가치를 느끼고, 내가 속한 곳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자주 발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즐거운 지속가능성'이 추구하는, 겉은 화려하지 않아도 깊은 맛이 우러나는 특별한 '행복 아이스크림'이다.


'행복의 기원'을 읽고 나는 행복이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님을 다시금 깨달았다. 오히려 일상 속에서 자주 맛보는 작고 소박한 기쁨들, 마치 한입에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처럼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그 빈도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건축가로서, 이 본능적이고 인간적인 행복들을 가장 '지속 가능하게' 채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자연과 끊임없이 교감하고, 사람과 사람을 따뜻하게 연결하며, 지역의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담은 공간을 통해서 말이다.

'즐거운 지속가능성' 건축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를 넘어,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행복을 자주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행복은, 매 순간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달콤함을 자주 만끽할 수 있는 공간에서 시작된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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