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이 넘게 흘러도 변치 않는 메시지
차가운 기술과 무한한 정보의 물결이 뒤섞이는 혼돈의 시대, 4차 산업혁명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우리 아이들을 포함한, 젊은 세대들에게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나,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회시의 리더로서 젊은 직원들에게 어떤 대표가 되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한다. 특히 미래의 건축가들에게 진정한 삶의 나침반을 어떻게 전해줄 수 있을까 하는 질문들이 나의 마음속을 끊임없이 맴돈다.
긴 추석 연휴 동안, 오랫동안 가족들과 함께 보고 싶었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마침내 아이들과 함께 보게 되었다. 사실 이 영화를 아이들과 봐야겠다고 다짐한 데에는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나는 어린 시절, 엄격한 부모님 아래에서 정해진 꿈을 꾸고 살아왔다. '내가 진정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조차 스스로 던져본 적이 없다. 그러다 정말 우연히 건축과에 진학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비로소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건축을 만나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참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30여 년 전 소년이었던 나에게 <죽은 시인의 사회>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당시 영화를 보며, 나중에 어른이 되면 아이들에게 극중 괴짜 선생님(로빈 윌리엄스)인 키팅처럼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막연한 다짐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키팅 선생님의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와 마지막 장면의 "오! 캡틴, 나의 캡틴!"만을 기억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은 것은 키팅 선생님이 시의 의미를 설명하며 건네던 말이었다.
"누가 뭐라 하든 언어와 생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우리가 시를 읽는 것은 우리가 인류이며,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시, 미, 낭만, 사랑은 우리가 사는 이유다."
이어서 월트 휘트먼의 시를 인용하며 던지는 키팅 선생님의 질문은, 건축가이자 교육자인 나에게 강렬한 메시지로 다가왔다.
"오! 나여! 오! 나의 삶이여!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들! 믿음이 없는 자는 끊임없이 줄 잇고, 도시는 어리석은 이로 가득하니.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오, 나의 삶이여! 여기서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것은 네가 여기 있다는 것, 삶이 있고, 너 스스로 있다는 것! 강력한 연극이 시작되고, 너는 시가 될 것이다. 그래서 너의 시는 무엇인가?"
영문학을 가르치던 키팅 선생님에게서 그를 닮고 싶어한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의 말을 반짝이는 눈으로 듣고 있던 아이들의 모습에서 30년전 소년인 나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미래의 건축가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단순히 구조를 계산하고, 미적인 형태를 디자인하는 기술을 넘어, 그들에게 삶의 본질과 건축의 가치를 어떻게 깨닫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30년전보다 물질적으로는 정말 풍요로워졌지만 행복지수는 낮고 출산율은 최저를 기록하는 오늘날 우리 건축가들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이것은 단순히 직업인의 질문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론적 질문이라 생각한다.
나는 오히려 지금의 시대를 '기회'라고 생각한다. AI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는 모든 것이 융합되는 시대를 열어주고 있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고유한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사랑과 감성, 철학'이 담긴 공간을 창조할 기회를 더 넓혀주고 있는 것이다.
앞서, 영화의 명대사에 나오는 시와 건축은 놀랍도록 닮았다. 둘 다 아름다운 이야기와 구조로 되어 있으며, 인간의 영혼에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시인이 언어로 세상을 짓듯이, 건축가는 공간으로 삶을 짓는다. 단순히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건물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삶에 영감과 감동을 주는 공간을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건축가들의 '시'가 아닐까 한다.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 역할을 했듯이, 나 역시 우리 학생들에게 이러한 시대적 통찰과 건축가의 진정한 소명을 전해주고 싶다. AI가 설계의 효율성을 높여줄 때, 건축가는 더욱 본질적인 질문, 즉 '이 공간이 사람들에게 어떤 사랑과 위로를 줄 수 있을까?', '이 도시는 어떻게 인간적인 가치를 지켜나갈 수 있을까?'와 같은 철학적 고민에 집중해야 한다.
강력한 삶이라는 연극 속에서, 우리 건축가들, 그리고 미래의 건축가들은 AI와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어떤 '시'를 써 내려갈 것인가? 나는 기술의 시대를 넘어 인간 본연의 가치를 담아내는 '사랑의 건축'으로 세상에 우리의 존재 이유를 증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시대의 건축가들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한 감성과 깊은 철학으로, 공간 속에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시를 써 내려갈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행복지수가 낮고 희망을 찾기 어려운 이 시대 청춘들에게는 영화 속 키팅 선생님처럼 따뜻한 나침반이 되어줄 '좋은 어른'의 역할도 절실하다. '캡틴, 오 마이 캡틴'이라고 외치며 선생님을 따르던 영화 속 학생들처럼, 우리의 청춘들에게 진정한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용기를 북돋아 줄 멘토가 필요하다. 건축가로서의 소명은 물론이거니와, 한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우리 건축가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바로 그 '좋은 어른'이 되어,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삶의 의미와 가치를 함께 찾아가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나는 그것이 이 혼돈의 시대에 우리 어른들이 추구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사명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