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여행에세이란 무엇일까.

우천염천 (무라카미 하루키)

by 박세환

우천염천(雨天炎天), ‘비 내리는 하늘 뜨거운 하늘’이라는 제목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마치 사자성어와 같이 제목을 짓다니 굉장히 딱딱하고 지루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것이다. 게다가 장르가 ‘여행에세이’라니! 폭우가 내리고 뜨거운 태양을 맞으며 여행하는 내용을 읽으며 누가 그곳을 따라 여행하길 희망하겠는가. 굳이 <거꾸로>의 주인공, 회의주의자 ‘데세젱트’가 아니더라도 그런 여행은 손사래 치며 거부할 것이 뻔하다. 하지만 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딱딱하고 음울한 제목과는 다르게, 읽다보면 작가가 여행한 그리스의 아토스 반도와 터키 전역을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꿈틀 샘솟게 하는 마성을 가진 책이다.
누구나 서점에 꽂혀있는 많은 여행서적 중 흥미로운 여행에세이를 고르는 기준이 있겠지만 내 기준을 말하자면 여행지가 독특하고 작가의 필력이 좋아 잘 읽혀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기준에서 보면 이 책은 좋은 여행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나 터키여행이 독특하다는 이야기에 반문을 제시할 수도 있으나, 하루키가 여행한 그리스의 아토스 반도는 그리스 정교의 성지로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아니며 터키 동남부는 반군에 의한 전쟁으로 ‘여행유의’ 권고가 내려진 곳이니 충분히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나의 기준만을 가지고 책을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이 서평에서는 작가 본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기중 하나인 《하루키의 여행법》에서 저술해 놓은 좋은 여행기에 대한 그의 생각을 바탕으로 ‘우천염천’을 평가해보고자 한다.
아쉽게도, 《하루키의 여행법》자체도 여행에세이라서, 좋은 여행기란 이런 것이다 하고 쓴 무거운 글들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글 중에 가끔씩 나타나는 작가의 여행기에 대한 생각을 바탕으로 《우천염천》을 평가할 것이다.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여행기에 대한 하루키의 생각은

여행을 하는 행위가 그 본질상 여행자의 의식의 변혁을 강요하는 것이라면, 여행을 묘사하는 작업 역시 그 움직임을 반영해야만 한다.

는 것이다. 즉, 여행하면서 작가 본인이 경험을 통해 변화하는 생각들을 독자와 같이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천염천》에서는 작가가 여행하면서 경험하며 얻은 작은 여러 생각들이 묘사되어 있다. 여행이란 본래 그런 것이다.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여행은 단지 아주 사소한 생각의 변화들을 야기할 뿐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뇌가 지금까지 접하지 못한 정보들을 입력받긴 하지만 그 정보들 또한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영화와 같은 그런 극적인 생각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작고 미묘한 생각들이 결국 어떠한 파급력을 가지는 지는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이 작은 문장은 작가가 아토스 반도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묘사한 그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현실 세계인가

만약 당신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라면, 이 문장을 읽고 어떠한 전율이 흘렀을 지도 모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 《1Q84》의 기본 철학이 여행에서든 사소한 생각과 궤를 같이하다니’ 하며 말이다.
두 번째로 찾을 수 있는 하루키의 생각은, 하루키의 글을 빌리자면,

어디어디에 갔었습니다.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을 했습니다. 하고 재미와 신기함을 나열하듯 죽 늘어놓기만 해서는 사람들이 좀처럼 읽어 주지 않는다. ‘그것이 어떻게 일상으로부터 떨어지면서도, 동시에 어느 정도 일상에 인접해 있는가.’하는 것을 복합적으로 밝혀 나가야 한다.

이다. 정리하면, 단순히 사건의 나열뿐만 아니라 본인의 경험과 연관지어 묘사하며 서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수필의 한 종류인 여행기의 특성상 당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천염천》에서는 작가의 필력으로 원래의 경험과 여행 간의 결합이 부드럽게 연결되어 작가의 경험에 더욱 공감하기 쉽다는 점이 있다. 이 공감은 독자를 책을 읽고 있는 방안에서 작가의 여행지로 이동시켜 여행이 주는 환희를 느끼게 해 줄 것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터키 전역을 여행하는 후반부의 내용은 여행에 대한 묘사에 치중한 면이 있어, 그의 말처럼 단순히 ‘어디어디에 갔었습니다.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을 했습니다.’를 늘어놓는 구성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좋은 여행기란 무엇인지에 대한 하루키의 생각에 따르면, 전체 구성이 모두 완벽하지는 않지만, 《우천염천》은 작가의 경험과 개성이 들어간 훌륭한 여행기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여러분이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아래의 하루키의 글에서 공감이상의 어떤 것을 느낄지도 모른다.

지도를 펴놓고 자기가 아직 가본 적 없는 곳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마녀의 노래를 듣고 있을 때처럼 마음이 자꾸만 끌려 들어간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것이 느껴진다. 아드레날린이 굶주린 들개처럼 혈관 속을 뛰어다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피부가 새로운 바람의 산들거림을 간절히 원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문득 떠나고 싶다는 강한 유혹을 느낀다. 일단 그곳에 가면, 인생을 마구 뒤흔들어 놓을 것 같은 중대한 일과 마주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좋은 글쟁이가 아니라서, 여행하기 전 내가 이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자세히 묘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글귀를 읽으며, 여행을 상상하며 느꼈던 떨림과 흥분은 심지어 여행 중의 환희를 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좋은 여행 에세이란 독자에게 이러한 여행하기 전의 떨림을 주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다녀온 사람으로서 아직 그곳을 여행하지 못한 독자들이 마치 여행지의 뜨거운 태양과 폭우를 느끼게 해주어 그들이 이 여행지에 가기를 열망하게 하는 글. 그들이 그곳의 음식들을 먹기를 희망하여 여행 계획을 짜게 만드는 글말이다. 이런 이상적인 여행기에 가까운 글을 읽고 싶다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우천염천》을 읽으며 여행의 향수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2016.10.31, 서울

참고문헌
무라카미 하루키,《우천염천》,사상,2003
무라카미 하루키,《하루키의 여행법》,문학사상사,1999
알랭 드 보통,《여행의 기술》,청미래,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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