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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아리 Jan 04. 2021

순백색의 건물과 화산의 도시 아레키파(Arequipa)

  

쿠스코에서의 여행을 무사히 마친 우리는 ‘볼리비아 홉’을 이용하여 페루 제2의 도시이자 화산과 콜카 캐년, 콘도르의 도시인 아레키파로 향했다. ‘볼리비아 홉’은 프리미엄 버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거리 이동 버스이다. 다른 회사보다는 좀 비싼 감이 있었지만, 여러 구간을 마치 비행기를 타고 스탑오버를 하듯 중간중간 머물고 싶은 도시에 머물다 또다시 홉을 이용하여 이동을 할 수 있어서 참 편리했다. 우리는 홉을 이용하여 쿠스코-> 아레키파-> 푸노-> 코파카바나-> 라파즈의 루트로 이동하기로 했다. 쿠스코에서 일정에 맞춰 한꺼번에 예약을 할 수 있어 참 편리했다. 또한 각 버스마다 매니저가 동승하여 도착지의 숙소 앞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버스 자체가 너무 좋았다. 버스의 좌석은 비행기의 비즈니스석 정도의 넓기와 편안함을 갖추고 있어서 장거리 이동에는 더없이 편하고 좋았다.


Bolivia Hop의 루트

저녁 9시쯤 출발한 버스는 밤새도록 달려 아레키파로 향했다. 밤샘 이동이라 찰스와 나는 버스에서 기절하듯 잠을 잤다. 해가 뜰 무렵 잠에서 깨어 버스 창 밖을 바라본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여기가 지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협곡 사이로 버스가 이동을 하고 있었다. 마치 그랜드 캐년의 바닥을 버스가 이동하는 느낌이었다. 사실 아레키파는 근처에 그랜드 캐년의 2배 정도 깊이와 규모를 자랑하는 콜카 캐년이 있는 곳이다. 우리가 지나간 곳이 그곳의 일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탄 버스는 엄청난 협곡을 지나고 있었다. 해가 뜨기 전의 여명으로 협곡을 감상하는 동안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협곡에서 바라본 일출은 경이롭다는 표현 말고는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장관이었다. 잠에서 막 깨어난 상태이고 이동하는 버스 안이라 사진을 못 찍은 것이 너무나 후회될 뿐이다. 그때는 일출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지 사진기에 이 장면을 담아야 한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한 것 같다. 아 아쉬워... 사진을 찍어서 오랫동안 간직했어야 하는데...


이른 새벽에 도착한 우리를 홉과 연계된 미니 버스가 숙소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주소 지정이 잘못되어있었지만 버스 기사님의 배려로 숙소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때마침 에어비앤비 주인아주머니가 집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서 아주 쉽게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너무 이른 새벽이라 주인아주머니께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하나 싶었는데, 미리 마중 나와 주셔서 너무나 감사했다. 페루 사람들도  은근히 정이 많은 것 같았다.


아주머니의 안내로 집으로 올라간 우리는 완전 깜짝 놀랐다. 집이 사진보다 훨씬 더 좋았던 것이다. 방 2개, 화장실, 부엌이 딸린 빌라의 3층 독채였다. 사진에서는 엄청 작고 볼품없어 보였는데 집이 꽤 넓었으며, 무엇보다도 거실 전면 창으로 비친 화산이 장관이었다. 매일 아침 그 화산을 보며 커피 한잔을 마시며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아레키파 근처에는 많은 화산들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도착하기 얼마 전쯤에 아레키파에서는 사반카야화산이 폭발하여 화산재가 한동안 엄청 날렸었다고 했다. 화산 폭발로 인하여 아레키파 일정을 취소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현지 소식 등을 접하니 점차 좋아지고 있다고 하여 예정대로 방문했던 것이었다. 실제로 우리가 머문 동안에도 날은 엄청 맑은데 미세먼지 같은 화산재가 공기 중에는 계속 있는 상태였다.


숙소 창문에서 바라본 화산


우리는 표면상으로는 화산재를 핑계로 아레키파에서 머문 5일 동안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집 컨디션이 너무 좋아서 그냥 집에서 밥이나 해 먹으면서 편히 지내고 싶었다. 집도 좋았지만 오랜만에 고도가 낮은 동네로 내려와서 편안하게 쉴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사실 아레키파는 해발 2300m 정도의 고산도시이지만 쿠스코에서 내려온 우리는 이 정도쯤은 아랫동네로 치부할 정도였다. 해발 2300m 정도는 달리기도 가능할 정도였다. 참고로 백두산 정상은 해발 2750m이다. 실제로 나는 쿠스코에서 투어 시간에 늦는 바람에 한 5분 여 정도를 뛰었다가 심장이 터져서 내 몸 밖으로 빠져나올 것 같은 경험도 했었다. 그러니 이 정도쯤이야 매일 아침 조깅도 가능할 정도였다.


아레키파는 캐년 등으로 둘러싸인 지리적 특성과 잦은 화산 폭발 때문에 외부 침입이 거의 없어서 옛 스페인 침략자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정착시키고 유지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레키파의 시내인 역사지구에는 유럽풍의 건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화산재를 사용하여 건물을 지었는데 그것이 흰색 또는 분홍색 이어서 역사지구의 대부분 건물은 백색을 띠고 있어 백색의 도시라고 알려져 있다. 이렇듯 아레키파의 역사지구는 같은 페루라고 할지라도 쿠스코의 그곳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쿠스코는 잉카의 유물을 그대로 간직한 채 그것을 유지하고 있다면, 아레키파는 식민 시대의 유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같은 나라인데 서로 다른 문화를 유지하고 간직하고 있다니... 같은 나라라고 하기에는 뭔가 어색함이 있는 듯하다.


아르마스 광장의 풍경


역사지구의 아르마스 광장에는 낮부터 저녁까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 휴식과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비둘기 떼를 쫓아다니는 어린아이들, 매일 이곳에 나와 일몰을 감상한다던 동네 아주머니. 이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잠깐 동안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하여 몇 마디 가르쳐 드렸는데, 그것을 따라 하며 너무 즐거워하던 모습이 아직까지 눈에 선하다. 아르마스 광장은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동네 사람들의 평화로운 휴식장소이기도 한 것 같았다.


해 질 무렵 아르마스 광장


아르마스 광장의 분수대


아르마스 광장에서 바라본 일몰은 이곳에 오는 길에 만났던 일출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아레키파 대성당과 아르마스 광장의 야자수 비슷하게 생긴 커다란 나무들과 어울린 일몰 풍경은 사진으로는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또 우리가 머물던 시기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던 때라 이미 성당 앞은 크리스마스 장식과 예수 탄생 장면을 재현한 여러 가지 조형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음에도 남반구에 위치해 있어 여름으로 가는 길이었다. 말로만 듣던 남반구의 뜨거운 크리스마스라... 나에겐 많이 어색했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한껏 들뜨기도 했다.





하루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수녀원인 성 카탈리나 수녀원을 방문했다. 그날은 유독 날씨가 맑아 붉은색과 하늘색 벽으로 이루어진 수녀원 내부가 더 선명하게 보였다. 하루 종일 수녀원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수녀원 안의 카페에서 커피도 한잔 마시면서 한껏 여유를 즐겼다. 수녀원이라 그런지 관광객들도 소란스럽지 않아서 수녀원 전체에 차분한 분위기가 짙게 깔려있었다. 아직도 폐쇄 구역에는 실제 수녀님들이 거주한다고도 한다. 마치 아레키파 안에서도 요새와 같은 이곳은 바깥세상과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르는 듯했다. 나와 찰스도 덩달아 차분한 마음으로 수녀원 곳곳을 둘러보며 청량한 날씨와 다양한 색감이 어우러진 수녀원을 배경으로 많은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아레키파에서는 맑은 날씨와 곳곳의 예쁜 건축물들과 역사지구까지 마음에 드는 곳이 참 많았다. 전혀 들떠있지 않고 차분한 분위기이지만 결코 우울하지 않은 참 평화로운 곳이다. 그러나 이곳의 한 가지 단점이라면 아레키파에는 사람을 무는 흡혈 파리가 살고 있었다. 생김새는 초파리와 비슷하게 생겨서 처음에는 별로 경계하지 않았었는데, 이것들은 살짝 몸에 앉기만 해도 순식간에 물고 사라지는 것이다. 흡혈파리한테 얼마나 많이 뜯겼는지 내 손등과 팔목 부분은 물린 자국으로 엉망이 되었었다. 또한 그 가려움은 얼마나 심한지... 모기보다 몇 배는 더 가려운 것 같았다. 아무리 약을 발라도 소용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지금도 그 파리만 생각하면 멀쩡한 손등이 가려워지는 것 같다. 아 끔찍해...  아레키파는 정말 다 좋았는데, 흡혈파리 때문에... 10% 부족한 도시가 되어버렸다.


아레키파에서는 별 것 한 것이 없이 맑은 날씨와 함께 한껏 여유를 즐겼다. 벌써 두 달 가까이 여행을 하고 있으니 몸이 지칠 만도 했고 충분한 휴식이 필요했던 터였다. 여행도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케 했다.  또한 편안한 집에서의 휴식은 장기여행의 피로를 풀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다른 도시에 비해 심심한 것 같기도 했던 아레키파이지만, 도착할 때의 일출과 광장에서 바라본 일몰! 이것만으로도 아레키파를 방문하기에 충분한 이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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