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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아리 Jan 13. 2021

하늘 위의 호수가 있는 곳 : 푸노 & 코파카바나

아레키파에서 출발한 우리는 안데스의 멋진 풍경들을 감상하며 티티카카 호수가 있는 푸노로 향했다. 이동하는 동안 고도가 점점 높은 곳으로 향하고 있어서인지 하늘과 맞닿을 것 같은 길이 끝없이 펼쳐지고 새파란 하늘에는 흰 구름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안데스의 풍경을 원 없이 구경하며 페루에서의 마지막 도시인 푸노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레키파에서 푸노로 향하는 길 위에서



페루와 볼리비아의 국경지대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티티카카 호수가 있다. 이곳은 해발고도가 무려 3800m에 달한다. 이렇게 높은 곳에 위치한 바다만큼 넓은 호수라니...

여행을 계획할 무렵 나는 티티카카 호수와 닿아 있는 도시인 푸노와 코파카바나에 대해서 고즈넉한 시골 분위기와 마을 사람들은 호수에 나가서 고기를 잡는 어부의 삶을 살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러나 언제나 나의 상상은 그저 상상일 뿐. 푸노에 도착하니 그냥 도시. 사람도 엄청 많고, 관광객도 엄청 많은 그냥 도시였다. 내가 상상했던 그런 곳이 절대 아니었다. 시골인 것 같기는 하나 고즈넉하지는 않은 그런 곳이었다. 여행을 하다 보니 모든 곳이 내가 상상했던 곳과 같지 않다는 현실에 항상 맞닥뜨리게 된다. 그렇지만 내가 상상한 것과 다르다고 해서 그곳이 이상하다거나 좋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나의 선입견이 나의 상상을 낳았고 그 상상과 같지 않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하지 않고 그 나름의 분위기를 즐기는 것 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우리가 푸노에 도착했을 때는 우중충한 날씨와 고산지역 특유의 약간 우울한 분위기가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고산도시는 날씨가 아주 맑지 않으면 도시 전체에 우울한 분위기가 감도는 것 같았다. 달리 생각하면 묘한 특유의 분위기가 운치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이런 날이면 대부분 우울한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아레키파에서 6시간 정도 버스로 이동을 하고 고산지역이라 기온도 좀 쌀쌀한 듯하여 몸 상태도 그리 좋진 않았던 것 같다. 다행히 푸노에서는 하룻밤만 묵고 다시 볼리비아로 이동을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시내나 잠깐 돌아다니자 하고 밖으로 나섰다.



우리는 일단 호수를 구경하기 위해 호수 쪽으로 향했다. 호수로 가는 길에는 마침 오늘이 장날인지 아니면 상시 시장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네 장날과 같이 많은 상인들이 길에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이 원주민 복장을 한 진짜 원주민 같았다. 이전 도시에서는 원주민 복장을 한 분들은 대부분 관광객을 상대로 사진을 찍는 분들이었지만, 이곳의 원주민 분들은 찐 이었던 것 같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복장 같은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으며, 그들의 주식인 말린 감자 같은 것을 팔고 있었다. 마치 우리네 시장에서 갖가지 곡물을 작은 포대에 가져와 팔듯이 그들은 갖가지 감자를 작은 포대에 담아 팔고 있었다. 이것은 Chuno라고 하는 안데스 원주민의 주식이며 전통방식으로 동결 건조한 감자라고 했다. 금방 썩어버리는 감자를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 고안해 낸 동결건조 방식이라고 한다. 이렇게 만든 감자는 냉장보관 없이 10년 정도 보관이 가능하다고 하다니 옛사람들의 지혜가 대단함을 또 한 번 느낀다. 대부분이 쌀을 먹던 이전 도시들과 달리 감자를 주식으로 하는 확연히 다른 식생활을 보는 것 같아 신기할 따름이었다. 시장에서는 감자 말고도 갖가지 과일들을 팔고 있었다. 우리는 저녁을 대신하기 위해 몇 가지 과일을 사기도 했다.



시장 구경을 어느 정도 마치고 우리는 호숫가로 향했다. 푸노가 위치 해 있는 곳은 거대한 티티카카 호수의 한쪽의 만 같은 지형이어서인지 호수가 그리 거대하고 어마어마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것이 바다같이 느껴지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만큼 크고 넓은 호수였다. 보통 관광객들은 푸노에 오면 우루스 섬이라 하여 갈대를 이용해 만든 인공섬에 방문하곤 하는데, 너무 상업적이란 말들이 많아서 우리는 우루스 섬 투어는 생략하기로 했다. 그리고 날씨가 별로 좋지 않아서 빨리 호텔로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우리는 티티카카 호수의 명물인 투루차(송어) 튀김을 점심으로 먹은 후 호텔에 들어가 그냥 쉬기로 했다. 많은 기대를 하고 왔던 곳이지만, 생각보다 훨씬 별것 없었던 푸노에서의 일정은 이렇게 마무리하고 다음날 국경을 넘어 볼리비아의 코파카바나로 향했다.





우리는 티티카카 호수 반대쪽에 위치한 코파카바나로 출발했다. 2시간을 넘게 호수를 끼고 이동을 했음에도 호수의 끝은 보일 기미가 없을 만큼 호수는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코파카바나에서는 숙박을 하지 않고 몇 시간만 머물다 다시 볼리비아 홉을 이용해서 라파즈로 가는 일정이었다. 이미 티티카카 호수가 있는 푸노에서 1박을 한 터라 같은 지역에서 더 이상 숙박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비록 푸노와 코파카바나는 다른 나라이지만 티티카카 호수를 끼고 있는 도시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비슷한 느낌일 것 같았다. 또한 나에게 남미를 소개해 줬던 지희는 우리와 코파카바나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고 굳이 숙박까지 할 필요가 없을 것 이라며 그냥 통과하는 것을 추천해 주었던 터였다. 게다가 코파카바나의 최대 관광지인 태양의 섬에서는 얼마 전에 한국인이 원주민에 의해 피살당한 사건이 있어서 외교부에서는 여행 적색경보가 내려진 상태였던 터라 우리는 코파카바나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한 4시간가량 머무르는 동안 밥을 먹고 예쁜 카페에 가서 커피나 한잔 하며 티티카카 호수를 감상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코파카바나는 푸노보다 훨씬 더 작은 호숫가 도시였고, 온 동네가 그냥 관광지일 뿐이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티티카카 호수를 기억하기 위하여 한국인에게 유명하다는 12번 포장마차에서  투루차 요리를 먹고 몇 장의 사진을 찍으며 호수를 구경하고,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카페에 앉아 하염없이 호수를 바라보며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12번 포장마차에서 먹은 투루차 요리


다시 출발한 버스가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티티카카 호수를 따라 여전히 이동을 했다. 도대체 이 호수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티티카카 호수의 면적은 자그마치 서울 면적의 13.5배쯤 되는 넓이였다. 어마어마한 면적이다. 마치 바다를 끼고 이동하는 것 같았고 끝없이 펼쳐진 호수를 바라보며 많은 기대를 했던 티티카카 호수와도 작별을 하고 있었다




사전 조사를 할 때 코파카바나에서 라파즈로 이동하는 길은 내가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좀 버거운 여정인 것 같았다. 그래서 애초부터 우리는 모든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볼리비아 홉을 이용했던 것이다. 국경을 통과하고, 버스에서 내려 배를 타고 호수도 건너야 하는 등의 여러 가지 복잡한 과정을 가이드가 다 해결해 주기 때문에 홉을 이용한 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이 모든 과정에서 홉의 가이드는 친절하게 모든 일정을 다 설명해 주고 국경을 넘어서 환전을 하는 일 까지도 도와주는 등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배려를 해 주었다. 


티티카카 호수의 풍경


라파즈로 가는 도중 잠깐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는 과정이 있다.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려 배를 타야 했고, 버스도 마찬가지로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야 했다. 아마도 육지로 이동을 하면 엄청나게 돌아가거나 아니면 길이 없어서 이렇게 이동을 하는 것 같았다.(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육로로 이동할 경우 치안상 엄청 위험한 곳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배편으로 이동한다고 했다) 


사람 따로, 버스 따로 호수를 건너고 있다
우리가 타고 이동한 작은 배


우리가 배를 타고 호수를 이동할 때에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어서 분위기가 장난 아니게 멋있었다. 해 질 녘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며 일몰을 바라보는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 없을 만큼 멋진 풍경이었다. 물론 비좁은 배에서 잠깐의 경험이었지만 기억에 남을 또 하나의 추억이지 않나 싶다. 배에서 내린 우리는 간단한 요기를 하고 다시 볼리비아 라파즈를 향해 출발을 했다. 끝없는 이동의 연속이다. 한 이틀 동안은 계속 버스를 타고 이동한 것 같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버스는 국경을 통과하지 못해서 볼리비아 국경에서 차를 갈아타야만 했는데, 페루에서는 버스 컨디션이 엄청 좋았었는데 볼리비아에서는 홉이라 할지라도 버스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나라가 가난하여 버스 또한 좋은 것을 구할 수 없는 것인지 싶어서 볼리비아에 도착하자마자 앞으로의 생활에 대해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라파즈는 또 어떤 곳일까... 기대 반, 우려 반으로 라파즈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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