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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아리 Jan 18. 2021

야경이 전부인 라파즈(La Paz)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의 남미 여행의 로망은 볼리비아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내가 상상했던 가장 남미스러운 도시인 라파즈와 신비의 땅일 것 같았던 우유니 소금사막,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티티카카 호수까지. 볼리비아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장소였다.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남아메리카다운 나라 볼리비아. 볼리비아라는 미지의 땅에 내가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분을 가라앉히기 힘들 정도였다.

그렇지만 우리가 도착하기 한 달 전쯤부터인가 볼리비아의 정치상황이 너무 안 좋게 돌아가고 있었다. 라파즈 시내에서는 매일같이 시위가 일어나고 있었고, 심지어 대통령은 멕시코로 망명을 한 상태였다. 여행자들의 단톡방에서는 연일 불안한 소식들만 들려왔고 우유니에서 고정적인 일을 하던 교민분들도 하나둘 볼리비아를 떠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남미 지역의 시위는 우리나라에서의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 물론 나도 뉴스와 현지에 계신 교민분들을 통해서만 들은 얘기이지만, 그 폭력성이 어마 무시할 지경이다. 국경을 폐쇄한다느니 외국인들은 볼리비아로 들어갈 수 없다든지 하는 소식들이 계속 들려오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우리가 도착하는 날에는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어서 우리는 많은 불안감을 갖고 라파즈로 향해야 했다. 볼리비아에 대한 나의 기대감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매일 볼리비아 단톡방을 지켜보며 혹시나 큰일이 벌어지지는 않을지 예의 주시하며 시위가 심했던 라파즈에서는 돌아다니지 않고 얌전히 지내다가 우유니로 넘어갈 생각만 하고 있었다.


라파즈의 야경


여러 가지 불안한 상황 때문에 라파즈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는 쉽게 잠도 오지 않고 그냥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라파즈는 고도가 워낙 높은 도시여서 부자들은 그나마 고도가 낮은 아랫동네에 살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보다 훨씬 높은 지역에 살고 있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라파즈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에 지나갔던 엘 알토 지역은 라파즈보다 훨씬 고도가 높은 지역이었다. 그곳을 지나갈 때는 도시에 가로등도 없이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각기 바쁜 일상을 보내는 것 같았다. 지금 까지 보지 못했던 아주 낯선 풍경이었다. 가로등이 없는 도심지역이라... 오로지 상점들에서 내비치는 약한 조명만이 도시를 밝히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사람들은 저마다 바삐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마치 옛날 영화를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런 낯선 풍경을 한참 동안이나 지난 후 드디어 라파즈 시내로 버스가 진입을 하는 순간 보이는 그 야경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난 야경이라면 볼만큼 다 봤다고 생각했었는데 와우~ 상상을 초월할 만한 멋진 야경이었다. 그동안 내가 보아왔던 그 야경들과는 스케일 자체가 달랐다. 온 도시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산에는 집들이 빼곡하게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사진으로는 절대 재현이 안 되는 그런 어마어마한 풍경이었다. 현재 상황과는 무관하게 마치 평화로운 도시인 듯 보이는 이곳의 야경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졌지만 너무나 멋진 야경에 나의 불안한 마음이 잠시나마 사라졌던 느낌이었다. 우리가 탄 버스는 이 멋진 야경을 뒤로하며 라파즈의 시내로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주로 머물렀던 곳은 고도가 약 3800m 정도 되는 도심 한복판이었다. 쿠스코와 고도가 비슷한 것 같았지만 도심이라서 그런지 느낌은 많이 달랐다. 고도가 높은 데다가 라파즈 시내의 매연이 거기에 한몫을 더하고 있었다. 공기도 좋지 않고 날씨도 그리 썩 좋지 않고, 게다가 우리는 언제 사건 사고가 터질지 계속 불안한 마음이 있어 기분까지 많이 다운되는 느낌이었다. 하루 중 대부분을 호텔에서만 머물다가 밥은 먹어야 했기 때문에 식사 때만 가끔 밖에 나오는 정도였다. 그렇다고 호텔 컨디션이 많이 좋은 것도 아니어서 안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기분이 썩 달라지지는 않았다.

하루는 라파즈 시내에서 유명하다는 한인식당을 찾아갔다. 우리는 오랜만에 한국분을 만난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얘기도 해보고 좋은 곳을 소개받을 겸 해서 약 한 시간가량 걸어서 식당을 찾아갔다. 그러나 모든 한국인이 친절하지는 않다는 것을 아주 뼛속 깊이 경험을 하고 많은 실망감을 안고 숙소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한국 관광객을 상대로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관광객이 많이 반갑겠지만 그곳 식당처럼 현지인들과 교민들을 상대로 사업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관광객은 일종의 뜨내기손님인 것이다. 친절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 시간가량 걸어서 겨우겨우 찾아간 식당에서 현지 음식의 3배 정도 되는 음식을 사 먹을 때는 우리도 많은 기대감을 갖고 가는 것인데... 식당에 들어가면서부터 나올 때까지 한마디도 건네지 않던 사장님이 우리에게 건넨 한마디


‘라파즈는 팁 문화가 있어요. 종업원에게 팁을 주고 가셔야 합니다.’


내가 너무 기대가 컸던 것일까 아니면 다른 지역의 한국식당 사장님들이 과하게 친절했던 것일까...  아주 씁쓸한 경험이었다. 게다가 식당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시위대까지 만나서 불안한 마음에 얼른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까지 돌아와야만 했다.




하루는 찰스가 많이 답답했는지 라파즈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텔레페리코를 타러 가자고 하여 같이 밖으로 나갔다. 텔레페리코는 일종의 케이블카로 라파즈의 주요 교통수단이다. 라파즈는 지역의 특성상 버스나 지하철 같은 교통시설이 취약하고 거리는 항상 교통체증이 심한 이유에서 케이블카를 대중교통으로 이용을 하고 있다고 한다. 라파즈에는 총 4개의 노선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그중 멋진 야경을 볼 수 있다는 red line을 타기 위해 우리는 텔레페리코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때 까지만 해도 텔레페리코 정류장이 곳곳에 있는 줄 모르고 우리는 구글 지도에서 검색된 종점 비슷한 곳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텔레페리코가 대중교통임을 알고 있었지만 정류장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바보 같아 보이지만 낯선 곳에서는 아무리 상식적인 일이라도 가끔은 생각해 내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다. 어쨌든 우리는 구글 지도를 참고하여 텔레페리코 정류장을 찾아서 끝이 나질 않을 것 같은 언덕을 한 30분 정도 올라갔던 것 같다. 고도가 약 4000m나 되는 곳에서 언덕길을 30분 정도 올라가다니... 나는 경사가 1도만 있어도 올라가길 꺼려하는 편이라 나에게 그 과정은 너무나도 힘들고 험난한 길이었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올라갔지만 그곳은 정류장은커녕 머리 위로 텔레페리코도 지나가지 않는 엉뚱한 길이었다.


찰스의 짧은 한마디


'여기가 아닌가봐...'


OMG! 언덕길을 오르면서 슬슬 짜증이 났었는데, 찰스의 한마디로 나는 드디어 폭발! 이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도저히 상상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폭발도 잠시. 일단 텔레페리코를 찾아야 했기에 분위기가 험악해질 뻔했지만 여기서 싸워 봤자 이득 볼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다시 지도를 검색하고 텔레페리코 정류장을 찾아서 다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찾은 텔레페리코 정류장은 말 그대로 종점이었다. 우리네 버스 정류장과 같이 종점은 산 꼭대기 제일 높은 곳에 있었다. 그곳은 2개의 노선 종점이었고 그만큼 사람도 차도 엄청 많은 아주 복잡한 곳이었다. 여차저차 하여 우리는 red line을 탈 수 있었고 우리가 탄 텔레페리코는 라파즈 시내를 가로질러 반대쪽 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텔레페리코 정류장
텔레페리코를 타고 내려다 본 라파즈의 모습


이곳의 케이블카는 겉모습은 우리네 관광용 케이블카와 비슷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이 달랐다. 가장 많은 차이점은 속도가 아주 빠르다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관광용 케이블카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그것보다 훨씬 속도가 빠른 것을 타니 좀 무섭기까지 했다. 심지어 멀미도 날 지경이었다.


'아... 이걸 타려고 오늘 오후 내내 그 고생을 하고 돌아다녔나...'


나는 좀 허무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라파즈 만의 시그니처 교통수단인 걸 감안하면 안타보고 가는 것도 많이 서운 했을 듯싶기도 하다. 암튼 우리는 반대편 마지막 정류장까지 이동을 하고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 가기 위해 케이블카를 갈아탔다. 때마침 해질 무렵이어서 라파즈의 야경도 덩달아 감상할 수 있었다. 라파즈의 야경은 언제 보아도 멋있다. 그 지형과 그들의 삶의 모습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야경은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모습일 것 같다.


우리는 처음 출발했던 곳까지 가기엔 너무 멀고 호텔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우리 숙소와 가까워 보이는 곳에서 하차하기로 하고 텔레페리코는 한 번의 경험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고 서로를 위로했다. 텔레페리코에서 하차할 때까지만 해도 적당히 호텔까지 걸어가면 되겠다고 생각하며 밖으로 나왔는데 이게 웬일인가 엄청난 비와 함께 우박이 갑자기 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세찬 비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정말 무서울 정도로 엄청난 비와 우박이 쏟아졌다. 세차게 내리는 비가 소나기인 것처럼 보여 우리는 일단 건너편 상점 처마 밑으로 피신을 하고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비는 그칠 생각을 안 하고 점점 더 세차게 내리는 게 아닌가! 우리에게는 우산도 우비도 비를 막을 수 있는 도구가 하나도 없었다. 우버도 잡히질 않고 심지어 지나가는 택시도 없었다. 가끔 지나가는 택시를 잡으면 알 수 없는 이유로 우리를 호텔로 데려다주길 거부하기를 반복했다. 아... 언어의 한계... 심지어 택시비의 2배를 준다고 해도 택시들은 승차거부를 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겨우 택시 한 대를 잡아서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빗속에서의 사투.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의 추억이 될만한 에피소드이지만, 그때는 정말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날은 어두워졌는데, 비는 무섭게 쏟아지고, 호텔까지 걸어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에다가 택시는 잡히는 족족이 승차거부를 하는 상황이라니...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래도 혼자가 아닌 둘이라서 너무 무서워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언제나 옆에 있어주는 찰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아... 라파즈... 나를 남미로 이끈 도시이며 내가 가장 궁금해하던 도시인데... 나랑은 안 맞는 거니... 아무튼 라파즈에서의 여정 중에 기분 좋았던 경험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도착하기 전부터 시작된 불안감과 도착해서의 환경적인 불편함, 거기에 여러 안 좋은 경험까지... 누군가 나에게 남미에서 가장 안 좋았던 곳이 어디냐고 물어본다면 단연 라파즈가 일 순위이지 않을까? 3일간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라파즈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우리는 우유니로 떠나기 위해 새벽부터 공항으로 향했다. 그러나 예정 시간보다 3시간가량 앞당겨졌던 비행 스케줄이 다시 뒤로 3시간가량 밀리는 바람에 우리는 새벽부터 헛고생을 했고 고도가 4100m나 되는 공항에서 약 5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라파즈는 끝까지 나랑 안 맞는구나... 다시 오게 되면 이 도시는 나를 반갑게 맞이해 줄까? 혹시 우리가 서로 맞는 구석이 하나라도 있을까? 하는 생각을 뒤로하고 우유니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라파즈에서 먹었던 맛있는 수제 햄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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