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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미니 Dec 20. 2023

단절의 감각

서로 다른 사람이라서



  SNS를 하지 않는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세 가지 모두 쓸 줄 모른다. 몇 달 전, 아기 사진을 보관할 용도로 인스타그램을 활용한다는 동창의 말에 나도 아기 관련된 사진이나 영상을 비공개로 올려 볼까 했지만 현재는 그만두었다. 사진 편집과 게시글 작성 방법이 불편해서 익숙해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낌새야 전부터 있긴 했지만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나이가 시작되기라도 한 걸까. SNS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열등감을 느껴본 적도 없고, 내게 남는 시간이 아무리 많다 해도 굳이 그것들의 방식에 적응하고자 시간을 쓰는 일이 내키지 않는다.



  내가 그나마 하는 SNS라면 카카오톡뿐이다. 프로필 사진에 기념될 만한 사진이나 영상을 때에 따라 한두 개 올린다. 하지만 보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내 카카오톡 리스트에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유지하고 있는 대화 창도 몇 개 안 된다. 서로 왕래가 없는 사이는 비주기적으로 적절한 때에 숨김 처리한다. 연락도 없는데 굳이 띄워 놓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다. 1년에 한 번 정도 숨김 처리한 리스트의 사람들 사진을 보기도 하는데 그게 오늘이었다. 한번 죽 보고는(많기도 하지) 나를 차단한 사람들은 이제 이쪽에서도 같이 차단하자고 마음먹었다.



  호리호리한 몸이었는데 연인을 만나고 살이 많이 찐 사람, 퇴사하면서 나에게 도와줘서 고맙다며 밥을 사주더니 그대로 인연을 끊은 사람, 결혼하고서는 이어오던 연락을 갑작스레 끊은 대학 동기(그녀에게 아기는 없다), 누군지 전혀 모르겠는 사람, 이름이 성의 없이 적힌 사람 등등. 오랜 시간이 흘러 모르는 존재가 되어 버린 사람들은 숨김 상태 그대로 두고 나쁜 감정이 남아 있던 사람들만 차단했다. 대체 왜 인연을 끊겠다는 말도 없이 나와의 인연을 끊었던 걸까. 처음에는 사정이 있었겠거니 했다가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그들을 향한 앙금이 남았다.



  그런 마음으로 차단을 했으면 속이라도 시원해야 마땅할 텐데, 나는 정리 이후 이상한 기분에 한참을 휩싸여 있었다. 공허하게 남은 나의 마지막 노란 말풍선에 그들이 답해주기를 꽤 오랜 시간 기다려 왔을까. 아니면 아직도 사회적인 친밀감과 관계를 아무에게나 갈구하고 있는 걸까. 그들을 떠올렸을 때 마음에 분심이 이는 것을 보면, 아마 마음 한 귀퉁이를 내주었다가 싹둑 빼앗겨 영영 돌려받지 못한 배신의 감각인 것도 같다. 그래도 이전에는 훗날 나와 맞을 누군가를 위해 마음 내어주기를 포기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럴 마음이 남아 있지 않다.



  오늘 있었던 예기치 못한 사건의 결과로 인한 스트레스와 여태껏 쌓여 왔지만 무시했던 다른 감정들이 오늘의 차단을 계기로 한꺼번에 몰려나온 것 같다. 빵빵하게 차 있던 가스가 어긋진 틈새로 빠져나오면서 마음이 연착륙을 시도하는 중. 빠져나오는 감정 중에는 자기 학대의 감정도 들어 있다. 혹시 내가 이상한 사람이어서 그들 몇몇이 나를 떠난 것은 아닐까 하는. 하지만 그것만큼은 내가 너와 다른 사람이어서 그렇지 둘 중 누구 하나가 문제적 인간이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마음을 고쳐 써 본다.



23.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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