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은 가고 아침은 온다
신생아와 함께 한 지 11일 차. 애월이는 드디어 현실을 살아갈 이름을 얻었고 출생신고도 마쳤다. 친정집으로 막 왔을 때의 얼굴과 지금의 얼굴을 비교하면 놀랍도록 성장한 귀여운 친구. 찐빵 같았던 얼굴이 어느새 이리 늠름해졌니. 대체 그 작디작던, 눈에는 보이지도 않던 세포가 커져서는 내 배 속을 가득 채웠다가 밖으로 나와 또 나날이 성장하는 것일까. 스와들업을 입고 나비잠을 자는 애월이가 귀여워서 그 정수리 부근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면, 나도 한 마리의 안온한 짐승이 되어 마음이 푹 퍼진다. 아기에게서 풍겨오는 냄새가 복잡한 생각과 어려운 감정을 전부 잊게 만든다.
그래도 아직 이 친구와 함께 보내는 새벽은 길다. 모두가 깊이 잠든 밤부터 아침인 예닐곱 시가 될 때까지 나와 애월이가 오롯이 보내는 시간. 나는 그 시간이 무섭다. 사실상 아기는 기저귀를 봐주고 맘마를 먹고 싶은 만큼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먹은 것이 내려갈 때까지 충분히 안아 주면 다시 잠든다. 하지만 나 혼자 아기를 (이 시간대에)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인 걸까, 아니면 육아에 숙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느끼는, 새로운 업무에 적응해야 하는 스트레스로 불안이 작용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불안을 느끼는 걸까. 나는 눈물을 흘리며 어떻게든 이 상황에 적응코자 했다.
육아를 하며 느꼈던 혼란함이 서서히 침전물이 되어 가라앉고 있고 나도 애월이도 서로에게 섞여 들고 있다. 마치 이대로 영원히 아플 것 같았던 수술 부위도 점차로 나아지면서 몸이 가벼워졌고, 걷기와 계단 오르기 같은 가벼운 운동도 시작할 수 있었다. 산후도우미 선생님에게 자는 아기를 잠깐 맡겨놓고 느끼는 바깥바람이란. 이게 이렇게 특별한 것이었을 줄은 미처 몰랐네. 두 발로 걷고 그 리듬에 맞추어 두 팔을 양옆으로 흔드는 것 또한 생경한 감각으로 다가온다. 특별할 것도 없지만 또 곰곰 따져 보면 특별하기만 한 하루.
여전히 신생아인 애월이와 함께 보내는 새벽은 무섭게 느껴진다. 특히 남편이 같이 없는 날에는 더더욱. 다음 주에 남편이 이틀이나 친정에 없는 것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사실 새벽에 남편이 없다 해도 육아에 더 전문가인 친정 엄마가 같이 있는데, 내가 의지하는 존재는 이상하게도 남편인 것 같다. 둘 다 아마추어에 불과한데 왜 이렇게 의지가 되는지. 남편이 새벽에 옆에서 잠만 자고 있어도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도 예전에 그랬다 한다. 그 시기에 다 그러더라는, 육아를 하며 제일 위로되는 그 말을 듣고 또다시 아기와 함께 새벽을 넘어 본다.
24. 01.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