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패턴이 보여, 아들
나에게는 징크스가 있다. 무언가가 쉽다고 적으면 곧 어려운 난이도가 시작되는 그런 징크스인데, 아마 육아가 좀 편안해졌다고 적으면 마라맛 육아가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을 안고서도 적는 까닭은 습관이다. 말로 글로 어려움을 초래하는 불경(?)을 저질러도, 매번 와장창 깨지면서 자신감을 잃어도 경박한 건지 아니면 무슨 배짱인지 이번엔 이러이러했다고 적어 보는 것이다. 그런 의미라면 나도 참 꺾이지 않는 강인함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힘들고 싫으면 입을 다물면 될 텐데 굴하지 않고 입 밖으로, 손으로 내는 것을 보면.
잠을 못 자서 회복이 안 되고 있었다. 병원에서 세 번째로 꽂았던 수술 주사줄 때문에 터졌던 혈관이 요 며칠 전까지도 피멍인 채로 있었다. 출산 이후로 내 몸은 빠르게 임신 전의 몸으로 돌아왔고 그래서 아침, 오후에는 전혀 자지 못하고 밤잠만 잘 수 있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아침에는 1시간 30분밖에 자질 못 했고 오후에는 깨어 있는 상태였고 밤에는 잠이 쏟아졌다. 하지만 아기를 돌보느라 잘 수가 없어 늘 눈 밑이 퀭했고 얼굴이 순식간에 늙었다. 사실 늙어 있는 얼굴을 봐도 슬프지 않았다. 슬픔이 앞서기엔 피로가 극에 달해 있었다.
퇴원 이후 남편이 며칠 푹 자면서 다시 육아를 시작할 수 있었고 새벽 3시까지는 깨어 있을 수 있는 그였기에 덕분에 나는 초저녁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새벽 3시나 4시쯤 깨면 한결 맑은 정신으로 아기를 돌볼 수 있었다. 아침이고 점심이고 가리지 않고 잘 수 있는 남편은 그때 취침 모드로 들어간다. 어제는 시험을 앞둔 남편을 대신해 친정 엄마가 밤새 아기를 봐주셨다. 아침까지 푹 자고 일어나니 온몸이 살아났다. 피멍이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졌고 눈 밑에 서려 있던 잠의 기운도 온데간데 없어졌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약간의 죄의식을 느낀다. 내가 깨어 있는 시간은 아침 일찍부터 오후 늦게까지. 그 시간 동안 아기를 봐야 할 텐데 평일 그 시간의 대부분은 산후도우미 선생님이 봐준다. 그럼 나는 그 시간 동안 자면 좋을 것을, 잠이 안 와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한다.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거나 소설을 적거나. 나가서 햇볕을 쬐며 걷고 가볍게 운동을 한다. 육아를 해야 할 텐데 그 시간을 내 개인적인 시간으로 써서 죄책감이 스멀스멀 오른다. 내 몸만 너무 편한 것 같고, 남편이나 친정 엄마에게 민폐지 않나 하는.
아기는 요즘 나름의 패턴을 보이고 있다. 먹고 자고의 반복이지만 새벽에 한 번 깨어 있고(재워달라고 징징거리기) 오전-오후 시간대 중에 또 한 번 깨어 있다. 초저녁부터는 또 잔다. 신생아 18일 차. 정말 먹고 자고만 했던 갓난쟁이 시절은 지나갔나 보다. 깨어 있는 오후 시간대에는 스와들업을 풀어 주면 자신의 팔을 휘두르며 놀고(의지를 가지고 노는 건 아니겠지만) 왼쪽 소매를 빨면서 지낸다. 땡글하게 뜬 눈이 너무 귀여워서 당장에라도 안아주고 싶다. 아기 얼굴에 코를 갖다 대고 킁킁거리면 기분 좋은 내 새끼의 냄새가 난다.
아기의 패턴이 보이고 남편과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아 요 며칠은 밤잠을 자게 되면서 육아가 조금은 편안하게 느껴진다. 살 것 같다. 조리원을 갔다 나와서(모자분리) 나중에 아기를 돌보는 게 힘든지, 아니면 처음부터 모자동실을 해서 돌보는 게 힘든지는 내가 전자를 안 해봐서 모르겠다. 그런데 후자는 생후 14일 차 정도까지 엄청 힘들다는 점 잘 알겠다. 여전히 아기의 신호도 잘 모르겠고 아기에 대한 데이터도 적고. 새벽에 깩! 울어버리기라도 하면 참 난감하다. 등에 식은땀이 훌훌 난다. 병원에서부터 모자동실을 했기에 피로도도 극에 달해 있는 상태고.
친정 엄마 말이 지금이 제일 쉬운 때라는데 앞으로 신생아 시절보다 더 큰 난관은 없었으면 하는 큰 바람이다.
24. 0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