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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 Jan 22. 2024

무상함

태어난 아기와 늙어가는 어른들


  오늘 아기를 데리고 소아과에 다녀왔다. 몸에 울긋불긋한 발진이 생겼길래 갔는데 시원하게 키우라는 말만 들었다. 별일 아니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보습을 잘해주라는 말을 듣고 추천받은 로션을 사러 나간 길. 신호등을 두 개 건너고 잘 걸어가다가 퍽, 나도 모르게 차도에서 고꾸라졌다. 머릿속이 물음표였다. 왼발이 제대로 땅을 디뎠는데 어째서 넘어진 거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두 무릎도 손바닥도 땅에 철퍼덕 박았다. 녹다 만 눈 때문에 바지고 손이고 축축해졌고, 지나가던 할머니 두 분이 나와 카트를 잡아 주셨다.



  출산 이후 관절과 뼈 마디가 풀려 있어서 그랬는가 보다고 생각했다. 임신과 출산 이전처럼, 그때의 몸인 것처럼 습관대로 빨리 걸었다가 생긴 일. 넘어진 부끄러움과 아픔을 뒤로하고 일어나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다시 걸을 수 있었지만, 집에 돌아오니 욱신거렸고 발목이 부어 있었다. 무릎도 시큰거렸다. 약해졌던 손목이라도 그나마 멀쩡해서 다행이랄까. 이전 같았으면 왜 넘어졌는지 생각도 안 하고 다시 움직였을 텐데, 스트레칭이 무슨 필요가 있어. 하지만 한 해 한 해 나이가 드니 무모함을 잃어버렸다.



  이제 영영 20대 때처럼은 회복할 수 없겠지, 한다. 쇼는 계속되고 삶은 무한히 앞으로만 흘러간다. 영영 과거로는 돌아갈 수가 없다. 아기는 자라고, 남편과 나, 그리고 우리 부모님들은 늙고 병들어 죽는 일만 남았다. 정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육신은 땅에 묻히거나 불에 타 사라지는 결말만이 최후에 기다리고 있다. 불멸의 신화가 깨지는 것은 매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우리의 생이 영원하지 않다는 자각은 몇 번을 경험해도 생경하다. 평소에 습관적으로 죽음을 망각하기 때문에 더 그럴지도.



  죽을 날만을 기다린다는 93세 동갑내기 노부부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마음이 먹먹했던 적이 있다. 죽음을 기다린다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당사자에게 죽음이, 겪어 보면 속이 다 시원한 무언가가 될 수 있을까? 조금만 움직여도 몸이 고단해서 힘들다는 아흔셋의 육신을 가지면 어느 날엔가 죽음이 목전에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은 걸까. 나는 그 생각만으로도 등 뒤가 선득해서 죽음이라곤 털끝만치도 생각하기가 싫다.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자살도 시도해 보았으면서 지금은 누구보다 살아 있는 기쁨을 누리다니!)



  그럼에도 아기를 낳고,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자라나는 이 친구를 보면서 나는 내 부모님의 죽음을 떠올린다. 이제 환갑을 넘긴 나이. 얼굴에 주름이 늘고 생전 나지 않던 흰 머리카락이 돋고 볼살이 점점 빠져가는 부모님의 얼굴. 하나씩 고장 나고 있는 육신 여기저기. 아빠의 왼쪽 발목은 일전에 뼈가 부서졌고 절뚝거린 지 십여 년이 다 되어 간다. 엄마는 젊은 시절 부업을 많이 해서 어깨와 목, 손에 피로감을 호소한다. 아마 앞으로 손이고 발이고 계속 쓰게 될 테니 더 아파하실지도 모른다. 그렇게 칠십이 되고, 팔십이 되고, 아흔까지 바라보실 수 있을까.



  이 모든 인연이 단 한 번뿐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무상하다. 어디서 온 줄도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는가. 어린 시절에는 질기게만 느껴졌던 아빠와의 인연도, 너무나 소중했던 엄마와의 인연도 이번 생이 끝나면 사라진다. 내가 사랑하는 남편과의 인연도 내 심장을 내어 주어도 아깝지 않은 자식과의 인연도 단 한 번이다. 이 한 번은 너무 가볍다. 영원회귀의 무게는 영원히 반복되는 까닭으로 인해 한 번의 사건조차 무겁게 느껴지지만, 내생에는 기억도 못할 이 인연은 경전의 문구처럼 꿈같고 허깨비 같고 거품 같고 그림자 같다(如夢幻泡影).



  난 영원히 죽지 않을 줄 알았고, 내 부모님도 그럴 줄 알았다. 무서운 어른의 힘으로 영원히 군림할 줄 알았는데 시간은 잔인할 만큼 공평하게, 통과하는 모든 이들을 늙게 만들었고 육신의 힘을 약화했다. 내게 소중한 사람이든 아니든 그런 것은 자연의 고려 대상이 아니어서, 인간은 모두 무덤가에 스러지고, 내 부모도 나도 그 앞에 스러지고, 내 자식도 그렇게 될 것이다. 괴로움도 즐거움도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이 한 번뿐인 삶을 가볍고 기쁘게 만든다. 그러니 애를 써서 괴롭게 살아가지는 않도록 하자.



24. 0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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