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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 Feb 18. 2024

그럼 모유 수유는?

아무것도 안 먹은 지 4시간이 넘은 것 같아


  4월의 제주 여행에서 아기가 찾아왔다. 아기가 생겼을 것이라고 추정한 날이 애월읍을 여행하던 때라서 태명을 애월이라고 지었다. 내가 애월에서 5개월 간 머물렀던 적도 있고 흔한 태명이 아니라서 마음에 들었다. 임신 기간은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을지라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수월한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한참 육아 중인 지금 돌이켜 보자니 기억이 흐릿해져서 미화된 걸지도.



  첫 번째 아기를 10주 만에 계류유산으로 떠나보낸 다음에 온 아기였기에 더욱 감사했고 기뻤다. 잘 키워 보겠다는 마음으로 다부지게 육아와 관련된 유튜브들을 보며 공부를 했다. 특히 내가 신경 쓴 부분은 24시간 모자동실과 모유 수유였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아기에게 제일 필요한 건 안전지대로써의 부모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배고플 때마다 엄마를 느끼며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젖일 것이라고.



  남편 또한 동의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직수로 모유 수유를 하기로 하고 산후조리원은 가지 않기로 했다. 송파구 쪽에 24시간 모자동실을 지원하는 조리원이 있었지만 그쪽 동네 사람이 아니어서 입소가 힘들 것 같았고, 마침 친정 엄마가 산후조리를 도와주겠다 하셔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이런 결심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조리원 가라고, 모유 수유를 할지 말지는 아기가 결정하는 거라고들 말하며 우리를 말렸다.



  물론 나는 듣지 않았다. 남편이 모자동실 유튜브 브이로그를 보더니 이거 실은 부자동실 아니냐며 조심스럽게 다짐의 철회를 물어보았을 때도 나는 굽히지 않았다. 아기와 24시간 함께 할 거고 아기에게 최고의 선물인 모유를 줄 거야. 두 돌 전까지! 제왕절개 수술 날짜를 잡을 때도 「모자동실은 3일째부터 가능하다고 신생아실에서 그러네요」 라고 말하는 간호사 선생님에게 무조건 첫날부터 하게 해달라고 했다.



마지막 디카프 라떼였던 군자역 <로프커피>



  그렇게 12월이 되었고, 1월 넘어서 태어날 줄 알았던 아기가 마지막 해의 끝의 끝에 태어났다. 그날은 남편이 쉬어서 데이트를 하고 있던 날이었다. 소곱창을 맛있게 먹으면서 이게 마지막 오찬이 될지도 모른다는 씨가 될 말을 해버렸다. 수축이 느껴진 건 카페에서였다. 막달이 되면서 가진통을 종종 느꼈기 때문에 으레 이것도 가진통이겠거니 싶어 신경 쓰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흰 점액질의 이슬이 계속 나왔지만 출산이 오늘이라고는 생각 안 했다.



  박완서 작가의 책에 그런 말이 적혀 있다. 출산은 도둑처럼 오더라는.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갑자기 들이닥쳐서 그런 말이 나왔으리라.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말했다. 「진통이 오는 것 같아.」 평소에는 침착하고 차분하기만 한 남편이 그때부터 눈에 띄게 당황해하는 것이 보였다. 당신도 생각했겠지. 결국 오늘인가. 우리는 집에 들러 나머지 짐을 차에 실었다. 언제 아기가 태어날지 몰라 대부분의 짐을 미리 실어놓은 것이 다행이었달까.



  30분이면 도착할 거리가 퇴근길로 막혀 1시간이 됐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자궁문이 1cm 열려 있었고 수축이 7분 단위로 오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수축의 감각이 있을 뿐이지 그게 통증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복강경 수술 이력 때문에 제왕절개를 하는 것이어서 수축의 감각이 신기하기만 했다. 이러다가 짐승 같은 소리를 낼 만큼 아파진다고? 그래서 생글생글 웃는 낯이었는데 그걸 보고 담당 선생님이 내일 낳아도 되겠다 했다.



  그래서 남편도 나도 내일 아침 일찍 낳겠거니 하고 입원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항생제 검사와 제모를 한다고 했다. 내일 할 일을 미리 하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갑자기 지금 (이 밤에) 수술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자궁 수축이 주기적으로 있어서 아무래도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는 당직의 선생님의 결정. 입원실에 짐을 나르던 남편의 어리둥절한 모습을 뒤로하고(왜 지금 수술?) 그렇게 수술실에 들어갔다.



  나만 제외하고 수술실에 있던 선생님들 모두 어딘가 초조해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양쪽 팔을 하나씩 묶고 다리도 묶었다. 손발을 묶으면 척추 마취를 어떻게 하나 싶어서 「저 하반신 마취 신청했는데요」 하니 응급 제왕은 전신 마취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럼 모유 수유는? 하반신 마취를 신청한 이유는 오직 모유 수유를 하기 위해서였다. 전신 마취는 수술 후 깨어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유 수유의 골든 타임을 놓쳐 버렸다.



  수술은 잘 되었고 아기도 무사히 잘 태어났다. 회복실에서 아기를 잠깐 보긴 했지만 또렷하게 인식할 수 있었던 건 병실로 와서였다. 병실에 도착할 즈음에야 의식이 명징해졌고 내가 도착함과 동시에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가 바구니 카트에 실려 왔다. 속싸개에 야무지게 싸여 곤히 잠든 아기. 누워서밖에 볼 수 없었지만 너무 사랑스러웠다. 바로 젖을 물려야겠다는 생각에 남편에게 아기를 달라고 했고 배운 대로 누워서 젖을 물려 보았다.



  아기는 물지 않았다. 아무리 깨워 보아도 자겠단다. 속싸개를 풀었더니 아, 너무 몰랑하고 연약한 두부살이라 초보인 우리는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속싸개를 푼 아기는 뼈 없이 흐물흐물한 것 같아 꽉 잡을 수도 없다. 이미 신생아실 선생님은 인계를 하고 병실을 나간 상태. 그나저나 마취로 시간 감각이 없던 나는 지금이 몇 시인지 벽에 걸린 디지털시계를 보았고, 수술실에 들어가던 시간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흘렀는지 계산해 보았다.



  4시간 반? 내가 수술하고 지금까지 4시간 반이 지났냐고 남편에게 확인차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다. 전신 마취 후 회복실에서라도 젖을 바로 물려야 했지만 몽롱한 의식에 떠올리지를 못 했다. 그럼 아기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그 이후로는 어떻게든 깨우려고 계속 시도했다. 하지만 꼭 벽돌 같았다. 귀도 만지고 발도 만지고 볼도 쓸어보고 불러도 봤지만 반응이 없었다. 무생물을 데려다 놓고 젖 먹으라고 하는 것 같았다.



  모든 게 다 작은 아기지만, 작디작은 아랫입술을 아래로 내려 강제로 입을 벌리게 했지만 젖을 물지도 빨지도 않았다. 그때부터 당황해서 모유고 뭐고 일단 탈수 오지 않게 뭐라도 먹여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신생아실에 전화를 했고 분유를 타왔다. 그게 완분의 시작이었다. 3일째부터 젖이 돌기 시작했지만 이미 아기는 그새 젖병에 익숙해져서 젖을 물면 짜증 섞인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분유 수유와 함께 유축까지 할 자신은 없어서 빠르게 모유 수유를 포기했다.




무럭무럭 자라고 있답니다



  55일 차가 된 애월이는 완전히 분유만 먹는 아기가 되었다. 먹성이 좋아서 배앓이도 없이 잘 먹고 잘 자라고 있다. 출산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나는 직수로 모유를 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누가 모유 수유 하고 있다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찔리듯이 아팠다. 하지만 이제는 모유건 분유건 아기를 잘 키울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분유 수유도 부모가 줄 수 있는 사랑이다. 모유 수유만이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은 아니리라.



  두 가지 중 부모에게도 맞고 아기에게도 맞는 방식을 선택하면 된다. 모유 수유는 아기에게 최적의 음식이다. 또 경제적이다. 분유, 젖병,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모든 비용이 절감된다. 모유 수유의 단점은 곧 분유 수유의 장점이다. 수유는 반드시 엄마만이 진행할 수 있으며, 아무래도 아기가 신경 쓰여 엄마가 먹는 것에도 제한을 두게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수유실이 갖춰진 곳이 잘 없어서 외출할 때 부담스럽다는 점 등등.



  그래도 둘째를 낳는다면 다시 한번 직수로 모유 수유를 도전하고 싶다. 애월이는 첫 아이다 보니 모든 것이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먹이는 것도(갓 태어난 신생아는 잘 때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 잔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래서 잠들어 버리면 젖이든 젖병이든 먹일 수가 없다.) 재우는 것도(현재 진행 중)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도 다 익숙하지 않아서 절절맸지만 이제 그것들에 충분히 익숙해졌으니 좀 더 어려운 과업에(?) 도전해 보아도 되지 않을까.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마음 한 구석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어서 그렇기도 하다. 그때 그래도 하반신 마취 해달라고 말이라도 해볼걸 그랬나 싶고, 회복실에서 바로 젖 물려달라 말하는 걸 잊지 않았으면 지금 애월이는 모유를 먹고 있지 않았을지 싶고, 모자동실하면서 직수와 관련해 받았던 도움 아닌 도움(?)들을 모두 거절하고 밀어부쳤다면 상황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24. 0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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