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즐거움 #2
딸이 키가(163cm) 크지 않은 것에 불만이 많았다. 어느 날 대학에 들어간 딸이 “ 맘, 머리는 좀 둔해도 키가 더 컸으면 좋겠어요” 라고 나에게 들려준 에피소드가 있다. 나의 대답은 아빠, 엄마가 작으니 어쩔 수가 없이 받아드려야 하는 유전인자 탓이라 일러주었다. 그래도 머리는 좋게 태여 났으니 다행히 아니냐 고!
나는 아이들에게 너희들 보다도 훨씬 작게 태어난 거인 임마뉴엘 칸트라는 철학자에 대해서 가끔씩 위로 삼아서 들려주곤 하였는데 아마 이 사람도 자기의 체구에 상당히 고민을 많이 하였으리라 짐작이 된다. 스코틀랜드사람의 후세로서 독일 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난 겨우 5’의 키를 가진 사람이라 나의 사랑하는 남편에게 그래도 위안이 되는 더 작은 사람이니 상상을 해본다. 그런 사람이 19세기의 유럽 사상을 통째로 지배했다 하니 그 머리속에 무엇이 그렇게 방대한 사고를 하게끔 하였을까 하는 생각으로 혼자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런데 내가 철학교실에 와서 거의 4년이란 긴 세월을 보냈는데 여성철학자는 한명도 만나보지 못하였다. 시대가 그렇게 많은 차별을 해서 그랬을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 처럼 여성들은 타고날 때 부 터 육체적으로 남성에게 뒤 떨어진다는 것을 이미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상에 알렸으며 그 영향이 몇 백 년을 지배해 왔는지 모른다. 다행히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나서 하고 픈 것을 남성들과 이렇게 동등하게 할 수 있으니 참으로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곳 캐나다에서도 1950 후반 까지는 토론토 대학에 여성들의 의대 입학이 거의 허용되지 않았다고 하니 정말 여성들은 목소리조차 낼 수가 없이 오랜 세월 가정에서 제한된 일만 하면서 살아온 듯하다.
사실 칸트는 80세를 사는 동안 60년을 교수 생활을 했고 글을 쓰면서 살아왔다고 전해진다. 놀라운 것은 그가 22세때 자기가 평생 걸어갈 길을 알고 결심했다 하는데 나와 같이 우둔한 사람은 23세에 캐나다에 꿈만 가지고 와서 아무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인생의 신호등도 제대로 못 보고 달려왔는데 그는 내 나이에 그런 결심을 했다는 것이 나에게는 많은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마음, 오성을 꿰뚫고 그것에 대해 60년동안 연구하고 15년에 걸쳐서 그의 대표작 ‘순수 이성비판’이란책을 썼고 그가 쓴 선험적 감성론과 논리학은 인간의 생태를 모두 분석하여서 자기 이론을 방대한 책으로 세상에 내놓은 사람이니 얼마나 그의 뇌세포가 일을 많이 했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의 사고가 후세 사람들이 지쳐서 읽을 수가 없을 정도의 분량의 책을 평생 써왔 다하니 60년동안 여행만 하면서 놀고 즐겨도 지루한 세월일 텐데…
그리고 또 놀라운 것은 그의 생애는 모든 행동에 시간이 있었고 그의 행동은 모든규칙 동사들 중의 규칙 동사였다고 알려지고 있다. 만약 그 규칙이 깨지는 날이면 그는 몹시 화를 냈다고 후세에 전해지고 있다. 한번은 외출에서 돌아왔을 때 자기의 규칙이 깨졌기에 다시는 외출을 안 했다 한다. 그의 성장과정이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그는 어린 나이에 받은 상처로 교회를 떠난 후 평생을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겸손한 사람이었기에 평생동안 신의 존재에 대한 것으로 죽는 날까지 많은 고뇌를 하면서 일생을 보냈다고 후세에 남겨져 있다.
사람들은 그의 꼼꼼함과 정확성 때문에 천재라 불렀다고 알려진다. 일상에서 뒤죽박죽 만드는 사건들을 가장 싫어했다 하니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독일사람과 스코틀랜드사람의 유전인자가 합해서 형성된 정직성과 우직한 모습을 그의 성격에서 볼 수 있다. 그는 태어나서 80년을 사는 동안 한 번도 자기가 태어난 곳을 떠나본 일이 없다 하니 보통사람으로서 얼마나 삶이 지루 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아마 그가 독신으로 살면서 여행하는 시간, 아빠 노릇, 남편 노릇, 자식 노릇등의 역할을 하지 않았기에 모든 정력과 시간을 뇌 세포 확장에만 집중하지 않았나 하는 상상을 해 본다.
또 그는 평생동안 극기하면 살았고 하루에 한끼만 하면서 섭생법을 지켰다 한다. 평생동안 건강치 못한 몸을 그렇게 관리하면서 그래도 80세를 살았다면 그 시대에 장수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죽을 때 남긴 마지막 말은 “좋았어” 라고 했다 하니 누구나 삶의 마지막에 할 수 없는 말을 한 것 같다. 자기 인생에 후회가 없는 말을 남기고 떠난 사람이다 .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쓰고 있는 용어들 중에 캐터고리(Category) 나 이율배반( Antinomy)같은 용어도 그가 만들어서 사용해온 용어들이라 한다. 천재 철학자 칸트를 생각하면서 이글을 쓸 때 이 철학 교실이 노후에 즐거움으로 가슴속에 길이 남을 것이라 생각을 해본다. 이사람이 후세에게 이 책들을 통해서 알려준 이 말 ” 감각이란 원료는 사상이란 원제품으로 만드는 과정” 이라는 뜻깊은 말과 철학 함이란 곧 항상 새롭게 본질적인 질문을 제기함을 뜻한다는 것을 이 교실에서 배운 것은 참으로 또 하나의 깨우침으로 다가온다. 5’의 작은 체격의 두뇌는 10’ 큰 체구의 두뇌보다 수 백배 더 위대한 것을 우리 인류 역사에 선사했으니 나의 가족에게는 19세기를 사로잡은 천재의 덕분에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2012-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