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창살 없는 감옥이 있었기에

영원한 감사를 어머님께 드림니다.

by 백경자 Gemma

사람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관계의 존재라고도 한다. 태어나서 부 터 부모와의 관계, 친구, 직장동료, 선, 후배로 다양한 모양의 관계를 이루며 살아가면서 인연을 맺고, 사랑을 나누고, 또는 아픔을 주기도 한다. 그 아픔이 내가 상대한테 줄 경우, 화해는 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또 아픔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에게 주어졌을 때는 그 상대를 내가 용서해야 만 한다.


나는 누구의 가슴속에 아픔을 준일은 없는가 며칠을 두고 생각해 보았다. 지나온 세월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숫하게 쏟아 놓은 내 혀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가슴에 상처를 준일은 없는지 내 머리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내가 아들을 임신했을 때 일이다. 딸의 출산 후에 나는 출산과 관계되는 일들로 인해 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었고, 회복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임신이 된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둘째 아이를 가질 마음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장고 끝에 어머님과 상의를 하는 게 최상이라 생각하고 나의 고민을 알려드렸다. 어머니는 “생명은 하느님이 주신 것” 이라며 본인이 돌봐 주실 터니 염려 말고 아이를 놓도록 일러주셨다. 다행히도 내 임신과정은 딸 임신 때 처 럼 극심한 구토증도 없고, 식욕도 좋았고 이렇다 할 문제없이 아기가 잘 자라 주었다. 아마도 어머니께서 정성껏 만들어 주시는 음식 덕분에 나의 건강은 첫 임신 때보다 건강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 아들도 나의 고민을 미리 알고 나 있는 것 처 럼 엄마의 불편을 제거해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이렇게 수월하게 임신을 하고 내 건강도 회복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나는 쓸데없는 걱정을 왜 했는지 생각하면 아들에게 죄인이 된 듯 나를 괴롭혀 왔다. 산달이 다가와서 밤이 되면 태중에 아이는 힘차게 차고 놀았다. 지금도 아이가 얼마나 심하게 뛰어놀고 움직였는지 그때 그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가끔 산모들이 젬마 ”아기가 너무 심하게 밤이면 놀아서 잠을 전혀 잘 수가 없다” 라고 불평을 늘어놓을 때 나도 그런 경험을 아들 임신 때 했다고 기쁨의 불평을 나누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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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태어날 때쯤 되어서 우리는 다운타운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온 것은 집주인이 되면서 이루 워 졌고, 그 결과 산부인과 의사와 병원도 그 근처로 옮겨야 만 했다. 남편의 친구 아내로 부 터 소개받은 그 의사는 나의 출산 경험에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남아있다. 몹시도 추운 1 월 초 세상이 온 눈으로 덮이고 고요함이 가득 찬 시간에 태어난 아들은 누구의 도움 없이 그렇게 엄마의 품에 따뜻한 체온으로 눈 맞춤을 하면서 극적인 만남으로 안겼다. 그런데 의사는 스키 간다고 떠나고 나는 출혈로 생명의 위험을 느끼면서 분만 테이블에서 의사를 기다려야 하는 절박한 상태의 환자였다. 그 당시 상항을 나는 잊을 수없이 오랫동안 현실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출혈 환자가 심히 떠는 이유도 그때 체험했으니 말이다.


스키에서 돌아온 의사는 환자에게 미안함은 추호도 없고 행동에서 넘치는 교만과 무례함, 의사로서 갖추어야 할 태도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염려했던 아들의 출산은 그렇게 수월하게 끝났지만 의사와 병원경험은 나에게 길이길이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내 삶의 반 평생이 넘게 병원에서 이루워 졌기에 더욱더 그런 경험이 나에게는 아픔으로 새겨져 있다.


요즈음 임 산모들은 인류 호텔 같은 곳에서 간호받고 출산에 임한다. 모든 간호는 가족 중심으로 해서 출산모가 가장 편한 분위기에서 가족과 특히 남편과 가족의 지극한 협조아래 진통의 시간을 함께 나눈다. 출산교육시간에 배운 고통제거법을 함께 실천하면서 280일 동 안 키워 온 생명체를 품에 않을 것을 상상하면서 그 고통을 견뎌낸다. 산실의 대부분 간호사들은 전문성을 갖고 출산을 이끌어 준다. 태어나는 아기는 탯줄이 잘리기도 전에 엄마의 품에 안기고 대화로만 하던 접촉을 스킨십으로 이루어진다.


임산부가 출산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출산에 임할 때는 보다 더한 기쁨의 시간들로 자기만의 것으로 소유할 수 있는 생의 최고의 선물로 남게 된다. 나는 둘째 아이를 출산할 때까지 매일같이 일속에 파묻혀서 평범한 여성들처럼 임신과 출산에 깊은 지식 없이 예정일을 맞게 되었다. 아들은 힘든 누나의 출생을 기억이라도 한 듯 엄마가 잠든 시간에 소리 없이 박차고 나오면서 엄마를 깨웠다. 정말 출산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게 그렇게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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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토록 두려워하고 염려했던 일들은 한순간도 일어나지 않았다. 외할머니의 조언이 아니었더라면 우리의 상면이 이로워지지 안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때 나에게 오는 무서운 죄의식, 평생을 두고 아들에게 죄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 엄마의 마음, 그런 아들이 나의 기쁨이요, 행복을 가져 다 주는 유일한 대상이다. 가톨릭 이냐시오 성인의 참회록을 보면 이성인이 사과나무를 흔들어서 사과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자기의 죄를 고백했다고 쓰여 있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갖았던 그 마음의 죄 때문에 얼마나 고민하면 살아왔든가. 아들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어느 날 집에 들어서면서 뜻밖에 이런 질문을 나에게 했다. “자신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자기가 태어난 것은 우리들의 책임이라고 일러주었다. 의미 심장한 아들의 가슴 아픈 진술이었다. 얼마나 부모에게 책임이 과중하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나는 오랫동안 이 지울 수 없는 나의 마음의 죄 때문에 나 자신을 용서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세월 혼자만이 가진 이 짐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살아왔던가? 남이 나에게 원한을 주어서 용서를 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자신의 잘못이 어떤 대상에게 상처를 알게 모르게 주었을 때 자신을 용서한다는 게 남을 용서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깨 달았다.


그래서 악행을 행한 범죄자들이 평생 동안 자기의 올 무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법은 그를 죄의 댓 가만 치르게 하지만 영혼의 상처를 치유해 주지 않기에… 나이게도 한때 그런 마음의 창살 없는 감옥이 있었기에…


2012-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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