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은 어디에
자주 연락을 못하고 지내던 한 교우로 부터 연락이 왔다. 이유인 즉, 병원을 갈 일이 있는데 통역이 필요하다고 같이 가 줄 수가 있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누구의 요구에도 “노” 라는 말을 잘 못하는 결함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딸은 나를” Door Mat” 이라 불러주곤 했다. 그녀는 나의 일정을 맞추어서 약속일을 정했다. 예약된 날 그녀가 차를 가지고 이른 아침에 픽업하러 왔다. 장거리란 염려 때문에 우리는 병원에 1 시간이나 일찍이 도착하여 불 필요한 주차비를 예상하며 커피숍으로 행했다.
약간의 시간을 소모한 후 접수실로 갔을 때 우리가 아마도 제일처음 도착한 외래 접수자라 생각을 했다. 등록을 담당하는 사람은 미소로 우리를 맞이해 주었고 농담까지 하여서 그런 데로 옛날 내가 일하던 곳이라 마음이 편해왔다. 그런데 대합실에 도착하니 언제 왔는지 의자의 반 이상이 각종 문제의 해결을 찾기 위해서 기다리는 환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곳은 각 질병의 전문 의사들을 보기위해서 기다리는 종합 대합실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앉을 장소가 없이 차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어느 누구의 안내도 없이 무한대로 앉아서 이름을 호명 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한시간을 이렇게 기다린 후에 접수부에 가서 물어보니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곧 호명이 될 테니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은근히 그녀의 주차요금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넉넉치 못하는 그녀가 부담해야 할 요금을 생각하니 나를 불안케 만들어 왔다.
이 교우는 캐나다 이민 와서 처음 성당을 통해서 알게 된 사람인데 우리 부부와는 거리감 없이 가까운 사이어서 긴 세월동안 허물없이 서로 도와주고 한 신앙 공동체안에서 어떤 도움도 마다 하지 않았다. 그녀가 극심한 삶의 스트레스를 당할 때 마다 우리 부부는 많은 것을 사랑으로 나누고 도우면서 살아 왔다.그러던 중 몇 년 전에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녀와 우리는 이민 삶의 역사를 같이 쌓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편한 관계의 사람이니 그녀의 아픔 모두를 안아주고 싶은 우리 부부의 마음이었다.
집안에 환자가 발생하면 병원 방문 때 마다 지불 해야 하는 파킹 요금이 장난이 아닌 만큼 방문자들에게 부담의 크다란 요소로 다가왔다. 이미 두시간 반이 지났고,또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라는 생각과 누구도 설명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는데 서서히 나를 초초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대합실에 앉아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환자와 보호자들은 무표정하게 앉아서 나와 시간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처 럼 보이는 모습들, 아무리 돈을 지불하지 않고 무료 진료을 받는다고 이렇게 대우를 받아야 하는가 하는 마음은 병원을 갈때마다 느끼는 나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나는 10년이란 세월을 이곳에서 내 인생의 가장 전성기에 온 정력을 모두 바친 곳이었다. 그것도 밤일로 그렇게 오랜 세월을 응급실 같은 병실에서 시도 때도 없이 근무 시간외 일을 하면서 그에 대한 보수는 한 번도 요구해 본적이 없이 기쁘게 열심히 일한 곳이었다.
그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표현 할 수 없는 언어에 장애를 가졌기에 그 부족함을 내 육신으로 모두 바쳐서 일할 때 였다. 그때 아들이 태어났고, 아이를 돌 봐줄 사람이 없었기에 나는 그 방법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그로 인해 내 육체와 정신적 부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매일 감당하기에 벅찼고 업무에 시달리던 시절이었다.
오늘 20년이 지난 옛추억이 곳곳에 쌓인 이곳에 내가 그녀와 같아와서 환자 통역자로 온 지금 지나간 세월이 어렴풋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밤마다 다른 응급환자들을 만나고 쉬는 시간도 없이 얼마나 고달프게 밤새 뛰었던가? 전신에 땀이 흘러 물처럼 온몸을 적셨고 아침이 되면 내 손은 보고서를 잡을 기력이 없어서 떨리던 가슴과 손. 그래도 누가 통역이 필요해서 병원 어디에서든지 나를 찾는다면 근무가 끝나고 또 그곳에서 새로운 이민자의 아픔들을 통역해 주고 기진 맥진해서 집에 돌아가던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시간들…
세월이 지난 지금 나는 이렇게 건강하게 이곳에 그녀와 와서 장시간의 기다림이 어느 듯 나의 과거의 시간과 맛 물리고 또 현재로 연결되어 그때가 얼마나 가깝게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지… 이런 저런 생각이 지루한 기다림에서 과거의 시간으로 나를 인도 하는 그 시간 속에 그래도 폭팔 할 것 같은 이 순간을 내 인내심으로 참기로 마음먹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접수원이 나와서 그녀의 이름을 호명하자 안내자를 따라서 진료실 어느 방으로 안내 되었다. 오래지 않아서 젊은 동양 의사가 나타났고, 나는 그곳에서 기다리는 동안 의사와의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그녀의 병력서를 모두 기록한 용지를 내 밀었다. 의사는 잠간 내용을 읽어보고 아무 설명도 없이 갑자기 환자의 무릎에 주사를 놔 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순간 무슨 주사를 주겠는가 하는 질문에 코 티전 주사라 했다. 겁이 많은 그녀는 두려움에 떨고 나는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갖은 노력을 다 동원해서 설명을 했던 그 시간이 아직도 잊을수없는 아픈 추억으로 남아있다.
의사가 병력을 읽고 찬찬히 자기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설명을 하려는 자세는 보이지않고 다짜 고짜 주사를 놓아주겠다고 하니 질문은 내가 하나하나 하게 되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얼마나 오래 기다린 예약인가. 의사는 조금도 자기시간을 소비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환자를 대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환자는 그냥 그렇게 당하고 만 와야 하는 현실에 나는 너무 실망하면서 내가 환자라면 이런 의사와의 예약은 결코 하지않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런데 현실은 그런 것이 버젓이 허용되고 희생되는 사람은 고통속에서 치료를 받고자 하는 환자들이니 집에 돌아오는 나의 발길은 왜 그렇게도 무거웠는지…. 내 일터를 찾아오는 환자들은 관심과 따뜻함이 항상 동반된 진료을 받고 헤어지곤 했는데. 그래서 그들은 지금 우리가 갖는 의료에 대한 이런 실망감은 안겨주지 않았는데. 잠시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을 생각케 했다. 이시대에 그의 정신은 어디에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