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남을 거부한 천사

태동은 엄마와 아기와의 대화

by 백경자 Gemma

“젬마 아기 태동을 어제부터 못 느꼈어요”라고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임신 8개월 된 산모가 들려준 이야기다. 나는 순간 가슴이 철썩하고 내려 않는 듯했다. 아기 건강의 첫 신호가 태동의 활발이고 아기와의 유일한 대화이다. 그런데 24시간이 넘도록 그 태동을 못 느꼈다니…


수련 나온 의과 대학생은 신중을 기하면서 태동을 들으려고 안감 힘을 다한다. 그 학생은 아기의 자세를 검진한 후에 태동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복부 전체를 스캔을 하였지만 빠른 심 박동을 듣기는커녕 아무 소리도 들지를 못하는 듯하다. 조금 후에 학생은 나에게 태동 검진기를 넘겨주면 나 더러 들어보라 한다. 나는 이상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같은 방법으로 태동 검진을 하는 과정에 산모는 초 긴장 상태로 숨소리까지 죽여가면서 태동소리를 기다린다. 나는 조여 오는 가슴을 긴 호흡을 들이켜고 난 후 학생에게 의사를 불러오라고 지시했다.


밖에서 이미 상항의 심각성을 감지하고 들어온 의사는 초음파 기계를 가지고 들어왔다. 내가 태동을 듣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에 미리 태동검진 기계를 가지고 들어와서 점진을 시작했다. 일초, 이초가 너무나 긴 침묵의 시간처럼 흘렀고 다른 방에서 임산부를 보고 있는 나는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사태는 심각했고 내가 예상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순간 방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했던 엄마는 청천벽력 같은 현실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쏟아지는 눈물을 감출 길이 없었다. 그런데 세상에 그 많은 말 중에 나는 그녀를 위로할 한마디의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함께 손을 잡고 가슴깊이 아파오는 통증을 느끼면서 눈물로 산모와 마음을 나누는 길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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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엄마는 우크라이나에서 온 산모였다. 초산부이기에 많은 정보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첫 임신이라 얼마나 기뻐했던가! 힘든 초반기를 무사히 지나고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안정을 되찾고 뱃속에 자라는 아기와 교류를 하면서 긴 시간 만남의 준비를 해왔다. 그것을 나는 방문 때마다 도와주고 인도해 주었다. 태아의 모든 활동 사항을 듣고 기쁨을 함께 나누는 일이 나의 일이었기에. 그래서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즐겁기만 했다. 그런데 이런 일을 당할 때 나는 참으로 무력해지고 어떤 언어도 표현이 힘들어지곤 했다. 산모는 배 속에 아기가 이미 엄마와의 소통이 단절됨을 알게 되었을 때 남편에게 알리고 그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그녀에게는 참으로 지옥 같은 시간이었으리라. 이제 산모를 분만실로 보내서 유도분만을 해야 하는데 그녀가 그 과정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는지 나는 과히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건강하게 태어나는 아이를 출산하는 일도 여성이 겪는 최고의 고통스러운 과정인데…


의사는 산모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서서히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이미 진술한 아픔 이야기를 더 이상 되풀이할 힘조차 없는 상태였고, 우리는 언어를 상실한 상태에서 침묵만 계속되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그 잠깐의 침묵이 수십 년의 시간처럼 무겁게 가슴을 짓눌러옴을 느낀 그때를 상상하면서 잊을 수없는 그 사건은 영원히 아픔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얼마나 많은 시간에 태동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고 가르쳤던가! 아기는 자기가 태어날 날짜를 며칠 앞두고 기다리던 엄마, 아빠와의 상면일을 앞두고 태어남을 거부하고 떠나버린 그 생명을 나는 천사라 불렸다. 통곡하는 그 산모 앞에서 나는 말보다 내 가슴으로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삶에서 언어를 잃은 그런 아픔을 어떻게 치유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오랜 세월 내 안에 머물렀다.


밖에서 영문도 모르고 앉아서 기다리던 많은 엄마들, 이제 나는 그 산모들과의 만남이 두렵기만 해 왔다. 그런데 내 얼굴은 이미 웃음을 잃었고 더 이상 환자들을 볼 기력조차 다 앗아갔다. 방문 때마다 검진하는 내 손의 따뜻함을 느끼고 춤추고 뛰어놀던 그 생명체, 이틀 전 심하게 움직였던 그 신호는 무엇이었을까?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보았다. 엄마는 아기의 그 몸부림에 조금도 이상함을 못 느꼈단 말인가? 혹시 태아가 너무 놀아서 자기 움직임에 탯줄이 목에 감겨서 그럴 수도 있을 수 있는데 나는 별별 상상을 다하면서 오직 생명을 주신 분에게 그 이유를 묻고 있었다. 왜 이 생명에게는 여기까지 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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