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찾아온 극심한 고통의 한해를 보내면서
오늘따라 고층에서 올려다 보이는 푸른 하늘은 어쩐지 나와는 무관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부터 몰아치는 거센 바람과 눈보라가 창을 두들겨 댈 때 긴 겨울이 서서히 물러가는 것을 보고픈 마음이 더 간절하기 때문이다. 가장 혹한인 2월 한 달을 집안에서 무한대의 고통 속에 보내면서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잠시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나이를 잊은 채 초 고속으로 달려왔다. 그것들이 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왔기에 감사할 기회조차 깨닫지 못한 채 여기까지 온 게 아닐까.
그런데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찾아온 견디기 힘든 육체의 고통으로 가진 것들을 잃었음을 깨닫게 했다. 오래전에 박완서 작가가 예기치 않은 신체적 문제로 하루아침에 그가 가진 많은 것을 잃고, 그 아픔을 세상에 고백하던 글이 문득 떠올랐다.
아침에 자유롭게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고, 내 발로 걸어해야 할 일들을 할 수 있으며, 내 손으로 하고픈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다. 커피를 만들고 빵을 굽고, 내 몸에 필요하다는 좋은 영양식을 찾아 만들고 하던 그 특권의 시간들. 그 많은 내 권리들이 한순간에 나를 떠나갔다.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 이 ‘고통’ 이란 친구를 어떻게 껴안으면 지혜롭게 살아갈 것인가에 고민을 하기로 했다. 시간과 더불어 찾아오는 나이라는 이 피할 수 없는 고리 속에서, 받아들이는 자세를 배우고 , 품어 않으면서 내 몸과 타협하면서 다스리기로 마음먹었다. 동시에 몸이 보내오는 신호에 고개 숙여 순종해야 하는 교훈까지도.
그러나 지금의 일상은 내 삶에 닥쳐온 커다란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아무리 찬란한 빛이 창을 통해 들어와도 왜 그렇게 생소하고 나와는 관계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하루하루가 나를 다시 지난 세월 힘든 시간 속으로 옮겨다 놓는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망각이라는 기막힌 기능을 신은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기에 기쁨이 찾아오면 아마도 잊을 수 있는 그 축복 때문에 지나간 세월이 그래도 괜찮았다고 생각하면서 무력한 하루를 새로운 일정 속에 메꾸어 가는 시간으로 채워지고 있다.
내가 그토록 자유자재로 누구의 허락 없이 필요할 때 활용하던 그 기능들을 잃고 몸에게 애절하게 협조해 달라고 호소하는 그 시간들, 이제는 내가 주위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그 생각이 나를 더 아프게 해주는 이 혹한의 계절. 늘 머리로 , 눈으로 읽던 김수환 추기경님의 “머리에서 가슴으로 깨닫는 시간이 70년이 걸렸다” 는 그 말씀이 이제 철든 아이처럼 가슴으로 다가온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삶의 여정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서 이어질 뿐이다. 뜻밖에 찾아온 이 ‘고통’이란 반갑지 않은 노년의 친구는 인내라는 단어를 깊이 생각하게 해 준다. 지금 나의 시간 속에 할 수 있는 것은 머리로 사유하는 일 뿐이지만, 이 육체의 불편함 또한 우리 삶의 일부라는 것도 깨닫게 해주는 귀한 교훈이라 스스로 위로해 본다. 높은 창밖으로 들어오는 검푸른 햇살과 함께 힘차게 걷는 다양한 모습의 세인들을 바라보면서 그들과 발걸음은 맞출 수 없어도 마음만은 함께하려는 나의 일상의 연속이다. 이 시간이 있기에, 지나온 많은 축복을 되새겨보는 이 하루가 고통 아닌 쉼의 시간이라 위로해 본다.
가진 것을 잃게 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시간인지. 인간의 수명이 연장될수록 닥쳐올 더 많은 반갑지 않은 ‘잃음의 친구’들이 찾아올 터인데… 앞으로 다가올 더 많은 노년의 불편함이 나의 벗들이 되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이고통과 친구가 되어 불평보다 인내를 배우는 훈련의 시간이라고 자신에게 일러준다. 고통이란 육체의 아우성이 지난 세월 몸과 마음에 겹겹이 쌓였던 그 무게를 내려놓게 해 주는 필요한 시간임을 깨닫게 했음에 감사하면서. 머지않아 다시 이웃들과 함께 지나온 세월처럼 발맞추어 걷고, 밝은 웃음소리 들으면서 함께 신호등 앞에서 파란 불의 신호를 기다릴 수 있는 일상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 시간, 2025년도의 혹한과 함께 내게 찾아온 고통이란 이름의 귀한 선물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