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남긴 묵주알

원폭으로 떠난 아내가 남긴 보물, 묵주알

by 백경자 Gemma

나는 한 지인으로부터 이 책을 받고 제목부터 흥미롭게 다가왔다. 묵주알이란 제목이라 어떤 내용의 글이 쓰여 있을까 하면서 책을 열었다. 더욱이 나와 같은 믿음에서 시작한 이야기이니 더욱더 마음이 쏠렸다. 특히 저자가 과학을 공부한 의사, 연구학자, 교수이기에 저자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할까 라는 생각이 나를 숨가쁘게 읽도록 재촉했다.


원폭의 피해자인 나가이 타카시( Feb.03,1908 ) 의사는 일시에 모든 것을 잃고 난 후 하느님 앞에서 절대 믿음과 그분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과정과 죽음의 시간이 촉박해 옴을 느끼면서, 외부로 부터 전해오는 사랑의 편지들에 회답의 글들도 얼마나 꾸밈없이 서술해 나가는지 가슴이 저려 온다.


평상시에 일과 연구에만 파묻혀 아내와 단 한 번의 여행 한번 못해보고 원폭으로 아내를 잃은 후 자신이 어떤 남편이었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순식간에 엄마를 잃은 남매를 거느리고 살아가야 하는 아버지, 본인도 원폭의 피해자라 머리에 받은 상처와 고열로 매일 신체적 고통으로 싸움을 해야 하고 쓸 수 있는 신체 부분이라곤 다행히도 두 손과 발, 그래서 글을 쓸수 있고 약간의 거동이 가능 하지만 두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아무런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남의 손을 빌려야 하루의 생활이 가능한 저자, 엄마를 잃은 두 아이들은 소리 내어 울어보지도 못하고 가슴으로 통곡하는 그 어린 가슴을 그냥 바라만 보아야 하는 아빠의 그 처절함을 읽는 동안 내 마음에는 모정의 아픔이 깊이 파고들었다.


엄마가 사라진 후에 가족이 갖는 엄마의 존재가 보석처럼 다가옴을 깨닫게 되는 시간들, 저자는 늦게서야 잃은 아내의 자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한 번도 남편에 대한 불평을 말한 적이 없었던 아내, 그냥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킨 여인, 그렇게 살다가 한순간에 원자폭탄으로 몇 조각의 뼈로 변한 그녀는 그 자리에 묵주알을 남기고 떠났다. 저자는 자식들에게 아내가 남긴 보물이라 말하고 있다.


Gemini_Generated_Image_an56pgan56pgan56.png


원폭으로 한도시가 하얀 잿더미가 되어서 생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풀 한 포기, 물체의 그림자 하나를 볼 수 없는 땅에서 천막집을 지어서 다시 새 삶을 이어 나가야 하는 저자의 그 마음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가슴을 에이도록 아프게 만든다. 이런 것들이 신문지상을 통해 나가면서 미국외 각처에서 보내온 아이들의 인형이야기. 그래도 저자는 지금 현실에 대해서 원망보다 인간의 욕심에 대해서 꾸짖고 있다. 그리고 나라가 저질은 행위에 대한 보상이라 말해준다. 순간에 잿더미의 도시를 바라보면서 인간 세계의 갖가지 사욕과 애증도, 투쟁도 한꺼번에 그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고 토해내고 있다. “살아 움직이는 것, 시야가 닿는 곳은 편편한 재의 언덕뿐, 달빛은 그위를 빠짐없이 구석구석 비춰주고 있는데도 그림자를 형성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또 그는 “인간의 거리가 지금은 그림자 하나 없는 재의 언덕이 되었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내 마음속에는 인간의 영위가 얼마나 허무한가를 느끼게 되어 일체의 사리사욕이 모두 아무런 뜻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라고 뼈저린 진술을 하고 있다. 저자는 잃은 명예, 재산, 건강, 아내 그리고 직장조차도 그가 소유했던 모든 것을 잃었지만 슬퍼하지 않는 그 마음은 어디에서 왔을까? 대신 모든 것을 잃은 후에 온 마음의 평화, 인간의 욕망이 가져온 그 갖고자 하는 마음속에서 시작한 행동들이 연유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가슴속이 후련해진다. 그리고 자신이 구하는 것은 멸망하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게 된다. 바로 그것이 하늘나라의 의를 찾는 길인 것을… 눈앞에 펼쳐진 원자 벌판, 수많은 뼈들, 그때 저자의 마음속에 아무런 그림자도 없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빛으로 가득 채워짐을 체험하게 된다. 5년이 지난 오늘 밤 달빛은 그 날밤과 같이 밝았다고 말하고 있다. 원자 벌판에 또다시 집들이 재건되고 인간세계의 애증과 사리사욕의 소용돌이는 다시 시작된 지금,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을 한다. 내 마음속은 어떠 한가? 그날 밤처럼 “만리 무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날 밤의 그 심경이 정말 거룩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여겨진다고 되새기고 있다. 자신은 만리 무영의 심경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고백하고 있는 저자. 그리고 그는 또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원자 폭탄에 의해 우리가 받은 피해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집을 잃은 것도 아니며, 재산을 몽땅 불태운 것도 아니고, 많은 친척들과 친한 벗들을 잃었다는 것도 아니며, 육신의 기능을 잃고 병상에 누워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의 영혼의 추악함과 모든 이웃들의 영혼의 추악함을 봄으로써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nuke_doves.png


자국에 대한 반성, 평화는 어떻게 이룩해야 하며 어떤 희생이 따라야 하는지를 자신에게 되묻고 있다. 또 병상에서 죽음의 시간이 가까워 옴을 아는 그는 세상에서 주워진 귀한 시간에 글을 쓰고 다하지 못한 논문을 마무리 하려고하는 그 모습, 자신에게 주워진 책임의 마무리를 마지막 순간까지 채우고 떠나고 싶어하는 그 저자의 마음은 마치 공해에 오염되지 않은 맑은 시냇물과 같이 맑게 비쳐온다.


그리고 어린 자식들에 대한 끊임없는 그의 연민, 자신이 떠난 후에 고아가 될 자녀들에 대한 아픔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시간속에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주워진 세상을 잘 헤쳐 나갈지 번민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전해준다. 나는 묵주알을 읽으면서 내내 내 영혼의 정화가 내 안에서 일어나듯 맑아지는 것 같았다. 또 편지 회답에서 모든 이들에게 잘못된 사고에 아낌없는 충고와 함께 하느님 앞으로 애타게 초대하는 글들을 보낸다. 두려워하지 말고 천국의 문 입구인 성당문을 열고 들어가라고…


죽음은 하느님으로부터 초대장이라 전하는 저자, 가톨릭이란 열차를 타고 천국을 가는 여정에 차장은 신부님이라고 이름 지어 부른다. 아 맑은 영혼이여, 하느님 안에서 부디 영면하소서.

작가의 이전글혹한에 찾아온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