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딸을 출산후 찾아온 가뭄에 내린 봄비

by 백경자 Gemma

딸을 출산후 찾아온 신체의 가뭄에 내린 봄비

봄에 내리는 비는 만물의 생명수다. 긴 겨울동안 땅속에서 잠자듯 견디어 온 생물들이 바깥문을 열고 나올 때 하늘로 부터 맞이하는 단수다. 감음이 극심할 때 내리는 비도 여간 감사한 비가 아니다.


뒷 마당에 내 소일거리로 만들어 놓은 야채 밭도 봄의 햇살에 지극히 예민하다. 이른 봄 나보라는 듯 잡초들은 반가워하는 사람도 없는데 기승을 부리고 정작 내가 원하는 야채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기다리는 비가 오면 그때 나는 땅 뒤집는 일을 한다. 흙을 파는 작업도 비가 온 후에 더욱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씨를 뿌린다든가, 모종을 심는 일도 5월 중순에 봄비가 내린 후에야 해오곤 했다.


내 인생에도 봄비를 맞이한 때가 있었다. 딸을 출산 후 나는 심한 출혈로 인해서 생과 사를 오고 간 적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산후 회복이 장기간 걸렸고 그 과정에 경험해야 했던 체중미달, 오랜 기간의 식욕부진, 우울증을 앓으면서 어두운 세월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어디에서나 누가 웃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웃는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나 하고는 먼 거리에 있었고 만사에 의욕을 상실했던 시기에 오직 머리속에 떠오르는 사람은 나를 낳아 주신 어머님 생각밖에 없던 시절, 나의 삶을 지켜보시던 어머니의 친구 한 분이 어머니께 이 소식을 알렸다. 형님," 당신 딸이 출산 후 다죽게 되었다 오” 라는 장문의 서신을 어머니께 보냈다 한다.


70년 초에 영문도 모르고 계시던 어머니는 그 소식에 정신을 잃으시고 캐나다로 날아 오셨다. 이곳을 떠나 신지 5년도 채 못되어서 다시 오시게 된 것이다. 그때 나의 모습은 비참할 정도로 쇠약해서 그 시대에 명성을 띄운 투위기처럼 체중미달의 모습이었으니 나를 보신 어머니는 얼마나 놀라셨겠는 가. 그런 딸을 본 어머니는 매일같이 나에게 봄비 같은 사랑을 쉬지 않고 베풀어 주셨다. 세끼 식사, 내가 평소에 즐겨먹던 음식들을 만들어서 챙겨 주셨고, 손녀 돌봄과 딸에게 넘치는 사랑으로 밤낮으로 돌봐 주셨다. 그러나 나는 음식의 맛을 잃은 지가 오랜 세월이라 모래를 씹는 그런 중병을 앓고 있던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우리와 함께 계시는 동안 손녀, 손자들은 온수 같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 나의 건강도 하루가 멀다하고 회복되기 시작했고, 차츰 사람의 모습으로 변모해 갔다. 해골에 가까운 내 모습을 보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지금 나는 가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 같다. 그때 어머니의 깊은 사랑은 심한 가뭄에 내리는 단수와 같은 메마른 내 몸에 끝없는 사랑의 봄비였다.


GB_book_back.JPG 2주된 딸과 작가

만약 어머님이 오시지 않았으면 어떤 결과가 왔을까? 가끔씩 지난 세월을 되돌아 보곤 한다. 그 덕분에 나는 생각치도 않았던 폐경기를 아들 출산 후 30 초반에 맞이하게 되었고 누구도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의사가 없었다. 나는 내 건강의 원인을 찾아서 산부인과 의사들을 수없이 찾아가서 상담을 해 보았지만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한 채 죽음이란 생각으로 채워진 가슴을 안고 돌아오곤 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한 산부인과 의사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당신의 몸은 지금 80세 여성의 몸이라고”. 그때의 시간들은 내 인생에 정말 어두웠던 세월이었다. 누구나 한평생 살아가면서 봄비가 필요한 시기가 있으리라. 내 인생에 그런 심한 가뭄이 닥쳤을 때 왔던 봄비, 늘 두고두고 나 혼자만 체험할 수 있었던 그 귀한 순간들은 나에게 생명의 활 명수 같은 시간들이었다.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사랑의 비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보면서 또 이웃을 보면서 깨닫게 해주었다. 얼마나 절제 있는 사랑이 자녀들에게 필요한가을. 과잉보호는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성장시키는데 독이 되고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기능까지 부모가 잘라 버리게 되는 것을 주위의 친구와 지인들을 보면서 체득한 일들이다. 출산 제한과 과잉보호, 소아 비대증, 소아 당뇨, 사고력 부진, 창의력을 개발치 못하고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때론 아직 우리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그런 고민을 했던 옛 시절도 있었다.


적절한 때에 오는 비는 모든 생물의 생명수다. 동면에서 터져 나오는 무생물 같은 나무가지에서 봄비를 맞으면서 생명을 키우는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는 잎마당의 배나무, 캐나다 단풍 나무, 무궁화 나무들을 오랜 세월 지켜보는 것은 봄이란 계절의 봄비가 가져다 주는 기쁨이었다는 생각을 해보는 시간에 와있다.


국제펜 회원 백경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의 첫 시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