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이 다 나 같다면 너무 좋겠다! 아니, 너무 피곤하겠다.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무실 옆 자리 동료가 너무 신경 쓰인다. 그의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시시때때로 반복되는 다리 떨림, 예고 없이 크게 기지개 켜는 모습, 큰 목소리로 통화하는 소리. 신경이 쓰일 때마다 그에게 말을 하느니 차라리 자리를 옮기고 싶을 지경이다. 퇴근하고 집에서 쉬고 있던 어느 저녁, 나는 더 이상 그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눈치를 보지 않기로 결심했다. 내일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그에게 방해가 된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것이다. 그의 반응에 따라 어떻게 대응할지는 머릿속으로 다 생각해 놨다.
다음 날, 드디어 그가 출근했다. 그런데 입에서는 도저히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는 또 다리를 떨기 시작한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와의 일대일 메신저 창을 켜서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OO님”이라는 짧은 한 마디를 보낸다. 업무적인 용건은 어렵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다리 좀 그만 떨어 달라는 말을 꺼내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그의 모니터를 살짝 흘겨본다. 그는 삼십 분이 지나도록 내 메시지를 읽지 않는다.
점심시간에 산책을 하며 다른 여성 동료에게 고백한다. 나 사실 옆 자리 OO님 때문에 너무 신경 쓰여. 나의 고백에 돌아오는 대답은 ‘그냥 말을 해요!’이다. 마침 건너편 횡단보도에서 그를 마주친다. 내 고민을 들은 동료가 그에게 소리친다. OO님! 정신 사납게 좀 하고 다니지 말래! 온 거리에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누가 듣고 오해하면 어쩐담.
나도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후 네 시. 휴게실에 물을 뜨러 갔다가 수다를 떨고 있는 동료들 무리를 발견한다. 그들 중 몇몇이 나더러 자기들 쪽으로 오라고 한다. 저는 됐어요. 살짝 미소 지으며 발걸음을 옮기려 하는 순간, 그들 중 한 명이 내 팔을 잡아끌고 티 테이블에 앉힌다. 나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는다.
대화의 주제는 늘 비슷하다. 요즘 유행하는 TV프로그램, 유튜브 채널, 연예인 같은 가십거리를 이야기하다가 상사의 험담을 하고, 몇 다리 건너서 아는 누가 부자가 됐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이다. 나도 몇 마디 거들고 싶지만 사람들의 말이 너무 빨라서 끼어들 틈이 없다. 말할 타이밍을 겨우 찾아서 공감해 주고 나면 더 이상은 아는 체를 할 수가 없다. 드라마 같은 게 재밌나?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 게 뭐 그렇게 재밌지? 이 사람들은 퇴근하고 유튜브만 보나? 봐서 뭐 할 건데? 해도, 안 해도 그만인 이야기들 뿐이다. 이럴 시간에 그냥 밀린 일이나 마무리하고 싶다. 먼저 가보겠다면서 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 분명 열심히 하는 척한다며 험담을 하겠지.
다음은 내가 철저하게 지키고 있던 나만의 규칙이다.
나는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하면 좋다.
내가 열심히 하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
나는 모두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나는 실수하면 안 된다.
남들이 말할 때 끼어들면 안 된다.
남의 문제점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말하면 안 된다.
뭔가 잘못됐다면 문제는 나에게 있다.
나는 먹히기 딱 좋은 밥이었다.
눈치 없게도, 나는 항상 남 탓만 하는 사람에게 이따위 말이나 하는 사람이었다. ‘당신이 더 열심히 하면 될 수도 있잖아!’ 물론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다. 최대한 돌려 돌려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그분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OO님이 나서서 해 보면 어때요?’ 이러니 어떤 집단에서든 내게 먼저 수다 떨러 가자는 사람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게 애매모호하게 말해 놓고도 집에 오면 자책했다. 아, 그렇게까지 말하지는 말 걸 그랬나. 내가 너무 심하게 말했나. 그분이 내 말을 듣고는 조금 지친 표정이기는 했지. 지금 미안하다고 메시지를 보내는 건 과하겠지? 내일 만나면 사과해야겠다. 그리고 다음 날 ‘어제 그 일 말인데요..’라고 말을 꺼내면 대부분은 기억하지 못한다. 나만 신경 쓰고 있었구나.
누군가 어쩌다 내게 지나가는 말로 부탁이라도 하게 되면 나의 온 정신은 거기에 쏠린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이 사람의 요청을 들어줘야 해. 그렇게 요청받은 일을 해내고는 설레는 마음으로 완성본을 건네면 듣는 말은 둘 중에 하나다. 진짜 고생했겠다. 너무 고마운데, 이렇게 과할 필요는 없어. 심지어는 그 사람이 말하지 않은 것까지 제공해 주려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당신은 이런 게 불편하군요, 제가 미리 치워 드릴게요. 당신은 이런 걸 좋아하는군요, 다음부터는 추가할 건지 제가 꼭 물어볼게요.
이러니 나는 항상 내 주장을 내세우지도 못하고 남의 부탁만 들어줬다. 남의 부탁을 거절하면 하루 종일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나는 남들도 다 그런 줄 알았다. 다들 자기 일도 하면서 남의 일도 도와주는 줄 알았다. 어떻게 이 많은 걸 다 견뎌내고 살지? 그런데 돌아보고 나면 내가 가장 많이 일했고, 주변 사람들은 적당히 일하면서 수다나 떨었다. 아니야! 나는 왜 이렇게 못되게 생각하지?
체력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지치는 건 체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운동도 하고, 영양제도 챙기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내게 주어진 모든 일을 다 잘 해내려고 최선을 다했다. 한마디로 ‘갓생’을 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일찍 잠들지 못하는 날이 점점 늘어났고, 이갈이를 하느라 아침에 일어나면 턱이 아팠다. 양배추즙을 계속 먹어도 속에서 신물이 올라오고, 가슴에 돌덩이를 얹고 다니는 것처럼 항상 답답했다. 늘어난 체력만큼 과로할 뿐이었다. 나는 ‘건강한’ 생활 습관으로 만들어낸 잉여 에너지 전부를 남을 위해 쓰고 있었다.
나의 규칙을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
이대로 가다간 내가 없어질 것 같았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했다. 나는 내 생각을 완전히 바꿔 보기로 했다.
나는 항상 최선을 다할 필요는 없다. 어쩌다 최선을 다했다면 축하하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스스로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나는 모두와 잘 지낼 수는 없다.
나는 일부러 실수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직접 말해야 한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그 자리에서 고칠 수 있는 것은 바로 말한다.
나는 고의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다.
너무 지쳤을 때 사용하는 마법의 말
잠깐만요!
이 말 한 마디면 된다. 모든 것을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된다. 압도당하는 기분이 든다면, 생각이 너무 많아졌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상대에게 기다려 달라고 하자. 잠깐 기다린다고 해서 큰일 나는 건 없다. 너무 중요해서 바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면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일이라면 그만큼 시간을 들여서 생각에 신중을 가해야 한다. 내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대에게 알리는 것만으로도 내게 주어진 인풋을 해결할 시간을 벌 수 있다.
가능하다면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까지 시도해 보자. 저는 잠깐 쉬고 싶어요. 집중력이 떨어졌어요. 내겐 너무 과한 일이에요. 내 능력 밖의 일이에요.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닌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