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처럼만 하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
남들처럼만 하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
삼삼오오 모여 있는 동료들이 웃는 장면을 지나가다가 보게 되면 마음속 어딘가가 텅 빈 느낌이 든다. 딱히 그들 사이에 껴서 이야기하고 싶은 대화 주제는 없다. 그들이 나를 환영해 주길 바라는 것도 아닌데 괜히 외롭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저들 사이에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면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게 몸이 묶여 있는 비둘기 같을 것이다. 가만히 있을 줄도 알고, 사람 말도 다 알아들을 수 있지만 막상 대화를 시작하려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거니와 내가 입을 열면 놀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남들처럼 별생각 없이 하하 호호 떠들고 싶다.
함께 있고 싶은데 혼자 있고 싶다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이 좋지만 너무 피곤하다.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무슨 얘기를 하나 궁금하지만 대화에 끼고 싶지는 않다. 나도 사람들과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다 이야기하고 나면 너무 지친다. 혹시나 대화에서 소외받는 느낌이 들거나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을 들은 사람이 있을까 봐 신경이 쓰인다. 왜냐하면 나도 은근히 상처받았던 적이 너무 많으니까.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과 대화하고는 싶다.
타협안은 소수의 몇 명과만 어울리는 것이다. 친한 친구들도 한 번에 세 명 이상은 잘 만나지 않는다. 사람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의미 없는 이야기들만 주고받는다. 그런데 대화하는 인원이 적을수록 너무 진지한 이야기만 꺼내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너무 피상적인 이야기만 하고 싶지는 않다. 대화의 완급 조절을 하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 나도 남들처럼 할 수 있어야 해.
나는 지나친 자극을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남들도 다 하는 일인데 나만 못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며 살아왔다. 남들처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살아왔다. 남들이 뭐라 한 적도 없는데 스스로를 끊임없이 검열하고, 경계하고, 주의한다. 혹시나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까 봐, 또는 이미 줬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나는 이런 내 모습을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나의 모든 에너지를 다른 것을 무시하는 데에 쓴다. 그 에너지는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수록 더욱 빠르게 소진된다. 나만 그런 걸까?라는 의문을 품으며 친구들에게 너도 그러하냐고 물어보았다. 기대한 답은 들을 수 없었다. ‘그게 왜 신경 쓰이는데?’라는 답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에게는 다른 어떤 것들이 자극으로조차 느껴지지 않아서 무시할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을 친구들에게 그의 직업과 관련하여 조금만 바꾸어 물어보면 예상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가령 디자이너 친구에게 행간이 안 맞는 메뉴판을 들이밀면 다른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메뉴를 주문하지만 뭔가 이상한 점을 이야기해 보라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글자 사이를 가리켰다. 그의 전문성, 즉 학습이나 경험에 의해 남들보다 잘 아는 분야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지만 일반적인 상호작용을 하기 위해 일부러 모른 척했던 것이다.
나도 그렇다. 남들보다 빛과 소리에 예민하고, 남의 시선이 신경 쓰이고, 나의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줄까 봐서 조심스러운 것은 내 본성이다. 남들과 잘 지내기 위해 모른 척하느라 온 신경을 다 쓰기에 조금 빨리 지칠 뿐이다. 그냥 이렇게 타고났기에 바꿀 수도 없다. 본능적으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내 모습을 인정하고 익숙해지면 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행간이 잘못된 메뉴판을 고치고 싶어 하는 디자이너 친구처럼, 거칠고 둔감한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다 보면 나만의 무기가 생길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내게만 보이고 들리는 것들을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보통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왜 이제껏 나의 종합적인 감각을 따라올 수조차 없는 상대의 이해를 바란 걸까? 나의 고도화된 시각을 파악할 수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어째서 나다움을 기대한 걸까? 이제 나의 고고한 기준을 지키지 않는 무감각한 사람들의 도덕적 수준을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고, 나도 그들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렇게 생각해야만 내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그럴 수도 있죠
보통 사람들이 나에 대해 하는 말은 단편적이고 일그러져 있을 것이다. 그들이 나에게 비난한다면, 그건 그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가치관 같은 것이라고 인정해 주기로 했다. 만약 그가 나에게 너무 피곤하게 산다고 말한다면 ‘정말 힘들고 피곤해 보인다.’라는 공감으로 받아들이며 “그러게요, 좀 쉬는 게 좋겠죠?”라고 대답하기로 했다. 그가 나에게 너무 감정적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정말 논리적인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며 “네, 저는 가끔 감정적이에요. 어떤 게 특히 감정적으로 느껴졌나요?”라고 대답하기로 했다.
정말 대답하기 곤란한 말에는 “그렇군요”, “그럴 수도 있죠”라고 미적지근하게 중얼거리기로 했다. 만약 그가 나의 예민함을 정확히 지적해 줬다면 고마워하기로 했다. 내 예민함을 잘 알아봐 줬다는 건 정말 통찰력이 깊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네, 저는 좀 예민한 편이에요.”라고 수긍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