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휴식을 요구한다

누워서 핸드폰 하는 게 쉬는 거라고 생각해?

by 제나로
7eb961a1fc20ec22f541d493672493bf.jpg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야! (출처: snoopy cartoon)

완전히 쉰다는 것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대어 누워 핸드폰을 한다는 건 휴식이 아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SNS 피드, 친구들의 채팅 프로필, 인터넷 기사들을 보면서 필요하지 않은 정보에 너무 많은 주의력을 뺏겨버린다. 눈이 피곤해지고 뇌가 쉴 새 없이 가동되는 느낌에 잠식당한다. TV를 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성장해 오면서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그리고 지금도 가끔씩 부모님 댁에 가면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부모님의 습관이 있다. 집이 적적하니까 TV를 틀어 놓는다는 것이다. 정규 방송 사이에 광고라도 송출될 때면 온 집이 강남역 지하철 한복판이 된 것처럼 번쩍번쩍한 빛으로 가득하다. 영화라도 볼 때면 대화 한 번 안 해본 남의 얼굴이 우리 집 벽면을 가득 메운다. 그러니 내가 도심에라도 나가는 날에는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나는 집에서 혼자 집중할 만한 일이 있을 때면 음악도 틀어놓지 않는다. 멜로디라인과 쿵쿵거리는 비트, 심지어 전자기기에서 필연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는 지지직거리거나 삐 하는 음파 같은 것이 온통 신경 쓰인다. 내게 유일하게 허락된 음악 감상 시간은 반복적인 집안일을 할 때뿐이다.


아무 일도 안 하고 누워만 있어도 오롯이 쉬는 느낌을 즐기기 어렵다. 머릿속이 온통 시끄럽고, 잘 쉬지 못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전자기기의 전원을 끄고 코드를 빼듯이 머릿속 스위치를 끄고 켤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한창 직장생활을 하며 사람을 많이 만날 때에는 퇴근해도 퇴근한 것 같지가 않았다. 샤워할 때, 자기 전, 심지어 꿈속에서도 어제 만났던 사람과 있었던 사건이나 지금 내가 맡은 일 때문에 이를 갈았다. 스트레스와 피로를 담는 컵이 있다면 항상 찰랑거리며 표면장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타협안

완전히 쉬기 위해서는 내가 뭘 할 때 편안한지 알아갈 수밖에 없었다. 뭘 하려고 하지 않으려는 시도조차 버거웠다. 남들이 쉽게 하는 일을 나는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스스로가 너무 싫었으니까. TV를 보고, 음악을 듣고, 대화하고, 일하는 것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좋아하는 것에 대해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알아내야만 했다. 그래야만 매일을 생존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드디어 알아냈다. 내가 완벽하게 즐길 수 있는 취미 생활을. 나는 샤워를 하거나 수영을 할 때처럼 물과 가까이 있을 때 비로소 갖은 잡생각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러닝을 할 때도, 춤을 출 때도 그랬다. 대체로 내 원래 업무와 유사하지 않은 활동을 할 때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것을 ‘뇌 빼고 하는 취미’라고 부른다(물론, 수영을 하거나 춤을 출 때도 의식해야 하는 부분이 있지만 주로 사용하는 뇌의 영역과는 다른 영역인 것 같다). 드디어 나는 해방된 느낌을 즐겼다.



문제점

그런데 이 방법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뇌에 힘주는 취미 생활이 하고 싶으면 어떡하지? 둘째, 취미생활을 안 할 때 받는 스트레스에는 어떻게 대처하지? 과로한 다음날에는 너무 피곤해서 일을 제대로 처리할 수가 없었다. 너무 긴 대화가 이어지면서 중간에 쉬지 못하면 끝까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취미생활을 이어나가지 못하는 것은 더 큰 스트레스로 이어졌다.



해결안

나는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로 했다. 너무나 반가운 친구와 유명한 음식점에서 좋은 음악을 들으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도 그러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쉽게 피곤을 느끼는 체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에게 내 상태를 정확히 말하기로 했다. ‘저는 조금 쉬었다 하고 싶어요’, ‘우리 딱 네 시간만 즐겁게 놀자’,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중간에 쉬자고 말할 수도 있어’.


또 나는 의식적으로 쉬는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자리에 오래 앉아 있는 만큼 효율이 나는 건 아니다. 나는 나를 이루는 용량 100의 배터리가 있어서, 그 배터리를 오래 차고 있을수록 닳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에너지를 똑같이 30%p만 사용한다고 해도, 잔여 용량이 100% 인지 50% 인지에 따라 남은 용량에 차이가 있다. 그래서 나는 다음날을 위해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정해 놓았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내 기준보다 적게 설정하고, 다 했으면 죄책감 느끼지 않고 쉰다. 약간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나는 남들보다 기준을 높게 잡는 편이라는 것을 아는 것에서부터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작업한 지 1시간 30분이 지날 때마다 15분씩 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쉴 때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작업하던 공간에서 떨어진 공간에서 스트레칭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푹신한 곳에 앉아서 배에 들어 있는 풍선의 바람을 뺀다는 느낌으로 복식 호흡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용기를 내자! 어쩐지 남들보다 민감한 나와 여러분에게 전하는 말이다. 조금만 용기를 내서 내 상태를 전하자. 다른 사람들처럼 무던하고 강해 보이고 싶었던 모습을 내려놓자. 무신경한 세상이 칭얼거리는 요구를 더 이상 받아주지 말자. 그런 환경들에 대응하지 않고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내가 그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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