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는 머릿속을 깨워야 한다
“뭐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쓰고 그래요?”
“모든 사건에 관심을 주고 싶은 마음은 잘 알겠는데, 그걸 다 관리할 수는 없어요.”
직장에서 상사에게 들었던 말 중에서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말이 있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왜 하냐는 핀잔들이다. 한 명한테만 들었던 말은 아니었으니 상사의 시선이 문제 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마 동료도 똑같이 느끼고는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저 스스로가 일의 우선순위를 잘 정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자책하며 살아왔을 뿐이다.
남들과 비교하느라 삶이 피곤하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남들이 하루종일 하는 일이 너무 적어 보이고 느려 보여서 답답해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나는 하고 싶은 일도, 해야만 하는 일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아서 남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해내고도 항상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심지어는 한 일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내게 주어진 일의 대부분은 누가 시킨 일이 아니었다. 스스로 설정한 기준이었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을 해내기 위해 잠을 줄이고 체력을 길렀다. 그러다 모든 기운이 소진되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팔다리가 잘려있는 기분이었다. 과거의 내 모습을 생각하면 가엾기까지 하다.
나는 적당히 바쁘게 살아야 하는 사람이다. 매일 생각나는 아이디어와 실현 방법을 메모하고, 하고 싶은 프로젝트는 당장 기획서를 만들어야 한다. 비록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더라도 한 번에 여러 개를 해야만 한다. 계속해서 배우고 싶은 것들이 있고, 도전해 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 남들은 대체 어떻게 그렇게 ‘갓생’을 사냐며 칭찬하지만 나는 그래야만 견뎌낼 수 있다. 과열 신호를 주기 직전인 머릿속 엔진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그 엔진이 돌아가는 속도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
문제는 ‘적당히’가 어느 정도인지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일과 중간에 일부러 쉬는 시간을 배치했고, 내 기준에 80%를 못 미치는 정도로 목표를 변경했다. 요점은 무리하지 말자는 것이다. 나는 나만의 여유로운 루틴을 만들어갔다. 저녁 열한 시에는 무조건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일어나 간단한 식사를 한다. 미지근한 물을 한 잔 마시며 오늘 하루종일 해야 하는 일을 확인한다.
체크리스트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보다 적게 설정한다. 가령 나는 소설 쓰는 작업에 속도가 붙으면 A4 용지 세 장 분량의 글을 앉은자리에서 쉬지도 않고 두 시간 만에 써낼 때도 있지만, 하루종일 키보드를 붙들고 있어도 한 장을 채우기가 힘든 날도 있었다. 그래서 그 중간점인 두 장을 매일의 작성 목표로 정했다. 두 장을 다 쓰고 나면 체크 표시를 하고, 나머지 분량은 내일로 넘겨버렸다. 더 쓰고 싶으면 부담 갖지 않고 썼다. 몸이 안 좋거나 두뇌 활동이 아주 활발한 예정일 주간에는 매일 한 장씩 쓰는 것만을 목표로 정했다. 여덟 시간 일할 체력이 있으면 여섯 시간만 일했다. 나를 쪼개서 남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 대신, 이미 쪼개 놓은 내 조각에 맞는 사람만 내 안으로 들여보내는 연습을 했다. 사적인 인간관계도,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 만나는 클라이언트도 그렇게 맞이했다.
무슨 일을 하고 살아야 할 지에 대해서는 수도 없이 고민했으며 지금의 생각이 나중에 가서 바뀔 수도 있지만, 나는 나와 같이 민감한 사람들에게는 자유직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일하는 업계에서는 ‘리소스’라고 부르는데, 내가 들이는 노동력의 수준 또는 시간에 비례한 보수를 받을 수 있으면서도 일의 양과 일하는 시간의 양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직업이 잘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내 자율성과 도전정신을 내 의지대로 실험해 볼 수 있는 직업이면 더욱 좋다.
창의성은 어떤 방면으로든 ‘해소’ 해야 한다. 직업적으로나 취미 생활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활동은 머릿속 엔진을 굴리기에 아주 좋다. 그렇지 않으면 엔진이 멈추고, 지루해하고, 방황하다가, 우울해지고,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하루종일 돌아가는 머릿속 엔진을 이용하지 못하고 아무런 자율성 없이 그저 주어진 위치에서 돌아가야 하는 톱니바퀴의 역할만 해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사회적 자살을 선택할 것이다.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활동을 반드시 해야만 한다. 사회의 시선에 갇혀서, 나는 그런 일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머리에서 부정하는 것뿐, 어떤 활동을 해야 할지는 이미 마음속으로 정했을 것이다.
운동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일상에서 어떻게든 내 몸을 이완하고 수축할 수 있는 시간을 내야 한다. 규칙적으로 운동하지 않던 사람이 처음 습관을 들이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운동이야말로 내 에너지를 가장 쉽고 마음껏 분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활동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나는 운동을 하고 나면 생각이 전환되어서 그동안 꽉 막혀 있던 고민거리를 단번에 해결할 아이디어를 여러 번 얻기도 했다. 또는 운동을 할 때 너무 힘들기 때문에 수많은 생각들을 잠시 잊기 위해 운동을 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끊임없이 배우자.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그냥 받아들이고, 새로운 시야를 내 것으로 흡수하자. 학교 다닐 때 궁금했지만 정규 교과 과정에 없어서 배우지 못했던 것들, 그때는 대충 넘겼지만 지금 더 자세히 배우고 싶은 것들, 더 잘하고 싶은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 보자. 무언가에 확 꽂혀서 빠져들어 보자. 힘들고 따분한 단계를 넘어서 내 것으로 만들어 보자.
내가, 우리가 왜 민감한 사람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냥 그렇게 되어 버린 걸.
우리는 너무도 민감한 탓에 가끔 숨거나 핑계를 대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멋진 모습도 있다. 우리는 아이디어가 넘치고, 활력 있고, 다채로운 상상을 하는 뇌를 가졌다. 이제 당신뿐만 아니라 나도, 이 글에 공감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당신처럼 민감할 뿐만 아니라 가끔 극도로 예민할 때가 있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에 위안을 받길 바란다. 민감함은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