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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Sep 27. 2022

엄마 나 이제 뭐하지? 1/3

"니가 무슨 걱정이니, 엄만 세상에서 니가 제일 부럽다 야"


출근하는 딸내미 등 뒤로 엄마는 매일 말씀하시곤 했다. 내 발은 천근만근에, 벌써부터 저녁 퇴근길이 절실한데 속도 모르고 말이다.


적어도 1시간 반은 먼저 일어나 준비해주셨을 따뜻한 아침밥을 먹고, 부럽다며 매번 태워주시는 비행기에 올라 가볍게 좀 출근하면 좋을 걸 매일 아침 집을 나서며 그렇게 죽상을 보여드리곤 했다.


인턴으로 입사하여 6개월여의 수습기간을 거친 후 지금까지 근속 중인 내 직장. 매체나 사람들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리는 우리나라 유수의 공기업이다. 햇수로는 10년째 몸 담고 있는 이 조직에서 불행히도 나는 여전히 적응 중이다. 정확히는, 스스로를 부적응자로 분류한다.


이 합격 메시지를 받아 들고 얼마나 벅찼는지.


10여년 전, K-장녀 출신인 나에게 100여 명의 언니, 오빠들이 적절한 비율로 대거 생겼고 '동기'라는 예쁜 이름으로 끈끈히 묶였다. 칼 졸업 - 취직에 성공한 덕분에 늘 어른스러운 맏이이자 부모님의 기대에 반하지 않고 살아온 나는 생전 처음 철부지 막내가 되어 아주 신이 났다.


6시 칼퇴근 후 서울 한복판에서 할 얘기가 넘치는 동기들과 실컷 먹고 끝없이 마셔댔다. 이 어려운 시기에 '인생의 황금기'를 함께 맞이한 동기들과의 인연이 너무나 특별하고 보통이 아닌 것만 같았다. 놀고, 서로 알아가고, 우리가 거둔 이 하나의 쾌거(?)에 취하느라 하루가 짧았다. 내가 애주가 꿈나무 라는 걸 깨달은 시기이기도 하다.




6개월 후, 수습기간이 종료되었다. 이제 입에 풀칠 정도는 자력으로 할 줄 안다고 소리 없이 외칠 수 있는 마패를 가지게 됐다. 조그마한 플라스틱 사원증을 목걸이에 거는 순간 마침내 세상은 내 것이었다.


취업을 향한 치열했던 고민과 준비과정, 그 전 대학시절의 스펙 전쟁, 그보다도 어렸을 적 입시제도와의 씨름들이 모조리 보상되는 순간이었다. 신입사원의 꽃인 몇 주간의 연수과정도 수료했고 엄마, 아빠, 동생이 한 자리에 함께해준 입사식까지 정식으로 치르고, 정말 첫 발을 떼었다.


그 땐 순진하게도 내 여생에 더 이상 "머리아플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는 자신감과 희망, 설렘에 폭 파묻힌 나머지 앞을 잘 보지 않았던가 보다. 순진해도 너무도 순진했지만, 그런대로 의미가 있던 시기였다.


내가 틀렸단 게 밝혀지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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