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만료시기가 다가왔다. 작년 이맘때 사진들을 보니 그때로돌아갈 수 있는 초능력을 갖고 싶어 진다. 그만큼 평온한 1년이었기에 손쌀같이 흘러갔을 것.시간은 상대적인게 확실하다.
사무실을 나서던 날
월급 이외 회사에 감사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일신상 휴직을 2년까지 할 수 있다는 점. 이미 몇 달 전부터 연장해야겠다 생각해 놓곤 그 시점이 다가올수록 알게 모르게 당당하지 못한 나 자신이 느껴졌다. 유급도 아닌 무급휴직이면서 뭐 그리 제 발 저릴까(모두가 쓰는 건 아니니 저릴 만도).
더 지체할 수 없는 시점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회사 노조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우리 회사에서는 직원 인사 사안에 노조위원장의 영향이 지배적이다).
"위원장님. 저..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아요."
통화 버튼을 누르기까지 전전긍긍하며 멘트까지 고심했을 내 성격을 알고 계셔서일까, 마치 배고파서 밥 먹는다는 당연한 소리를 들은 양 흔쾌히 답을 주셨다.
"그려, ㅇㅇ씨 아이도 낳고 돌아오려면... 내가 그때까지 버티고ㅇㅇ지점으로 보내줘야 될 텐데.. 사람들도많아서괜찮으니 편히 지내다 와."
부담 지워주지 않으려는 의지가 느껴지는 구수한 몇 마디. 이렇게 잘 받아주실 텐데 왜 알레르기 반응 마냥 회사 인연들을 멀리하는 걸까.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여태 머릿속을 시끄럽게 하던 '의심'들도 부리나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연락드리면 괘씸하다 여기시겠지?', '휴직 연장하고 뭐 할 건지 궁금해하면 뭐라 하지?', '새로 온 부장님은 날 뭐라 생각하실까?'..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듯 타인 반응과 생각을 지레 짐작해선 이에 맞춰 내 언행을 옥죄던 고질병이 아직 낫질 않은 것 같다. 이 상황에서 먼저 건네주신 한 마디가 새삼 나에게 공식 소속이 있었음을 상기시키며 안도감을 준 건 당연했다. 부서에서 최대 연한을 채운 상태라 복직과 동시에 타 지점으로 전근을 가야 하는데, 말로라도 챙겨주시려는 의지가 감사했다.
'그래..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 안 미워해.'
저 깊은 곳에서 이미 알았을 거다. 생각보다 회사에서 내 존재는크지 않다. 기다렸다는 듯 내 자릴 채운 똘똘한 직원들에 의해 바로 다음날부터 잘만 굴러간 인기부서에서, 무급으로 떠나간 1인까지 굳이신경 쓸 새가 없다. 그럼에도 연장을 하네 마네, 언제 어떻게 알려야 할지 고민했던 건 아마도 내 안의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인생, 시간이 방향 없이 표류하지 않도록 어떤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것인지 모르겠기에. 위원장님이 당부한 '값진 시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기에. 어쨌거나 그렇게 연장된 나의 시간이 또조금씩흘러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