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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Sep 29. 2022

코시국 이태리 ①

휴직 후 버킷리스트 1순위는 '아무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는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5년 전 신혼여행에 가서도 시차를 뚫은 상사 전화에 시달렸고, 이후 어떤 휴가에서도 회사의 연락이 없었던 적이 없기에 이번 여행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가히 나의 오랜 로망이라 할 수 있다.  


코시국이 한창이던 20년도 가죽공방을 다니며 여권커버를 한 땀 한 땀 만들었었고, 휴직을 시작하기 한 달 전일찌감치 파란색 신여권을 재발급해두었다. 1초도 고민하지 않고 56장짜리 두꺼운 걸로!


커버를 씌운 새 여권을 만지작할 때마다, 오랜 숙원사업의 실현이 정말 목전에 온 것 같아 두근거렸다.


남은 휴가를 탈탈 털고 뒤이어 휴직을 신청하고 사무실을 나서던 날. 그 옛날 싸이월드 프로필에 사진을 걸어두고 언젠간 가보리라 다짐했던 이태리 남부를 꼭 가봐야겠다고 선언했다.


알프스를 볼 수 있는 북쪽에서부터 베니스, 밀라노, 피렌체를 비롯한 중부 토스카나, 로마, 그리고 소렌토 및 대망의 포지타노까지 찍고 돌아오는 것이 원대한 나의 목표.


적어도 2주는 필요할 것 같았다. 도시별로 대략적인 일정과 숙소를 결정하면서 드디어 나의 오랜 꿈이었던 이태리 남부 포지타노의 숙소를 알아볼 때가 왔다.


사진과 리뷰로 미리 본 포지타노의 풍광이 너무나도 훌륭했다. 혼자 가더라도 좋은 숙소에서 잘 누리고 오라며 내 여행을 무한 축복하던 남편도 옆에서 흘끔흘끔 모니터를 보더니 '와 멋지다-'를 연발했다.


대학교 때 패키지로나마 유럽 여러 나라를 다녀온 나에 비해, 유럽에 제대로 가본 적이 없는 남편으로서는 더 문화충격이었을 게 분명했다.


이렇게 한 달 동안 혼자 여행을 간다 해도, 남편은 말리거나 막지 않을 사람이다. 다만 자꾸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 전에도 미안했지만, 더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좋은 뷰를 함께 봐야 할 텐데. 이렇게나 실력 있는 레스토랑을 함께 즐겨야 할 텐데. 이렇게나 훌륭한 숙소를 같이 누려야 하는데...


원래 나보다 여행에 흥미가 없는 남편이기에, 게다가 학기 중인 4월이었기에 처음부터 동행은 생각지 않았다. 학기 중 개인 휴가를 내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매우겁나- 눈치가 보일 것이 자명했고 회사에서 내 휴가 쓰면서도 늘 눈치가 보이던 나로서는 그 상황이 백 번 짐작됐다. 다만 남편이 그런 어려움을 무릅쓰고라도, 함께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이상, 어떻게든 함께 누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남편은 타지에 내려온 나를 위해 함께하는 여행을 선물하고 싶다며 직장에서의 '눈치보임'을 감수해주었고 코시국 이태리 여행은 그렇게 어렵사리 시작되었다.


'여행이 주는 선물은 목적지에 있는 것이 아닌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에 있다'

2주짜리 여행이 1주로 확 줄었지만 어딜 포기하고 어딜 갈지 함께 조율했다.

- 북부는 과감히 포기하고 로마 / 포지타노 두 곳 위주로 여행하기로 했다.


숙소도 정했다.

- 로마에서는 잦은 이동이 용이하도록 테르미니 역사 바로 앞 최대한 저렴한 숙소를, 포지타노는 오랜 로망이었던 만큼 멋진 오션뷰 호텔을 골랐다.


비행기표를 구매했다.

- 코시국이라 직항이 없는 관계로 카타르를 경유하는 왕복항공권을 끊었다. 그래도 저렴해서 좋았다.


지방인지라 인천공항까지 어떻게 갈 건지 방법을 알아보았다.

- 1시간 거리의 '준' 중소도시까지 자차로 이동, 그곳 공터에 주차를 하고 공항버스를 타기로 했다. 출발하는 날, 예상외로 퇴근이 늦어진 남편은 공항버스 탑승지까지 거의 날아가는 곡예운전을 선보였다.


원래 살던 곳에서는 1시간 반 이내에 닿을 수 있는 인천공항이었는데, 거의 5시간 만에 공항에 도착했다. 그래도 설렜다. 이 여행만큼은 순간순간을 오롯이 느끼기로 다시 한번 다짐했다.


진짜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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