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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Sep 29. 2022

코시국 이태리 ②

가기 전까지는 다소 소극적이지만, 여행이 막상 시작되면 집요하리만치 끝을 보는 남편과 함께하는 로마는 강행군 그 자체였다. 남편은 지병인 알레르기에 심하게 시달려 눈, 코가 다 퉁퉁 부은 채로도 굴하지 않고 돌아다니며 보고 배웠다. 구글 타임라인을 보니 일부러 맞춘 것도 아닌데 매일 10km씩 걸었다.


10년 만에 마주한 로마 콜로세움은 2천 년도 거뜬히 버틴 대단한 유적답게 너무도 그대로였다. 겉핥기로 빠르게 지나쳤던 수많은 명소들을 조금 더 천천히, 일일 가이드님의 설명을 들으며 감상했고, 흥미로워하는 남편의 얼굴을 보니 뿌듯했다.


시차 적응 따윈 1도 없이 매 저녁마다 꿀잠에 곯아떨어졌고, 아침 일찍 일어나 새로운 하루를 향해 걸었다.


일일투어로 방문한 토스카나 지방은 예상보다 너무 쌀쌀했고 남편의 알레르기도 극에 달했지만 풍광 하나만큼은 말 그대로 말. 잇. 못 이었다. 거대한 그림이 눈앞에 걸려있는 듯한, 그리고 그 그림에 압도되어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순간이었다.

4월의 피엔차 (너무 추워서 여름에 올 걸 그랬나 싶었으나, 여름엔 다소 황량한 누런빛의 벌판으로 변한다고 한다)


로마에서 기차를 타고 나폴리까지 가서 다시 사철로 갈아탄 뒤 1시간 반 가량 가면 소렌토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또 시타버스를 1시간가량 탄 이후에 도착한 포지타노는, 그 수고로움을 몇 번이고 감수하면서라도 또 가고플 곳이다. 특히나 남편과 함께 고심 끝에 결정했던 호텔은, 신혼여행 등 모든 여행 동안 다녔던 호텔 중 가히 최고였다.

방에서 한 발짝만 나가면 보이는, 꿈에 그리던 포지타노 절경
구석구석 채광이 좋았고, 계단 난간 하나까지 신경 쓴 인테리어와 좋은 향기가 인상적이었으며, 매일 신선한 치즈, 햄, 커피와 함께한 아침식사. 오감에 행복을 준 인생 호텔!
3박 4일간 묵었던 방.



비성수기인데다 코시국이라 손님이 예전만 못해 저녁에 식당에 가면 우리뿐이었다. 신난 남편은 실시간으로 EPL 방송을 시청했고 이곳 매니저 할아버지의 리몬첼로 술은 단연 최고였기에 매일 한 잔씩 누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저 멀리 꿀명당에서 축구 관람중인 남편
이 완벽한 테라스에 여행기간 대부분 우리 뿐이었다.


포지타노 마을 전체를 트래킹 하며 구석구석 다 경험하려 노력했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시는 아저씨께 큰맘 먹고 수채화도 한 장 구매했다. 현금만 받으신대서 고민 끝에 현금서비스까지 받았고..


인근 아말피 마을로 페리를 타고 가는 길.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에도 얼음이 곱게 갈린 레몬칠로 술을 선상에서 판매하는데 기꺼이 10유로를 지불하고 사마시며 바닷바람을 쐬는 사람들의 여유가 보기 좋았다. 유럽인들 특유의 휴가를 만끽하는 여유는 언제 보아도 부럽고 덩달아 행복해지게 만드는 전염력이 있다. 벌써 유럽은 코로나는 저 먼 과거로 잊은 듯했다.

포지타노 - 아말피로 가는 페리 위에서 보는 '프라이아노' 지역 절경. 버스 말고 페리를 타고 한 번쯤 이동해야하는 이유 / 아말피에서 유명한 레몬셔벗.


이태리 여행은 실제 오감이 즐거워서 꿈같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과거를 훑는 느낌이어서 꿈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탈리아 전역 어디에서나 마주할 수 있는 오랜 건물들의 재건축이나 심지어 신축 현장에서, 마치 '오래된 것처럼' 주변 건물과 색감, 모양을 일정하게 맞추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괜히 이곳이 문화유적의 나라가 아니구나 싶었다. 2천 년 전의 부흥과 영광이 아직도 굳건한 주춧돌이 되어 지금의 이태리를 받쳐주고 있는 것이겠지.


이러한 고대로마인들도 당시에는 이집트 문명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발전했고, 지금의 우리처럼 관광도 갔었다고 한다. 일례로 이집트 유적에 남아있는 고대 로마인의 낙서에 '와보니 별 거 없다' 고 되어있다고 하니, 지금의 이태리가 앞으로 2천 년 이후에는 또 어떤 모습일지. 문화, 예술, 건축의 중심의 영광을 그 어떤 나라에게 내어줬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어렵게 간만큼 뽕을 뽑으려 쉴 새 없이 걷고 먹고 마신 빡신 일주일. 내 생애 최고의 여행이었다. 언젠가 다시 갈 날이 또 오기를.

포지타노 막날 저녁. 저 멀리 크레인이 새로 짓는 건물은 이미 존재하는 건물 풍에 맞춰 '오래된 것처럼' 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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