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키워키 Sep 30. 2022

코시국 또태리

박살난 꿈

이태리 여행에서 무사히 돌아오면서 한 편으로 너무 아쉬웠다. 경험했던 해외여행 중 (남편까지도) 가장 여유로워 매 순간이 즐거웠고, 쉬이 가볼 수 없는 소도시에서의 경험이 기대보다 더 환상적이었기 때문. '아이가 없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더 다녀야 한다'는 코로나로 잊혔던 의지가 불끈 타올랐다.


귀국한 날부터 나는 곧장 또 다른 여행을 꿈꿨다. 이번에 여행기간을 줄여야 해서 포기했던 이태리 북부를 향한 것이었다.


여름 스위스를 가보는 것이 오랜 꿈이었는데 워낙 물가가 비싸니 이탈리아 돌로미티에서 알프스를 만끽하면 좋지 않겠냐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만큼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은, 미리 계획하는 것 또한 싫어하는데, 이후 몇 달 동안이나 '그래 가자~'라는 모호한 대답으로 일말의 가능성만 열어둔 채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달이 거듭할수록 비행기 티켓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내 마음은 저 깊이 해저로 내려앉았다. 티켓 가격도 문제였지만, 하루빨리 일정을 정하고 계획을 짜며 설레고 싶은 마음이 조바심으로까지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달을 정해진 것 없이 씨름하던 차에 결국 내가 폭발했다. '가면 가고 안 가면 안 간다고 이야기를 해야 나도 이 소중한 기간을 알차게 쓸 것 아니냐'며. 같이 가면 좋겠지만 정 어렵다면 혼자라도 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미 나는 결혼 후 나 홀로 LA 여행 경험이 있다.)


그랬더니, 남편은 그제야 '이탈리아에 마침 학회가 있으면 그 학회에 참석할 겸 가면 좋을 것 같다'며 일정을 찾아보는 시늉을 했다. 금세 기분이 풀린 나는 '오빠 바쁘니까 내가 찾겠다'며 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날 이후 한 마리의 들소가 되어 남편 전공 분야의 학회 일정을 온갖 사이트에서 뒤지기 시작했다. 결국 찾아냈다. 여름 방학기간 중 열리는 데다 마침 이태리 중북부에서 열리는 것이라서 짧게나마 돌로미티를 들를 수 있었다.


남편은 첫 해외학회 신청이라 알아볼 게 많았고 이곳저곳에 질의를 해가며 사전 서류들을 작성했다. 번거로워 보였지만 결코 멈출  없었다. 어떻게 설득하고, 어떻게 찾아낸 일정인데!


그렇게 출장 승인이 떨어진 날, 어디에 합격한 것 마냥 너무나 행복했다. 나도 드디어 비행기표를 끊고 세부 계획을 세울 수 있기에 행복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갔고, 여행 출발 5일 전 서울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우리 부모님 댁에 들렀다. 그때는 몰랐다. 모든 것이 바뀔 줄은..


함께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빠가 피곤하시다며 먼저 주무시러 가셨다. 자다가 새벽에 깼는데, 더위 타는 남편이 선풍기를 자발적으로 꺼놓은 것을 보곤 '이상하다' 싶었다. 다음 날 아침 선풍기를 왜 껐냐고 물어보니 목이 칼칼하다는 남편. 1차 철렁. 아빠는 무언가 느끼셨는지 방에서 나오질 않으시고 코로나 자가검사 키트로 검사를 하셨다. 결과는 양성. OMG.... 2차 철렁.


부랴부랴 키트를 잔뜩 사와 온 가족이 해보았는데, 남편과 남동생은 바로 찐-한 양성이 떴다. 엄마와 나는 이렇다 할 표시가 뜨지 않았다. 남자들끼리 운동을 하러 갔었는데, 혹 그때 다 같이 걸려온 건가 싶었다.


목이 칼칼한 남편과 아직 양성이 아닌 나. 나의 모든 촉은 오로지 이태리 여행의 존폐 위기로 가있었다. 둘이 약속이나 한 듯 여행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없이 일단 집으로 돌아와 푹 쉬었다. 기적처럼 내일 음성이 뜨길 바라며.




그날 밤. 역대급 고열과 몸살이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어 말 그대로 낑낑대며 앓았다. 되려 남편은 목감기약을 먹고 나서 좀 나아진 참이었는데, 나는 중환자가 되었다.


화장실에 가는 걸음마다 온갖 뼈마디가 아팠고, 얼음팩을 올려도 별 소용없는 열은 겁이 날 정도였다. 더 큰 문제는 목이었다. 어렸을 적 이후로 편도염을 앓은 적이 없는데, 거울에 비추면 바로 보일 정도의 허연 편도 염증들. 침도 삼키기 어려웠다.


다음 날 여행이고 뭐고 병원에 갔다. 목이 쉬어선 꾸엑거리며 "편도염.. 아닐까요?"라고 여쭈어보았는데 1초 만에 "이거 코로나네." 라며 야속하리만큼 뛰어난 눈썰미를 뽐내시는 샘. 그만큼이나 날렵하게 채취용 짝대기로 코와 목을 훑으셨다.


이미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부정하고 싶은 현실. 양성. 3년 동안 잘 버텼다 싶었는데 결국 걸리고야 말았다. 온갖 기대와 공을 들인 여행 3일 전에.


남편에게 미안했다. 우리가 친구들에게 옮은 것인지, 아빠가 어디선가 걸려오신 건지 알 수 없지만, 그 난리법석을 피워가며 재촉해서 남편이 일정을 잡게 했고, 부모님 댁에 들르자고 한 것도 나였는데. 다른 가족들에게도 미안했다. 내가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옮아와서 가족에게 다시 옮긴 것일 수도 있다. 엄마도 양성이 떴다는데 괜찮으시려나. 여행 가서 맛있는 것 많이 먹으려고 미리 사랑니 4개를 몽땅 빼고 회복까지 마쳤는데, 아쉽다.. 현실과 타협하는 몇 초동안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며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진료를 받고 나온 나에게 "괜찮아 자기?"라고 묻는 남편. 우리 얼른 여행 취소해야겠다고, 괜히 여행 추진한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했다.


남편은 푸념 한 마디 없이 "미안할 게 뭐 있어. 진료받아서 다행이다" 면서 토닥여줬다. 그리곤 덧붙였다.



"이래서 내가 계획을 안 세워~"


웃픈 한 마디에 갑자기 눈앞이 뿌예지기 시작했다.



돌로미티는 한 여름밤의 꿈이 되어버렸는데 그 누구도 잘못한 건 없다. 마음을 다잡고 하나씩 취소했다. 비행기, 호텔, 투어, 레스토랑.... 신기했던 건 몸이 너무 아파서였는지, 덜 서운하려고 마음에 방어기제가 작동한 건지, 생각보다 슬픔과 아쉬움이 크지 않았다는 거다. 코로나 양성 진단으로 불과 출발 3일 전인데도 수수료를 물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대다수였기에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다(이때까지만 해도 귀국 전 PCR 의무 등 규정이 있었다).


하나하나 어떤 마음으로 예약했었는지 머리를 스쳤고, 일정대로 방문했다면 어떤 경험을 했을까- 궁금하지만, 일련의 예상 못한 일들에 한결같이 너그럽고 여유로운 남편이 옆에 있다. 여행 가니 얼마나 좋겠냐며 내 일보다 행복해하시고 다 큰 딸에게 꼬깃꼬깃 그러나 결코 적지 않은 용돈을 쥐어주시는 부모님이 있다. 이탈리아는 몇 번이고 가볼 만하다 말씀하신 시부모님도 떠올랐다. 이제 좀 쉬면서 놀아보라며 마음 편하게 해주는 동생도 있고.


가려했고 갈 뻔했다는 것에 만족하자. 계획을 하도 열심히 세웠더니 마치 다녀온 느낌도 난다..


"여행이 주는 선물은 목적지에 있는 것이 아닌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에 있다."



몸이 나으니 또 아쉽다......

매거진의 이전글 코시국 이태리 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