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 일주일 전. 일정은 고사하고 비행기표를 끊자든지 숙소를 알아보라든지그 어떤 언질도 없다. 슬쩍 물어보니 갑자기 일이 몰려 언제 출발해야 할지 모르겠단다. 재촉해봤자통하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알기에 기다리기로 했다. 공유하는 구글 캘린더에 등록된 일정이고 무엇보다 본인이 가서 회의를 진행해야 하니 알아서 할 거라 믿었다.
학회 D-1. 저녁을 먹으며 참다못해 물었다.
"내일 학회 안 가?"
전 날까지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는다니 해도 해도 너무했다.
"어, 참 표 알아봐야겠다."
보란 듯 가장 가까운 공항은 매진이었다. 몇 시간 거리의 공항들도 모두표가 동났다. 광주공항에서 김포행 비행기를 탄 후, 김포에서 2시간 기다렸다 제주행 비행기로 환승해 무려 7시간가량 소요되는 50만 원짜리 표만이 남아있었다. 여행이 문제가 아니라 학회장에도 못 갈 위기에 처한 남편은 그제야 전전긍긍했다. 속에서 천불이 났지만 일단 떠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급선무이니 밥 숟가락을 내려놓은 채 표를 찾아 헤맸다.
그때 불현듯 배가 떠올랐다. 남편도 옳다구나 하더니 곧장 검색을 시작했다. 그러나 극성수기답게 가까운 항구들은 매진이었고 전남 고흥 녹동항에서 아침 9시 반에 출발하는 배편 표만이 남아있었다. 이마저도 몇 장 안 남은 마당에 서둘러야 했다.
고흥까지 차로 3시간 반 + 배 타고 4시간 + 내려서 이동시간까지 생각하니 솔직히 가고 싶지 않아졌다. 그러나당연히 같이 가는줄로 아는 해맑은 남편을보니 차마 싫단 소리가 안 나온다. 언제 이렇게 (불편하게)또 제주도에 가보겠나 싶어 "배 좋지~"라며 기라도살려주기로했다.
새벽 4시. 사과 한 개를 나눠먹은 우리는 커다란 캐리어를 덜덜 끌고 집을 나섰다. 남쪽으로 하염없이 달리던중에 창 밖으로 뜨는 해를맞이했다.
녹동항 도착 후 식당에서 국밥을 시켰는데 하필 다 먹어갈쯤 남편 뚝배기에서 구더기가 발견됐다.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식당을 나서는길, 사장님 마인드가 별로라며 툴툴댔지만 사실 새벽부터의 이 강행군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음에 슬슬 성질이 난 참이었다. 벌레도 단백질이니 괜찮다는 남편은 그런 내 마음을 읽곤 재빨리 진화작업에 나선 듯했다.
승선 줄에 섰는데딱 봐도 우리처럼 큰 짐을 든 사람이 없다. 새벽부터 양복을 빼 입고 커다란 캐리어를 붙든 채 계단을 낑낑 오르는 남편은 이곳에 어울리지 않기론1등 같았다. 여차저차 선실에 도착했지만 등을 기댈 수 있는 벽면들은 진작 선점됐고 돗자리, 담요 등으로 영역표시도 돼있다.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자고 싶지는 않았으나 몰려오는 졸음에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드러누웠다. 딱딱한 바닥으로부터의 냉기가 오롯이 느껴지는데 남편은 옆에서 코까지 골며 잘 잔다.
그런데 그 순간, 옆에 계시던 아주머니가 툭툭 치시더니 빈 생수병을 건네주신다. 기대도 안 했던 '베개'로 뒷목을 받치니 살 것 같다. 아주머닌 또 한 번 툭툭 치시더니 이번엔 병을 둘둘 말아서 베라며 손수건까지 주신다.
2시간여를 달게 자고 일어나 생수병 베개를 아주머니께 반납했다. 책을 읽고 계시던 아주머니는 한사코 됐다며, 계속 자라 하셨지만 감사히 돌려드린 후밖을 둘러보러 나섰다.
돌아오니 아주머니와 그 남편분께선 실신한 듯 그새 곯아떨어져 있으셨다. 본인도 피곤하셨으면서 흔쾌히 빌려주신 페트병이 이번엔 아주머니 뒷목을 받치고 있었다.
제주항에내리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부랴부랴 예약해둔렌터카 업체로 향했다.
빌린 차를 타고 남편의 학회장에 도착한 시각은 낮 2시 반. 새벽 4시에 일어나 이제야 제주땅을 밟다니. 동남아를 왔어도 왔을 시간.. 늦었지만 정갈한 점심밥을 먹었다.
학회에 참석했다 나온 남편은 신발만 갈아 신었고 우린 함께 오름 한 개를 도장 깨기 했다. 한라산에 오른들 볼 수 없는 한라산 전경이 긴 하루를 달래주듯 펼쳐졌다.
고근산
저녁이 되어서야 숙소 체크인을 했고 피로가 밀려왔다. 그 와중에 다시 노트북을 펼치고 일을 하는 남편을 보니 안쓰러웠지만 그대로 뻗어버렸다.
눈 붙였다 일어나 먹은 갈치조림 속엔 부드러운 제주산 고사리가들어있었는데 아주 요물이었다.집에 돌아가서도 여운을곱씹자며 말린 고사리를 한 봉지 샀다.
올레왕갈치
다음 날, 일정이 있는 남편과 헤어진 후 찜해둔 오름으로 향했다. 제주에 올 때마다 차를 몰고 다녀서 몰랐는데 인도가 중간에 끊기는 일 없이 예상보다 걷기에 편했다.하루종일 10km가 넘는 거리를 걸으며 늦가을 정취를 흠뻑 느꼈다.
다시 맞이한 저녁. 유명 흑돼지집앞에 도착했으나 어마어마한 대기줄을 보곤 바로 돌아섰다. 아쉬운 대로 근처 소고기집을택했는데 기대를 크게 뛰어넘었다.
간장양념을 발라 숯불에 굽는 소갈비의 맛은 말해 무엇하냐지만 하이라이트는 오돌뼈떡갈비였다. 하나하나 손으로 다져 만드셨다는데 모양은 괴상했으나 구워서 입에 넣으니 술을 부르는 맛이다. 적당히 오독한 식감의 오돌뼈와 부드러운 잔 살들이 함께 씹히며 고소한 육즙을 뿜고끝엔 단짠양념과 어우러진다. 구워 먹으라고 주신 새콤한 백김치도 몇 번이나 리필했는 지 모른다.
돈둥지
숙소로 복귀하던 중 남편이 발견한 수제맥주집에들렀는데 3가지 맛 테이스팅이 가능하단 말에 일단 흥이 돋았다. 수많은 종류 중 한 흑맥주가 입맛에 찰떡같이 들어맞아 인생맥주로 등극했다. 초콜릿, 커피향으로 시작하는듯 하다가 바닐라와 시나몬향이 적절한 비율로 존재감을 드러낸다.달지 않은데 달게 느껴질 정도였다.
제주약수터, (오른쪽) 최애맥주 헨젤과그레텔
알찬 며칠을 뒤로하고어느새 다시 제주항에 도착했다. 이번엔 일찌감치 벽 쪽 자리를 맡아등을 기댔고 여유로이 귤까지 까먹었다. 역시 사람은 경험을 해야 한다며 의기양양하기도 잠시, 갑판에나가보니 플라스틱 의자를 깔고 육지에서 사 온 피자, 치킨을 드시는 찐고수들이계셨다.
등을 기댈 수 있는 행복
두 번째 승선에 걸맞은여유가 생긴 우리도노을을 배경 삼아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진라면이 전문요리로 느껴지는 선상 마법
기껏 선실 벽자리를 맡아두곤 갑판과 식당에서만 내내 놀고 마셨고,텐션이 올라 덕담을 주고받았다.
"배 짱이다. 진짜 배 타고 오길 잘했다."
"그니까 오빠. 아까 그 사람들 봤지? 우리도 뭐 사 갖고 타자 다음엔."
또 타자니. 이런 말을 뱉다니. 속 터진다며 남편을 흘겨보던 며칠 전의 나 자신은 간데없다.
이보다 더 비효율적일 수 있을까 싶은 제주행이었다. 남편은 일찌감치 표를 끊고 우아하게 비행기 태워주는 위인은 못 되었다(역시나). 그러나 새벽부터 운전하고 짐과 나를 케어하면서도 밤 새 일 하고, 그 와중에 느꼈을 피곤함이나 짜증은 감내해내는 강한 체력과 근성을 지녔다. 비행기가 주지 못 하는 낭만을 배가 줬던 것도 사실이다. 인스타 맛집에서 발길 돌린 덕에 인상적인 식당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남편은 어깨가 한껏 치솟은 채로 말했다.
"내가 이러니까 예약을 안 해~ 결국 다 방법이 있다니까."
무계획자의뻔뻔한 자기 합리화임에도 인정할 부분은 있다. 세상 불편하게 제주에 왔다가 의도치 않은 선택이 주는 즐거움도 맛보고 돌아간다는 것. 무수한 방향으로 뻗는 가지들처럼 모든 길엔 고유한 가치가 있는 게 분명하다. 인정하기 어렵지만내가 미리 찍어둔 길만이 유일한 답은 아니다. 답은 여러 개일 수 있다. 아니 어쩌면 답이란 건 없을 수도 있다.. 제주 뱃길이 나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