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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eral pharmacist Jan 11. 2017

감기약을 3일이나 먹었는데 왜 낫지 않죠?

약사님, 지난번 병원에서 처방 받은 약을 3일이나 먹었는데도 감기가 떨어지지 않아서 여기 병원으로 다시 왔어요. 이건 좀 센 약인가요? 감기 똑 떨어지게.

약국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 중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먹으면 똑 떨어지는 감기약이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세상에 감기 똑 떨어지는 약은 없습니다. 일반적인 감기약들은 감기의 증상을 완화하기 위한 약이지 감기 자체를 치료하는 약은 아닙니다.


실제 감기로 병원에서 처방을 받으면 처방전에 [상병기호]라는것이 나오는데 감기에 나오는 상병 내용은 "급성 상기도 감염증", "알러지성 비염", "급성 호흡기 감염증", "급성 기관지염"등입니다. "감기"가 아니라 감기에 수반되는 증상들을 치료하는 목적의 약인거죠.


일반적으로 한국의 병원에서 처방되는 감기약은 다음과 같은 약을 포함합니다. 증상에 따라 가감이 되죠.


1. 항생제 (주로 기관지, 인후 염증)

2. 해열, 진통, 소염제

3. 항히스타민제 (콧물, 재채기, 알러지)

4. 비충혈제거제 (코막힘)

5. 진해거담제 (기침, 가래)

6. 스테로이드제제 (염증)

7. 소염효소제 (염증)

(아래는 옵션)

8. 기관지 확장제

9. 소화제

10 소화성궤양용제


위의 약들 중에서 감기 자체를 치료하는 약은 하나도 없습니다. 감기 증상을 완화하는 약입니다.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종합감기약 역시 동일한 계열의 성분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감기를 똑 떨어뜨리는 약은 존재하지 않는것이죠.

(감기약에 항생제를 쓰는것이 옳다 그르다 하는 논쟁은 일단 접어두겠습니다. 개인적 의견은 있으나 이는 다음에 따로 얘기하는 걸로 하죠.)


감기는 약 먹으면 일주일, 약 안먹으면 7일이면 낫는다.


라는 말이 절대 괜히 있는 말이 아닙니다. 그럼 약 안먹어도 낫는데 왜 감기약을 먹나요?

일단 감기에 수반 되는 증상이 불편하기 때문이죠. 콧물이 줄줄 흐르고, 목이 부어서 침도 못 삼키고, 하루 종일 기침을 하면 일상 생활이 너무 힘들죠. 감기로 인한 증상을 완화시키고, 이로 인해 수반될 수 있는 다른 합병증을 막기 위해서 약을 복용하는겁니다.


2008년 EBS 다큐프라임에서 <감기약의 진실>이라는 2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영상이나 편집도 좋고, 내용도 훌륭합니다. (IPTV에서 쉽게 볼 수 있으니 한 번 보시는걸 추천합니다.) 주로 "한국은 왜 이렇게 감기에 약을 많이 쓰나?" 라는 주제를 외국의 사례 등을 비교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감기에 항생제를 복용 하는건 말이 안된다.', '감기에 걸렸으면 잘 먹고 푹 쉬는게 제일 중요한데 왜 약을 먹나?' 라는 외국의 주장들을 펼칩니다.

네, 저도 많은 부분 동감합니다. 실제로 저도 해열진통제나 항히스타민제 정도만 필요에 따라 복용하고, 물을 많이 마시고 푹 쉬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환자분들께 강요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약을 복용을 줄이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고 말할 수 없는, 한국이 왜 그렇게 과하게 감기약을 복용하는가에 관한 저의 생각은 아래와 같습니다.


1. 한국인의 노동, 학업 환경은 너무 가혹합니다.


OECD도 야근 수당 없는 야근과, 눈치 보느라 늦어지는 퇴근은 모를껄요.


한국은 멕시코와 함께 OECD 노동시간 최상위권을 달리는 국가입니다. 밥먹듯 야근을 하고, 잔업이 넘쳐 나는데 감기로 병가를 내고 쉰다구요? '감기에 걸렸으니 오늘은 칼퇴 하겠습니다.' 라고 하는것도 눈치를 봐야 할 직장인이 얼마나 많습니까?


"졸업 해도 헬이야. 지금 열심히 해도 말야"


수능을 앞 둔 고3학생이 감기에 걸렸다고 한달에 수십만원 하는 학원을 빠진다고 하면 '그래 건강이 우선이니 푹 쉬거라.' 하는 부모님 보다는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 주사 한방 맞고 감기약 먹고 학원가자.' 하는 부모님이 더 많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도저히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가 없죠. 약이라도 먹고나서 일을 해야하고, 공부를 해야합니다. 현실이 그런걸 어쩌겠습니까.


2. 감기에 대한 잘못된 인식


처음 질문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감기약 독하게 며칠 먹고 나면 감기가 낫는다.' 라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죠. 아무래도 이런 인식은 젊은분들 보다는 어르신들 사이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는 "독한약"은 "졸리는 약"인 경우가 많습니다. 독한 약을 먹어서 빨리 좋아진게 아니라, 졸리고 나른해서 어쩔 수 없이 푹 쉬고 나니 나아진 경우가 많아요. 꼭 약을 많이 먹고 쉬어야 할 필요는 없어요.

일반적으로 감기는 진행에 따라 증상이 돌아가면서 나타는 경우가 많습니다. 코가 시큰시큰 하다가, 콧물이 나고, 기침이 오면서, 목이 붓고, 열이 좀 나다가 괜찮아 진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사람마다 패턴은 달라요.


콧물만 좀 나고 목이 간질간질 해서 병원을 갔다고 가정 해 봅시다. 병원에서 항히스타민제와 가벼운 진해거담제 정도만 처방 해 주시면서 이틀 뒤에 한번 더 보자고 하십니다. 환자는 이틀간 열심히 약을 먹었습니다. 콧물은 좀 나아진 느낌인데 이제 목이 붓고 아픕니다.

'이틀이나 열심히 약을 먹었는데 왜 감기가 안 낫고 더 심해진거야. 콧물만 좀 나고 불편한 정도였는데 이제 목이 아프잖아. 이 의사 선생님은 잘 못보시나봐.'

라고 하면서 다른 병원을 찾습니다.


'헐 요새 누가 저러나?'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많으시죠? 실제로 자주 있는 일입니다. 이전에 처방과 겹치는 약이 있어서 "전에 드시던 감기약 중에 남은 약 있나요? 중복되는 약이 있네요?" 하고 여쭤보면 "다른 병원가서 감기약을 3일분 받았는데 감기가 안 낫더라구요. 그래서 여기로 다시 왔어요. 오늘은 약 좀 세게 나왔나요?"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저도 의료인의 한사람으로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러한 대중의 인식이 의사, 약사로 하여금 과잉, 방어진료를 하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감기 증상이 돌아가며 나타날 것을 알기에 아직 나타나지 않은 증상에 관한 약까지 처방을 하게 되고, 항생제를 한번 더 처방에 넣게 됩니다. 과잉, 방어진료를 반대하지만 일정 부분 이해는 합니다. 의사, 약사에게는 환자의 평판이 생업과 연관 된 일이니까, 먹고사니즘은 그런거니까요.


쓰다 보니 좀 길어졌네요. 정리하죠.


감기 자체를 치료하는 약은 없습니다. 감기 증상을 완화 시켜 주고, 증상의 진행을 막을 뿐입니다.
물을 많이 마시고, 충분히 가습을 하고, 휴식을 취하세요. 그것이 감기를 이기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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