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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을 파는 잡화상 Jul 10. 2023

아는 개

  시SSAY

        

주말 오후 우산을 쓰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 아파트 정자에 앉아 분수를 멍하니 쳐다볼 때였다. 분수대 저 끝에서 떠돌이 개 한 마리가 느릿느릿 멈칫멈칫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개는 지쳐 보였다 잠시 비를 피할 곳이 필요한 것 같았다. 개는 테이블 맞은편 오른쪽 빈 바닥에 앉았고 나는 개를 보았다. 많은 것을 경험한 눈빛이었다. 쓸쓸하고 고단한 체념이 윤기 없는 털에 눌어붙어 있었다. 이윽고 또 다른 개가 어슬렁어슬렁 분수대를 가로질러 먼저 온 개 옆에 앉았다. 먼저 온 개는 그 개가 올 줄 알았던 것처럼 한쪽으로 자리를 비켜줬다. 개들은 아주 긴 생을 살아온 듯했다. 너무 오래 살아 사람보다 세상을 더 많이 알고 있는 느티나무처럼 나를 쳐다보던 개들은 편한 자세를 찾아 두어 번 몸을 뒤척이더니 분수대를 향해 나른하게 엎드렸다. 우리는 고요히 분수대에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봤다 어스름한 저물녘이었다. 안개비는 가랑비가 되었고 바람이 적당하게 불었다. 솟구치던 물줄기가 사라진 분수대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만 나직이 들렸다. 이윽고 사위는 어둑했고 나는 문득 이 개들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 역시 나를 알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수천 년이 뭉쳐진 어떤 순간에 함께 있었고 나는 무심코 윤회를 엿본 듯싶었다. 떠돌이 개가 걸어온 길들이 보였고 또 개가 걸어야 할 길을 알 것 같았다. 나는 나를 알고 싶어 전생을 떠올려봤지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비 오는 날 개와 함께 비 내리는 분수대를 무심히 쳐다보는 어떤 그리움만 아득하게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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