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아닌 '머리'로 느끼는
시각예술의 아름다움

아름다움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한 신경미학의 노력

by 이상준

Index


Ⅰ. '절대적인 아름다움'이라는 환상

Ⅱ.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낀다'는 명제에 대해

Ⅲ. 아름다움은 쾌감인가

Ⅳ. 아름다움에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원리'가 있을까?

Ⅴ. 미적 경험의 '맥락'에 주목하는 신경미학

Ⅵ. 아름다움의 원리를 욕망하는 신경미학





'절대적인 아름다움'이라는 환상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 1991)>


1991년 개봉한 디즈니의 클래식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에는 '진정한 사랑을 찾기 전까지는 야수로 살아야 하는 왕자'와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인 벨이 등장합니다. 이윽고 벨과 야수는 사랑에 빠집니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야수의 저주는 풀리고, 야수는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왕자가 됩니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지요.


「미녀와 야수」가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진정한 사랑'에 대한 교훈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여성'이 '추한 외모를 가졌지만 착하고 진실한 야수'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스토리는 이 교훈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이를 통해 이 이야기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름다움이 전부가 아니며,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 가치 있는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하지만 벨이 왜 아름다운지, 야수가 왜 추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힘을 얻지 못했습니다. 미적 취향을 떠나 본질적으로 절대적인 아름다움절대적인 추함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슈렉(Shrek, 2001)>에 등장하는 피오나 공주


그러나 「슈렉(Shrek)」에 등장하는 피오나 공주는 이러한 내러티브에 통쾌한 반전을 선사합니다.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한 나라의 공주였으나 괴물의 모습으로 변하는 저주에 걸리고 만 피오나. 그녀는 늪지대의 초록 괴물인 슈렉을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극의 마지막, 슈렉과 피오나는 '진정한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키스를 하지만, 저주가 풀린 후 피오나의 모습은 인간이 아닌 괴물이었습니다. '잘생긴 왕자님'도, '아름다운 공주'도 등장하지 않는 해피엔딩. 이 이야기 안에서 '절대적인 아름다움/추함'의 경계는 힘을 잃습니다.


이 ‘아름다움’이라는 감성의 원리, 그리고 그 절대성에 대한 의문은 인류의 오랜 고민거리 중 하나였습니다. 이 주제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우리가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끼는지, 또 그것을 왜 아름답다고 느끼는지에 답하는 것은 미학(Aesthetics)이라는 분야가 오랫동안 좇은 과제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과 행동의 원리를 신경계 차원에서 규명하는 인지 신경과학(Cognitive Neuroscience), 그리고 미적 경험을 신경과학적 접근으로 면밀히 살피고자 하는 신경미학(Neuroesthetics)은 '아름다움이라는 감성도 뇌의 활동과 맥락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이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와 몇 가지 실험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단,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상의 범주가 매우 넓은 바, 이번 글에서는 '그나마 객관적인' 조형요소들로 구성된 시각예술에 한정하여 이 주제에 대해 다루어 보겠습니다.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낀다'는 명제에 대해


아름다움이라는 감성을 '인지 신경과학'이라는 렌즈로 들여다보기 앞서,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낀다'라는 명제에 대해 잠깐 짚어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림이나 조각을 감상하기 위해 미술관을 방문하고, 작품을 감상합니다. 관객은 예술가의 생애나 작품에 대한 해설을 '머리로 이해'하고, 때로는 그 과정을 생략하며 작품의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느낀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인류는 오랜 기간 '몸(Body)'과 '마음(Mind)'이 분리되어 있다는 심신 이원론(心身二元論)을 굳게 믿어왔습니다. 즉 몸은 물리적인 영역이면서도 신경계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고, 마음은 정신적인 영역이면서 심리적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이죠. 이러한 관점으로 인해 그리스 시대부터 중세까지는 마음이 심장에 위치할 것이라는 설명이 큰 힘을 얻었습니다. 'Heart'라는 단어가 '심장'이라는 뜻은 물론 '마음'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하트 모양'이 심장의 모양을 본뜬 것이라는 사실은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르네 데카르트와 '정신의 자리'인 송과선>


그러나 서양 근대철학의 출발점인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는 생각이 좀 달랐습니다. 그는 심장이 아닌, 뇌의 '송과선(Pineal Gland)'이라는 기관이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담는 자리라고 주장했지요. 데카르트는 심신 이원론을 지지했고, '사유하는 마음'이 곧 인간이며, 몸은 운동하는 연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 몸과 마음이 만나는 장소를 송과선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역설적으로 '정신은 육체의 일부'라는 관점의 확립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후 인지과학의 탄생과 인지 신경과학의 대두, 그리고 EEG, MEG, CT, fMRI 등 뇌의 활동을 살필 수 있는 측정 기법들이 발전하면서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심신 일원론(心身一元論)이 더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정신의 상당한 영역이 뇌의 활동에서 비롯한다'는 명제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들이 축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뇌의 각 부분과 부분 간의 상호작용이 인지활동 및 행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이 밝혀졌고, 이를 오롯이 담아내는 뇌 지도화(Brain Mapping)가 인간의 인지과정과 행동의 원리를 설명해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접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모든 정신적 활동을 설명하기에는 시기상조인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심신 이원론이나 정신적 활동을 담당하는 신체 기관이 정해져 있다는 주장 등이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지요. 때문에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낀다'는 문장은 오늘날에도 꽤나 유효한 관용어구입니다. 즉 같은 정신적 활동이더라도 '이성'과 '감성'을 주관하는 기관이 분리되어 있고, 전자는 뇌, 후자는 심장(가슴)이 주관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시각예술의 감상'에 한해서 이 명제는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작품을 보며 느끼는 '아름다움'이라는 정서마저 사실은 뇌 활동의 결과물이자 '판단'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은 쾌감인가


일찍이 '아름다움'이라는 정서를 '느낌'의 차원에서 접근함으로써 그 본질을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아름다움'을 규명하고자 했던 연구자들은 이 '긍정적인 정서'를 '쾌감(Pleasure)'과 연결 지었습니다. 즉 시각예술이라는 '자극'이 일련의 과정을 거쳐 인간의 쾌감 중추를 활성화시키고, 이를 통해 인간은 작품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긍정적인 정서, 즉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대니얼 벌린(Daniel Berlyne)과 크레이틀러 부부(Hans/Sulamith Kreitler)의 저서


실험 미학(Experimental Aesthetics)은 이러한 관점에 충실했던 분야입니다. 이 분야의 개척자인 대니얼 벌린은 (1) 긍정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쾌감에는 각성 수준의 변화가 수반되고, (2) 뇌에서 쾌감과 각성을 관장하는 부위가 인접해 있으며, (3) 쾌감과 관련된 대상들은 주로 각성의 증가와 감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그는 시각예술의 새로움(Novelty), 복잡함(Complexity), 놀라움(Surprise), 애매모호함(Ambiguity), 이질성(Heterogeneity), 불규칙성(Irregularity)으로 인한 각성의 증가와 감소가 쾌감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이 곧 미적 만족도로 직결된다고 파악했지요.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각성이 왜 쾌감으로 이어지는지'를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쾌감과 각성이 한 짝임은 분명하지만, 공포나 고통 역시 각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구멍을 적절히 메운 것은 한스 크레이틀러(Hans Kreitler)와 슐라미스 크레이틀러(Shulamith Kreitler)의 긴장-이완(tension-resolution) 이론입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려고 하는 인간의 특성이 예술을 욕망하도록 만듭니다. 인간은 삶에서 얻는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하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항상성을 유지하고자 합니다. 최선의 방법은 긴장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어렵거나 그 원인을 모를 때에는 그 긴장을 다른 활동과 연계시킵니다. 즉 원인 불명의 긴장을 새로운 활동으로 인한 긴장과 연합시키고, 새로운 긴장을 해소함으로써 잔여 긴장까지 털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예술 감상'이 바로 '새로운 긴장'을 유발하기 좋은 활동이라고 말합니다. 하나의 시각예술이 담고 있는 밝기, 방향, 모양, 색의 대비와 다양한 메시지는 감상자에게 긴장을 선사합니다. 긴장 이후 찾아오는 이완은 인간의 쾌락 중추를 자극하고, 이는 '아름다움'이라는 느낌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크레이틀러 부부가 말하는 미적 쾌감의 본질입니다.


이와 같은 접근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고차원적인 정신 활동'인 예술 감상의 원리를 밝혔다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무릇 '원리와 본질을 규명한다'라는 것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규칙을 발견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원인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경험 과학적 증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잠깐 언급한 신경미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보편타당한 법칙'을 탐색하고자 하는 젊디 젊은 학문입니다.




아름다움에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원리'가 있을까?


세미르 제키(Semir Zeki)


세미르 제키(Semir Zeki)는 런던 대학(University College London)의 신경미학원(The Institute of Neuroesthetics)을 설립한 신경미학(Neuroesthetics)의 개척자입니다. 그는 그의 저서 Inner Vision에서 ‘예술(미술)의 기능은 뇌의 기능을 확장한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가 연구를 통해 밝히고 싶었던 것은 시각 예술 작품을 볼 때 모든 사람의 뇌 속에서 일어나는 '보편적인 신경 활동과 그 원리'였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시각 뇌(Visual Brain : 시각적인 정보를 중심적으로 처리하는 시각 중추)에 대한 신경과학적 담론과 시각예술을 접목했지요.

그의 연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각 뇌의 '기능적 특수화(Functional Specialization)'에 대해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개념을 간단히 풀어 이야기하자면, 시각을 담당하는 후두엽은 여러 개의 시각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시각 영역은 형태나 색채, 움직임과 같은 시각적 속성들을 각각 따로 처리하도록 특수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다음과 같은 프로세스로 작동합니다.


1. 빛은 외부 대상을 반사하여 우리의 눈을 통과하고 망막에 맺힙니다.

2. 빛을 감지하는 망막의 수용기(Recepter)는 이를 전기 신호로 변환하여 후두엽으로 전달합니다.

3. 후두엽에 도착한 시각 정보는 제1차 시각 영역(Primary Visual Cortex : V1)을 거쳐 V2로 이동합니다.

4. 이후 V3은 '형태'에 대한 정보를, V4는 '형태'와 '색'에 대한 복합적인 정보를, V5는 '운동'에 대한 정보를 처리합니다.


제키는 이렇게 기능적으로 분화된 시각 뇌가 수많은 정보 속에서 '공통적이고, 본질적이며, 변하지 않는 정보'를 추출한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인간의 행동과 정신작용이 뇌를 통해 이루어진다면, 시각예술을 보고, 해석하고, 느끼는 일련의 과정 역시 뇌의 산물(Product of the Brain)이라고 주장했지요. 즉 '뇌의 신경 활동' 그리고 '시각예술' 사이에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의 원리를 밝힌다면, 시각예술을 통해 경험하는 '아름다움'의 원리 역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미르 제키(Semir Zeki)와 히데아키 가와바타(Hideaki Kawabata)의 실험을 도식화한 그림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제키는 공동연구자인 히데아키 가와바타(Hideaki Kawabata)와 함께 한 가지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연구팀은 우선 실험 참가자들에게 정물화(still life), 인물화(portrait), 풍경화(landscape), 추상화(abstract) 등 다양한 형식으로 그려진 작품 300점을 2초 간격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 후 각 작품이 아름다운 정도를 1점-9점까지로 평가하게 한 후, 그 결과치를 기준으로 작품들을 아름다움(beautiful), 보통(neutral), 추함(ugly)으로 분류했습니다. 이후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이 각 기준에 따라 분류된 작품들을 감상할 때 뇌의 어떤 부분이 활성화되는지 살펴보았지요.

아름다움/추함으로 분류된 작품을 감상할 때 활성화된 뇌 영역


그 결과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이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할 때는 내측 안와전두엽(medial Orbitofrontal cortex, mOFC)이 유의미하게 활성화되고, '추한' 그림을 감상할 때는 mOFC의 활성화가 크게 저하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mOFC는 욕구 및 동기에 관련된 정보를 처리하는 변연계와 직접 연결되어있고, 쾌락과 밀접한 보상 회로(Reward Circuit)에 해당합니다. 또한 정서적 정보를 상황에 맞게 조절하고, 적절한 사회적 행동을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지요.


이러한 연구 결과는 시각예술이 감상자에게 선사하는 '아름다움'의 신경학적 근거를 제시합니다. 아울러 mOFC가 '아름다움'이라는 정서를 주관하는 핵심적인 부분이라면, 이는 느낌이 아닌 '의사결정'이나 '판단'의 영역이며, 작품의 시각적인 조형요소와 미적 판단이 mOFC를 활성화시켰을 때 '쾌감'을 느낀다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즉 이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우리는 가슴이 아닌 오롯이 머리, 즉 '뇌'를 통해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아름다움'은 우리가 외부 세상을 인지하고 해석할 때와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이 뇌의 해석에 따라 세상을 인지하는 것처럼,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물론 예술적 취향이 형성되는 것조차 뇌의 작용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제키와 가와바타의 연구에서 '아름다움', '추함'으로 분류된 작품들이 실험 참가자들의 '공통된' 뇌 영역을 활성화했다는 사실은 아름다움/추함을 판단하도록 만드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기준과 원리'가 있음을 시사합니다. 정말 그렇다면, '아름다움의 절대성'은 성립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미적 경험의 '맥락'에 주목하는 신경미학


임마뉴엘 칸트(Immanuel Kant, 좌)와 에곤 쉴레(Egon Schiele)의 죽음과 소녀(Death and the Maiden, 우)


독일의 철학자 임마뉴엘 칸트(Immanuel Kant). 그에게 있어 '아름다움'이란 객관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주관적인 개념입니다. 즉 칸트는 아름다움이 어떤 대상의 객관적인 요소가 아닌, 그 대상을 바라보는 사람의 주관적인 판단이나 만족에서 비롯된다고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추함'의 영역에 있는 것일지라도 한 개인에게 즐거움과 쾌락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실제로 미적 기준은 개인에 따라, 사회에 따라, 문화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는 '개인', 그리고 '시각예술'에 국한하여 생각해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는 에곤 쉴레(Egon Schiele)의 그림을 보고 '아름답다'라고 느끼는 반면, 어떤 이는 불쾌함을 느끼거나 '기이하다'라고 평가하니까요.


하지만 앞서 살펴본 신경과학의 담론들은 인간의 주관적 경험을 크게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인간의 뇌와 신경구조에서 아름다움이라는 정서를 경험하도록 만드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찾고자 하지요. 하지만 최근 신경 미학자들은 이러한 한계점을 극복하고 미적 경험의 '맥락'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헬무트 레더(Helmut Leder)와 그의 연구팀이 대표적입니다.


헬무트 레더(Helmut Leder)의 미적 경험 모델(Model of Aesthetic Experiences, 2014)


레더와 그의 연구팀은 '경험적 맥락'이 미적 경험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미적 경험 모델'을 중심으로 미적 경험을 일련의 과정으로 파악하며, 이러한 접근을 통해 다양한 상황과 조건 속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미적 경험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이미 충분히 복잡하기 때문에) 이번 글에서는 다루지 않겠지만, 위의 모델에서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맥락'과 '경험'입니다.


레더의 모델은 감상자의 사전 지식, 흥미, 미적 취향, 이전의 경험 등과 같은 의미적 맥락(Semantic context)은 물론 미술관, 갤러리, 사적인 공간과 같이 경험이 실제로 일어나는 물리적 맥락(Physical context)을 아우릅니다. 실제로 우리가 시각예술을 감상한다는 것은 단순히 자극-반응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요. 예술가나 작품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전문성을 지닌 이가 느끼는 미적 경험은 그렇지 않은 이들과 확연하게 다를 것이고, 집안에서 모니터를 통해 보는 회화를 감상하는 것과 미술관 전시에서 회화를 감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니까요.


실험 참가자에게 제시된 자극(좌) & 라벨에 따른 활성화 정도(우)


그럼, '의미적 맥락'이 감상자의 미적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규명한 실험 하나를 살펴보겠습니다. 울리치 커크(Ulich Kirk)와 그의 연구팀은 그림의 원본에 대한 '기대치'가 미적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에게 여러 가지 추상회화를 제시하되, 일부 이미지에는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라벨(label)을, 나머지는 컴퓨터로 제작한 비(非) 예술 작품이라는 라벨을 함께 제시했습니다. 사실은 제시된 이미지 모두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었어요.


이후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제시된 이미지에 대한 미적 선호도를 평가하도록 하고, 이들의 뇌 활동을 측정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라벨이 함께 제시된 이미지에 높은 미적 선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보상 회로인 mOFC가 크게 활성화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즉 제시된 이미지가 실제로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인지 아닌지와는 상관없이 감상자가 인지한 라벨에 따라 '기대치'에 차이가 있었고, 높은 기대치가 높은 쾌감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실험실(Lab)/미술관(Museum)에서의 작품 응시 시간 & 미적 경험의 응답 수치


이와 같은 '의미적 맥락'뿐만 아니라 '물리적 맥락' 역시 미적 경험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데이비드 브리버(David Brieber)와 레더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실험실에서 시각예술을 감상하는 것'과 '미술관에서 시각예술을 감상하는 것' 간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안구운동추적장치를 착용하고, 실험실/미술관에서 현대미술작품을 감상하도록 했습니다. 두 조건 간에 미적 경험과 작품을 응시하는 시간이 차이가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결과 미술관에서의 작품 응시 시간과 미적 경험에 대한 응답 수치가 실험실에서보다 높게 나타났습니다. 즉 똑같은 작품이라도 감상자는 '미술관'이라는 물리적 맥락 안에서 더 높은 호감을 느끼고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입니다. 이는 시각예술에 대한 미적 경험이 '공간'과 무관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러한 물리적 맥락이 미적 경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의 원리를 욕망하는 신경미학


물론 이와 같은 신경미학의 연구결과들이 '아름다움'의 원리를 남김없이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각예술을 감상하며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은 매우 고차원적인 정신활동이고, 아직 '뇌'는 인간에게 있어 미지의 영역입니다. 즉 이 원리를 규명하는 것은 아직 요원한 일이겠지요. 더구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본디 개인차, 처해진 상황, 역사, 문화, 사회적 관념 등 수많은 요소들과 상호작용하는 개념입니다. 이 복잡한 대상을 신경 수준에서 분석한다 한들,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설명'이 가능할지는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외부 세계를 지각한다'는 것은 단순히 눈에 비치는 상(像)이 뇌에 전달되는 것이 아닌, '눈에 보이는 것을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창조하는 과정입니다. 시각예술의 감상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덕분에 이 '과정'을 규명하려는 신경미학의 노력은 '아름다움'이라는 정서가 가슴이 아니라 머리(뇌)에서 비롯된다는 것, 이것이 쾌감과 밀접하면서도 판단의 영역이라는 것, 감상자의 사전 경험이나 물리적인 공간 등 '맥락' 역시 미적 경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 등을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움'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하기 위한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비록 그 발걸음이 더딜지라도, 이렇듯 신경미학은 '아름다움의 원리'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이 거대한 개념이 얼마큼 밝혀질지는 알 수 없지만, 철학적 사유를 넘어 과학의 논리로 '아름다움'을 설명할 수 있는 그 날이 기다려지기는 합니다.



Reference


· 김지수. 「세미르 제키의 신경미학에 대한 비판적 고찰」, 2018

· 세미르 제키. 『이너 비전 : 뇌를 보는 그림, 뇌로 그리는 미술』, 2003

· 안잔 채터지. 『미학의 뇌』, 2018

· 지상현. 『뇌, 아름다움을 말하다』, 2005

· Brieber, D. Nadal, M. Leder, H and Rosenberg, R. 「Art in Time and Space: Context Modulates the Relation Between Art Experience and Vieweing Time」, 2014

· Kawabata, H and Zeki, S. 「Neural Correlates of Beauty」, 2004

· Kirk, U. Skov, M. Hulme, O. Christensen, M S. and Zeki, S. 「Modulation of Aesthetic Value by Semantic Context: An fMRI Study」, 2009

· Leder, H. Nadal, M. 「Ten years of a model of aesthetic appreciation and aesthetic judgments: The aesthetic episode – Developments and challenges in empirical aesthetics」,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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