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후 한잔의 커피는
어떻게 주말 아침을 망치는가

일상에 발견하는 조건 형성의 원리

by 이상준

Index


Ⅰ. '조건 형성'에 대한 이해

Ⅱ. 조건 형성이 야기하는 몸의 변화

Ⅲ. 그래서, 커피가 뭘 어쨌다고?




직장인에게 있어 주말은 '충전과 휴식'의 시간이지만, 어째 평일보다 찌뿌드드한 몸 때문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날이 있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봐도 처지는 내 몸뚱이, 그렇게 무기력한 주말이면 아무리 잠을 자도자도 힘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사람마다, 주말마다 다를 것이다. 숙취 때문일 수도 있고, 지인들과의 파티나 업무로 밤을 지새웠기 때문일 수도 있다. 컨디션 난조나 체력 저하가 원인일 수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만으로 몸을 짓누르는 피곤의 무게를 설명할 수 없다면, 당신이 사랑하는 '커피'가 방전의 주범일 수도 있다.


그렇다.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커피. 만약 당신이 출근 후 잠을 깨기 위해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신다면, 이 자동화된 프로세스가 바로 당신의 주말 아침을 늘어지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글은 이러한 황당한 주장의 근거를 다룬 '딱딱한' 이야기다.




'조건 형성'에 대한 이해


'커피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는지'에 대해 논하는 과정은 지루한 동시에 꽤나 낯설다. 그러니 이해를 돕기 위해 다소 복잡하지만 한 번쯤 들어보았을 행동 심리학 연구부터 살펴보자. 우선 우리에게 나름 친숙한 생리학자, 이반 파블로프(Ivan Pavlov)를 소환해본다.


이반 파블로프(Ivan Pavlov)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파블로프는 댕댕이가 먹이를 주는 사람 발소리를 듣거나 빈 밥그릇만 보아도 침을 분비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이 현상을 발소리나 밥그릇이 먹이와 함께 등장한다는 것을 댕댕이가 '학습'하고, 이로 인해 먹이와 무관하게 발소리나 밥그릇과 같은 '연합된 자극'만으로도 침을 흘린다고 설명했다. 이것이 바로 고전적 조건 형성(Classical Conditioning)의 핵심이다.


고전적 조건 형성의 원리


예를 들어 댕댕이에게 먹이는 침 분비라는 무조건 반응(Unconditioned Response)을 일으키는 무조건 자극(Unconditioned Stimulus)이다. 이 과정은 생존을 위해 생득적이고 선천적으로 프로그래밍된 프로세스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종소리와 같은 중성 자극(Neutral Stimulus)은 본디 댕댕이에게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댕댕이가 이 중성 자극과 무조건 자극이 함께 제시된다는 것을 '학습'한다면, 즉 종소리와 먹이가 '연합'되면 중성 자극은 조건 자극(Conditioned Stimulus)이 된다. 그리고 댕댕이는 그 조건 자극과 먹이가 함께 제공된다고 인지하고 있기에 종소리만 들려도 침을 분비하는 조건 반응(Conditioned Response)을 보인다.




조건 형성이 야기하는 몸의 변화


앞서 설명한 '조건 형성'은 댕댕이는 물론 인간인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원리다. 이 원리와 커피가 해로운(?) 이유가 '도대체 무슨 상관인지'에 대한 설명을 위해, 이번에는 조금 생소한 심리학자 셰퍼드 시겔(Shepard Siegel)을 소환해보자.


셰퍼드 시겔(Shepard Siegel)


시겔은 조건 형성이 진행된 이후 유기체의 몸에 어떤 변화가 이루어지는지 주목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유기체는 '현재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항상성을 지니고 있고, 이 때문에 우리의 몸은 '곧 일어날 일에 대한 몸이 지나치게 반응하지 않도록' 준비한다.


평소 몸의 각성 수준이 50이고, 어떤 자극이 내 몸의 각성 수준을 100으로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자극과 반응이 조건 형성되면, '곧 자극이 등장할 것이라고 인지했을 때' 우리의 몸은 각성 수준을 0으로 낮춘다. 자극이 주어졌을 때 평소와 비슷한 각성 수준인 50이 되도록 만듦으로써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쥐에게 모르핀(Morphine)을 투여하는 실험을 통해 탄생한 준비반응이론(Preparatory Response theory)의 핵심이다.


준비반응이론의 실험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실험 디자인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준비반응이론을 규명하기 위한 시겔의 실험과 그 결과


우선 실험 집단 1과 통제 집단만 비교해보자. 식염수를 투여한 집단에 비해 모르핀을 투여한 집단은 통증에 둔감하다. 때문에 발에 통증을 느끼기까지의 시간이 현저하게 느리다. 그러나 실험 집단 1은 모르핀을 거듭 주사할수록 이 약물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 이로 인해 네 번째 주사 후 반응 시간은 통제 집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서 모르핀은 무조건 자극(US), 통증 민감도의 감소는 무조건 반응(UR)이다. 약물에 의해 급작스레 생리적 반응이 떨어지면 생존에 불리하기 때문에, 실험 집단 1은 '곧 모르핀이 투여될 것이라는 신호를 감지했을 때' 몸의 통증 민감도를 높여 자극에 대비한다.


여기서 '신호'는 냄새나 소리 등 모르핀과 연합된 조건 자극(CS)이고, '통증 민감도를 높이는 것'이 곧 조건 반응(CR)이 된다. 그 근거는 실험 집단 2의 데이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실험 집단 1과 실험 집단 2의 조건은 '네 번째 모르핀 주사는 기존 실험실과 다른 환경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동일했다. 즉 무조건 자극(US)을 예견해주던 조건 자극(CS), 즉 실험실의 환경이 달라진 것이다. 때문에 실험 집단 2는 '곧 무조건 자극(US)이 주어진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게 되고', 때문에 모르핀에 대한 내성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28초' 후에 발을 핥게 된다.




그래서, 커피가 뭘 어쨌다고?


드라마「The Office」


복잡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드라마「The Office」의 한 장면을 살펴보자. 짐(Jim)은 드와이트(Dwight)를 골려주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한다. 즉 윈도우 종료음과 알토이드(박하사탕의 한 종류)를 연합시키는 것이다. 알토이드는 입안에 청량감을 준다. 영상 마지막에 드와이트가 입안이 텁텁하다고 말했던 이유는, 윈도우 종료음이 알토이드라는 무조건 자극(US)을 예견해주는 조건 자극(CS)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의 몸에서는 윈도우 종료음이라는 신호를 감지하고 자체적으로 입을 텁텁하게 만드는 준비, 즉 조건 반응(CR)이 나타난 것이다.


그림1.png


이를 '출근 후 마시는 한잔의 커피'에 대입하면 앞서 언급했던 황당한 주장이 어떤 맥락에서 튀어나온 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커피를 마셨을 때 잠에서 깨는 것은 커피의 카페인 성분이 각성 수준을 높이기 때문이다. 이때 커피는 무조건 자극(US)이고, 이로 인해 각성 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무조건 반응(UR)이다.


이후 '아침을 인지할 수 있는 특정한 요소'와 '커피'가 조건 형성을 이루게 되면, 우리의 몸은 '곧 커피를 마시게 될 것이라는 신호(CS)'를 감지한 순간 각성 상태를 낮추는 조건 반응(CR)을 보인다. 그 신호는 알람이 될 수도 있고, 어머니의 등짝 스매싱이 될 수도 있고, 아깽이의 꾹꾹이가 될 수도 있다.


이 단계에 접어들면 우리의 몸은 아침에 커피를 마셔야만 '평상시의 각성 수준'을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출근하며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거나 출근 후 커피를 내려 마시는 평일과 달리, 주말 아침에는 이 기호품을 마실만한 동인이 많은 편은 아니다. 따라서 평일 아침마다 한잔의 커피를 마시는 것은 자동화된 프로세스가 되고, 우리의 몸은 주말 아침에도 각성 수준을 미리 낮추어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준비 단계에 들어간다. 따라서 평일 아침과 같이 커피를 마시거나 기타 각성 수준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없다면, 우리의 몸은 '노곤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주말의 피곤함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이유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과 몸은 '생리적 메커니즘' 영향 아래 있는 경우가 많고, '사소해 보이는' 생활 패턴은 그 메커니즘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주말 아침에 늘어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커피가 그 무기력함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것 같다면, 평소처럼 커피를 마시거나 각성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다른 활동을 시도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Reference]
Paul Chance 저, 김문수-박소현 역, 『학습과 행동』, 시그마프레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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