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격적으로 해외를 떠돌기 시작한 7~8년 전즈음부터, K문화의 기세는 본격적으로 전 세계에 파죽지세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BTS, 오징어게임, 블랙핑크를 넘어 이제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외국에 있음에도 가는 곳마다 K푸드, K뷰티, K아이돌의 사진과 영상이 때로는 서울인가 싶을만큼 흔하게 보인다. 얼마전 회사 회식 장소도 K 바베큐였고, 회사 단체 행사에서는 Jenny의 노래에 맞춰 군무를 추는 것을 보면서 한국 문화의 파급력을 해외에서 생생히 느끼는 중이다. 외국인들에게 현재 한국의 인상은 '쿨하고, 재미있고, 아름답고 멋진' 그런 이미지인 듯 하다.
십수년 전 처음 유럽 배낭 여행을 할 때만 해도 Korea라고 하면 어디인지조차 모르거나 조금 지식이 있다치면 North or South?나 묻던 시절을 떠올리면 감개가 무량하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한국인들로서는 소위 '국뽕'이 맥시멈으로 차오르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겠지만, 어째 나는 이런 신드롬에 가까운 hype이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이것은 아마 내가 온전히 외부인이 아니라, 한국에서 나고 자라 거의 평생을 한국에서 지낸, 누구보다도 한국사회를 잘 알고 있는 뼛속까지 한국인이기 때문이리라.
외국인들에게 K문화는 일종의 '놀이'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고, 재미있고, 예쁘고 멋진 놀이. 트렌디하고 세련된 K팝 아이돌들, 모델하우스같이 근사한 공간에서 잡티하나 없는 완벽한 피부와 풀세팅된 패션의 K 배우들이 주는 환상. 물론 이러한 이미지와 환상을 소비하는 것이 현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느정도 보편적인 취미요 취향이기는 하지만 유독 K문화는 이런 피상적이고 찰나적인 매력을 바탕으로 한 가벼운 보여주기식 문화가 특히 지배적인 듯하다. 나는 이런 외국인들의 반응을 볼때마다, 한국은 뭐랄까, 잘 꾸며진 무대, 또는 잘 조성된 놀이공원같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것이 번쩍번쩍거리고 눈과 귀가 즐겁고 신나고 재미있지만, 그것이 삶이 될수는 없는 그런 일시적 오락같은것.
하지만 그 커튼의 뒤에,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살아가는 한국사람들에게는 그런 꾸며진 겉모습이 지배적인 사회 분위기는 도리어 평범한 이들의 일상을 옥죄며 사회 전체를 피로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곤한다. 소수 연예인을 향한 집단적 추앙이 사회의 미적 기준을 결정하고 ‘유행’이 곧 강제력이 되는 사회에서 개인은 은연중에 그러한 미적 기준을 강요받는다. 예쁜 아이돌, 잘생긴 oppa라는 획일화된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이제는 성형공화국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전 국민이 과도하게 겉치장에 혈안이 된다. 다양성은 사라지고 취향은 단순화되며, 비교문화가 유독 심한 한국에서 더더욱 겉모습에 대한 압박과 자기혐오는 심해진다. 젊고 아름다운 것만이 숭상되는 가치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추하고 혐오스러운 것으로 배척되고 심한 경우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겉보기에 언뜻 멋지고 아름다워 보이는 풍경은 내부적으로는 사회전체의 미적 지평을 좁히며 대다수 구성원들의 정서적 불안과 결핍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한국을 일시적으로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저 짧게 즐기고 소비하고 떠나면 될테니까. 하지만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과연 이렇게 반짝이는 K컬처가 과연 우리 사회 내부적으로는 구성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떠한 사회적비용이 소모되는지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외국인 친구가 다음달 서울 여행을 계획하면서 어느 성형외과에 가서 K팝 아이돌 누구를 닮은 식의 시술을 받을거라는 얘기를 할때면 마음 한편이 어쩐지 씁쓸해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