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한국 기준에서 본다면, 나는 꽤나 늦은 나이에 외국에 나가 처음 공부를 시작하고, 전문직 자격증을 따고, 새로운 일을 해보는 특이한 부류일 것이다. 다들 가정을 이루고 아이 둘 정도는 학교 보낼 나이에 어쩌면 '철없는 이상주의자'처럼 비추어질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친구들이나 이전 회사 동료들이 나에 대해 얘기할 때 많은 경우가 "대단하다, 그 나이에"라는 반응이었다.
이건 특별히 내가 도전적이거나 에너지가 남다르게 넘쳐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환경과 나의 성향을 고려한 타협의 결과물이었다. 한국, 그것도 지방에서 나고 자란 토종 한국인이지만 어쩐지 한국 문화와 평생 잘 맞지 않는 것 같이 삐걱대는 스스로를 느끼고 있었고, 어릴 때부터 해외에서의 삶을 막연히 그려보기는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릴 적에 해외로 나가거나 유학을 할 만큼 집에 여유가 있는 것은 또 아니었고, 부모님은 그저 법대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옛날 마인드의 분들이었다. 그렇게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한국직장에서 오래 근무하며 스스로 재정적 기반을 만들며 기회를 보던(?)중 다행히 장학금의 기회가 있어 펀딩을 받아 30대에 뒤늦은 외국 유학을 가게 된 것이다. 그 뒤로 늦깎이로 해외에서 변호사 자격증도 따고, 더 느지막한 나이에 처음 해외에 나와서 일도 해보고 있는데... 예상은 했지만 비네이티브인 외노자의 삶은 예상보다도 훨씬 ×10 힘들다.
특히 한국말로 해도 어려운 전문적인 일을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한영 번역기를 돌려가며 어찌어찌해내고 저녁에 집에 돌아가면 몸이 물먹은 스펀지처럼 축축 쳐지는 기분이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팔팔한 2030이 아닌 탓에, 아무리 내가 건강한 편이라지만 체력도 달리고 무엇보다 의욕이 쉽게 꺾이는 것이다.(이전 같으면 밤을 새워서 어떻게든..! 같은 의지가 있었을 텐데 요즘은 에구구 내 몸이 먼저지~이런 느낌)
지금의 보스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걸로 알고 있는데, 회의할 때마다 "나의 aging brain이.. eyes가.." 하는데 옆에서 나는 조용히 귀엽게 바라보고 있다. (그나마 다행히 아시안 여자의 메리트로 내 액면이 그보다는 어려 보여 딱히 인식을 못하고 있는 듯하다.)
여하튼, 그러면 나는 왜 남들 다 안정적으로 기반 잡고 살아갈 나이에 외국에 나와서 이처럼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한국을 떠나 해외로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하는 공통적인 말이 답이 될 수 있겠다.
"한국은 편리하지만 외국은 편안하다."
한국의 편리한 시스템이나 효율적인 서비스는 정말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접근도 편리하고 가격부담 없는 양질의 의료서비스, 빨리빨리 민족다운 신속한 배달 시스템, 한국인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대부분 정확하고 합리적이다. 외국에 나와서 미용실이건 병원이건 한 번씩 갈 때마다 짜증이 극에 달하는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그림에서 보면, 해외에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해외에 생활할 때 보다 숨통이 트이고 나답게 살 수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마도 이는 외노자로서 '열외'의 삶을 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해외 많은 나라들의 문화가 좀 더 삶의 다양성을 존중하는-막말로 어떻게 다양하게 살건 관심 없는- 분위기여서일 것이다. 한국에서 살면서 끝없이 일상적으로 느꼈던 다수의 정답을 따라 사는 것이 옳다는 압박, 일정한 나이에 특정 조건을 달성하지 않으면 은연중에 주변인(심하게는 루저)으로 분류되는 사회 분위기, 내가 내 가치관대로 살아보려 해도 사방에서 끝도 없이 간섭과 지적이 일상화되어 있는 분위기가 싫어서 아예 환경을 바꾸어본 것이고, 아직까지는 그 선택에 대략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의 평화를 위해 보장된 안정이나 익숙한 편안함을 대가로 치르고, 고된 이방인의 삶을 택해야 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