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행복의 조건’ 조사에서 한국만 유일하게 다른 답변을 내놓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대부분의 나라가 가족, 건강, 인간관계 등을 꼽은 반면, 한국만이 1위로 ‘돈’을 선택했다.
왜 한국만 이렇게까지 돈에 집착하는 걸까? 단순히 경제적 어려움 때문은 아닐 것이다.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에 드는 사실만 보더라도 한국은 이미 절대적 가난을 벗어난 지는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경제적으로 궁핍하다, 부족하다고 느끼며 더 빨리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아간다. 어찌 보면 맹목적일 만큼 압도적으로 모든 삶의 가치가 돈을 향해있다.
실제로 한국에서 친구나 동료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절반 이상이 돈 이야기다. 요즘처럼 자산 가격이 요동치는 시기에는 더하다. 이런 자산증식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면 어리석다 못해 심지어 위선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
"돈 싫어하는 사람 있냐."
"돈 필요 없다는 사람 피해라. 그놈이 제일 돈 밝히는 놈이다."
이런 단순하기 그지없는 단언적 발언들이 되려 지지를 받는다. 다양한 생각, 금전을 떠난 다른 가치관의 성립이란 그 가능성조차 아예 부정해 버리는 무슨 컬트집단과 같은 집착이 전 사회에 독처럼 퍼져있다.
가치관이 이러하니 삶의 모든 평가 잣대도 돈을 위주로 돌아간다. 서울은 진격의 거인에나 나오는 성곽 같은 것으로 둘러싸인 승자들의 도시이고, 그 안에서도 촘촘하게 동네를 상급지 하급지로 나누어 평가한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종종 보이는 남녀 관계에 대한 고민은 사람 자체보다는 그 대상의 연봉, 자산, 씀씀이에 대한 것이다.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상대의 연봉이 얼마고 나는 얼마인데 내가 손해 아니냐, A는 아파트가 있는 30 후반이고 B는 평범한데 나이만 어린데 어느 쪽을 선택할까 식의 글에서 과연 평생 함께할 사람에 대한 인격적 정서적 존중이나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아주 오래전 옛날 한국영화 중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있었더랬다. 미쳐 돌아가는 경쟁문화는 그 이전부터 존재했었으나, 어째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적 가치관이 성숙해지기는커녕 안타깝게도 그 수준은 더 처참해져 가는 듯하다. 이제는 학교를 넘어 전 사회 남녀노소가 같은 방향을 향해 달려가는 기분이다.
모두가 이렇게 레밍처럼 한 방향을 향해 질주하는 사회에서 한낱 개인이 자신의 가치관을 오롯이 지키며 살아가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 주변인들이 자신만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란 결국 스스로 열외의 삶을 선택하고, 그런 선택에 대한 따가운 시선마저도 조용히 감수하는 방법뿐일지도 모르겠다. 행복은 자산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을 조용히 되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