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스스로가 만든 '헬조선'을 고쳐가는 법
한국의 자산가들이 앞다투어 해외로 떠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세계에서 4번째로 부자 순 유출 비율이 높다고 하는데, 아마 인구수를 고려하면 인구대비 비율은 세계 상위권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해외 이주의 트렌드가 비단 부자들만의 일일까.
개인적으로 해외에 살면서 관찰한 바로는 외국으로 터전을 옮기는 한국 사람들은 매우 양극화된 경향을 보인다.
<지킬 것이 가장 많은 사람들, 반대로 잃을 것이 가장 적은 사람들>.
전자의 경우 높은 세금 부담을 피해, 자녀들의 글로벌 교육을 위해, 더 선진적이고 세련된 문화의 향유를 위해 해외로 나간다. 반대로 후자의 경우 한국 사회에 도저히 발붙이지 못하고, 어찌 보면 사회에서 내몰려 해외에서 마음이라도 편한 자유를 누리고자 도피처를 찾아 해외로 간다. 유럽의 같은 도시에서 만났던 엄청난 부잣집 유학생들과 워홀로 온 청년들이 같은 나이지만 각자 다른 이유로 그렇게 해외로 이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판이하게 달라 보이는 사례들 저변에는 교집합으로 겹치는 원인이 있다 - 어떤 면에서건, 외국에서의 삶이 한국보다 행복한 것이다. 좀 더 단순화해 보자면 한국에서의 삶이 불만족스럽지만 그 삶을 탈출할만한 충분한 경제적 환경적 여건이 되거나, 반대로 한국에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주로 그러한 불만족을 박차고 해외로 이주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전자는 확실히 아니다. 유학은 꿈도 못 꿀 평범한 집안에서 자라 혼자 힘으로 공부해서 먹고사는 기반을 만든 후에야 느지막이 펀딩을 받아 유학을 체험한 뒤 해외로 나온 케이스다. 그런 면에서 후자가 좀 더 이해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에서 십수 년간 그나마 일구어놓은 터전을 버리고 완전히 타국에 정착하기에는 나이도 먹고 용기도 모자란 그런 애매한 부류다. 그럼에도 계속 어정쩡하게 해외를 떠돌며 외노자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나 역시 한국에서의 삶이 정서적으로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가 제시한 정답을 택하지 않으면 살기 어려운 나라, 다수가 수행하는 미션을 클리어해야 핀잔 듣지 않고 살 수 있는 나라,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끝없이 이야기하고 비교하는 나라,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고 소수자에게 가혹한 나라. 어쩌면 수십 년 인사이더로 살아온 찐 한국인만이 느끼는 이 모든 답답함 속에서 나도 그들의 일원인 척 겉으로는 적응하는 것처럼 가면을 쓰고 살아왔지만 한 번씩 정말 숨이 막힐 것 같은 느낌을 받으다. 그러다 작은 기회가 왔을 때, 그래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 때 환경을 바꿔보자는 결심을 사고 덜컥 해외로 나온 것이다.
그럼에도 아예 어릴 적부터 유학하여 네이티브처럼 영어가 유창하거나 문화에 익숙한 경우는 아니어서, 외국에서는 외국대로 또 나만의 언어적 문화적 어려움이 많다. 한국서 나고 자라 수십 년 한국 환경에 익숙해진 토종 한국인으로서 왜 내가 익숙한 한국의 4계절과 한국의 음식이 그립지 않겠는가. 나아가 거듭 말하지만 한국의 물리적 인프라는 세계 상위권이다. 외국에서 살다 보면 언어의 장벽을 넘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시스템을 접할 때가 많다. 병원이나 미용실을 갈 때, 하다못해 무슨 행정 업무 처리 하나를 할 때도 속 터지는 경험을 할 때면 '어휴, 한국을 떠나 무슨 사서 고생이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전반적인 정신 건강 및 마음의 평화를 물리적 불편과 비교형 량하며 그렇게 해외살이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은 편리하고, 외국은 편안하다."
해외살이 하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말이다. 해외를 떠도는 많은 나의 동지(?)들은 이런 편리함과 편안함 사이에서 그렇게 자신들만의 결정을 내리고 본인들에게 맞는 터전을 찾는 것이리라.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그래도 '그들만의 낙원'을 찾아가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나는 좀 이상주의적 인간이라, 개인적으로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구비할 수 있는 사회를 우리 스스로 만들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외국 친구들이 "한국은 엄청 선진적인 나라 아니야? 그런데 왜 출산율이 그렇게 낮고 자살률이 높은거야?" 라는 식의 질문을 할 때마다 나는 고도로 발달한 한국의 인프라도 사실이나, 그 이면의 불행한 사회문화적 요소들을 그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보려 한다. 한 친구의 반응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는 "Sounds like you're perpetuating your own hell"이라는 다소 강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이 짧은 문장에서 나는 뭔가 작은 깨달음과 반대로 작은 희망을 얻었다.
그러게, 결국 한국사회를 만드는 것은 우리 한국인들이다. 배금주의와 외모 지상주의가 극에 달한 나라. 점점 더 양극화되고 서로를 미워하고, 성별 나이 계급 기타 등등으로 편을 나누어 갈라치기 하는 이 사회적 분위기는 결국 매일의 일상에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행동하는 영향력의 총합일지 모른다. 우리 스스로 한국은 왜 이렇게 살기가 피곤한지, 정신적으로 피폐한지 불평하지만 어쩌면 그 불행의 굴레를 바꾸기보다는 부지불식간에 그 틀에 맞추어 살아가며 한층 분위기를 고착시키는 것인지도.
그러한 면에서 그 쳇바퀴를 견디지 못하고 탈출한 나와 같은 경우도 사실 바람직한 케이스는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한국에 발붙이고 살면서, 어떻게든 작은 것부터 내가 스스로 바꾸어 나가는 것, 그리고 그렇게 모두의 작은 움직임으로 안에서부터 한국 사회의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 더 옳은 방향일 것이다.
평범한 일상에서 주변 사람들을 경제적 가치나 외적 조건으로 판단하지 말고, 다른 방식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경쟁과 비교를 내려놓고 각자의 모습으로 충분히 행복한 삶을 나부터 살아낸다면,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한국의 문화 저변이 바뀐다면, 한국이 가진 많은 인프라적 장점에 문화적 정신적 성숙함까지 더해져 더이상 우리가 떠날 필요가 없는 나라가 되지 않을까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헬조선 헬조선하지만 그것을 만든것도 결국은 우리들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Hell에서 Heaven을 만들 수 있는 힘도 우리들에게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더이상 '떠나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우리 스스로 차츰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바라면서, 나 역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새로운 꿈을 꾸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