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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강 Jul 11. 2018

어째서 나는 여기에 오고싶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왔을까

류블랴나를 아직 떠나지 않았을 때에도, 나는 이미 류블랴나가 그리웠다.

"영민아, 우리 한겨울이지만 동유럽에 갈래?"
"좋아요 언니! 근데 어디 쪽으로 갈까요?"


"어 우리 무난하게 헝가리, 체코랑, 그리고... 슬로베니아"
"슬로베니아요? 음... 글쎄요?"
"일단 가보면 좋아할 것 같아!”





2017년 1월.

태어나 처음으로 사회에 발을 디디기 불과 1달 전이다.

취업을 하면 꽤 오랜동안 긴 여행은 가지 못할 것이라고

다들 귀가 따갑게 말하기에, 긴 여행을 떠나겠다고 결심했다.


여행메이트는 회사 동기.

같이 회사의 쓴맛을 곧 보게 될 이미 잘 알던 동생과 유럽에 가자고,

둘이서 그렇게 막연한 설렘을 가지며 박수를 짝짝 부대끼며 좋아했더랬다.


장소는 유럽.

그 중에서도 혹한기 동유럽으로.

헝가리, 체코, 슬로베니아.

헝가리와 체코는 동유럽이 처음인 나의 여행 메이트를 위한 무난한, 잘 아는, 압도적 유럽.

그리고 슬로베니아는 우리만의 특별한 기억을 남기고 싶었던 나의 작은 고집이 포함된 곳.

그녀는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에 대해 큰 의문을 가졌지만,

언니가 가자고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다면서 이내 곧 동의를 해줬다.





류블랴나에서 내 기준, 가장 '류블랴나'스러웠던 반지하 카페


여행 순서야

부다페스트 -프라하 -류블랴나 -부다페스트순이겠지만,

마음 속 1번은 류블랴나이기에.


이 작디 작은 도시에

어떤 부분이 그리도 마음에 들어 야경황제 부다페스트도 맥주의 도시 프라하도 이겼냐고 묻는다면

그 이유는 "에우로파 감성의 사람냄새" 라고 하면 될까?


사람이 사는 것 같았다.
도시가 나와 같았다.


어딘가 미숙한 인간인지라 가끔 생각하지 않는가.

나라는 사람이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다면 어떤 모습일까.

다른 성별로 태어나면 무슨 마음으로 살아갈까.


찾았다 내 도시.
나라는 사람이 유럽의 어느 도시로 태어난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아기자기하면서도 투박한.

배타적인 듯 하면서도 내 것 같은.

멋 없는데 정이 가는.

깨진 빈티지 접시인데도 묘하게 자랑하고 싶은.


그렇게

류블랴나는 하루만에

내가 되었다  


드라마 <디어마이프렌즈>에서 조인성이 사고를 당하던, 바로 그 광장 앞의 핑크빛 류블랴나 성당에 석양이 내려오면.

 




그러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아이러니한 건

아무에게나 이 도시를 추천할 수가 없을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도시 가능성도 높다)

(호불호가 갈리는 나와 닮아서 그럴까)


큰 관광지도 없고

(물론 숨겨진 맛집은 있다)

좋은 숙소도 없고

낭만적인 바다도 없고

한국 식당도 없다.

빼어난 야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온 세상의 힙한 청춘들이 모여드는 곳도 아니라서.


함부로 권하진 못하겠지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류블랴나 올드타운 골목길 어느 헌책방에서 내놓은 읽지 못할 언어의 책들.


나라는 사람을 좋아한다면,
당신은 이 도시도 좋아할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 류블랴나를 다녀와서

그곳이 너무 좋았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 모르는 이를 사랑하게 될 수도 있겠네요.

정말로요.


살면서 이렇게 압도당하는 낭만은 처음 보기에, 숨이 멎을 뻔했던 슬로베니아 유일의 섬 <블레드 섬의 겨울>


여행 중에 적은 일기는

문장 문장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

유독 슬로베니아에서 적었던 문장들은

하나 하나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만약 유럽을 다시 오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아마도 슬로베니아에 가기 위해서일 것이다.
아직 류블랴나인데도
류블랴나가 이미 그립다.
이건 마치 사귄지 얼마 안 되어
서로가 그리운 연인의 마음같다.
이건 사랑이다.
어째서 나는 슬로베니아에 가고싶다고 막연히 생각해버렸는데
정말 와버리고 말았을까.
와버려서, 너무 다행이다.
 
그 동네에, 그 기간에 유일한 동양인이던 우리를 어여삐 관찰하던 동네 아가의 따뜻한 눈이란,


내가 이렇게 사랑이 많고

낭만이 살아있는 사람이었는지 깨달았던 날이 또 있을까.





류블랴나 올드타운의 시장에서 자신이 만든 치즈를 꼭 먹어보라며 권하던 이 사람. 정말 맛있었다.


1년 반이나 지났는데도

류블랴나를 생각할 때면

마음이 일랑일랑거린다.


1년 반 사이에 나는

아직 그래도 인류애라는 것이 남아있던 밝디 밝은 사회 디딤돌 병아리에서

세상은 거칠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진리를 깨달은 슬픈 현생의 중생이 되었지만,

회사한테 빼앗겨버린 나의 에너지는

저 곳에 가면 다시 살아날 것 같기도 하다.

사진만 봐도 이렇게 심장이 떨리는데.


첫 류블랴나가 코 끝이 시린 한겨울이었으니
이번엔 그래,
조금 따스하고 녹음이 가득할 봄이 좋겠다.
다시 가봐야겠다.


류블랴나를 떠나야 하는 날 탔던 부다페스트 행 열차. 예매조차 안 되는 구간이었는데 현장에서 발권하니 1인당 고작 9유로





다음 글은 아마도

류블랴나의 음식이거나,

부다페스트의 낭만이거나,

프라하의 사랑이거나,

호이안의 두리안 냄새거나,

사회에 나와서 몸이 아파져버린 불만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나의 영원한 도시,

서울의 어느 카페 창문에 대한 이야기거나.




2018.07.09 월요일
#여행 #류블랴나 #슬로베니아 #동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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