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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강 Nov 11. 2018

엄마의 엄마는, 엄마의 생일을 잊었다.

우리 엄마에게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올까봐 나는 너무 슬펐다.


<할머니는 엄마의 생일을 잊었다>

엄마의 생일은 오늘인데, 난 어젯밤 미역국을 끓이게 되었다. 

본디 가족의 생일엔 거한 아침을 먹거나, 거한 저녁을 먹기 마련인데.

올해는 엄마 생일에 김장을 한다고 했다.  일찍 나갈 수도 있다고.

그래서 아침이나 겨우 먹으려나 싶어서 미역국을 끓이던 나.


엄마랑 통화를 했다.

나) 할머니가 내일 엄마 생일인 건 알아?

엄마) 당연히 모르지. 할머니가 여든이 다 됐는데.


순간 기분이 이상했다.

당연히 아실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딸이잖아. 아들 셋에 하나밖에 없는 딸.


모르신단다.

잊으셨단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딸의 생일을 잊은 엄마의 엄마가,

그걸 웃으며 말할 수 있는 내 엄마가,

나는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가 해준 미역국은 진짜 맛있는데, 내가 해준 미역국이 그 반의 반 맛이라도 날까>


<슬픔의 무게가 아무리 크다 한들>

내 어머니가 나의 생일을 잊어도

웃으며 찾아갈 수 있는

슬픔의 무게를 나는 아직 모른다.

그렇게라도 나의 생일에 노구를 이끌고

김장을 할만큼 비교적 건강한 70대의 어머니가 계시다는 

기쁨의 무게가 더 큰 걸지도.


슬픔의 무게가 아무리 크다 한들

그보다 무거운 기쁨이 있다면,

그 또한 잊어줄 수 있기 마련이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려는 엄마의 말을 듣고도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미역국 맛있었냐고 몇번 다시 물으며

오늘이 엄마의 생일임을 되새겨주는 것.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반쯤 엄마를 헐겁게 안으며 배를 통통 튕기는 것.

그리고 멋쩍게 속삭이듯 생일축하한다고 말하는 것.


그게 내 나름의,

아니 그 순간에선 최선의 사랑고백이었다.


<엄마와 할머니가 가장 잘 나온 사진을 찾다보니, 나의 졸업식날 사진이 나와버렸다>


<매일매일이 마지막이니까>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여행을 다녀온 엄마가 한 이야기다.

거동이 너무 불편해서 한시간을 못 걸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주 억척스럽게 여행을 누리셨다고 했다.


단양에 가고싶으시다며

갑자기 단양에를 가시고,

바다가 보고싶으시다며

갑자기 속초에를 가시고.


지금 드는 이 기분의 해소를

내일 또 해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라고.

오늘 누릴 수 있는 건

오늘 누려야 후회가 없으시다고.

매일이 마지막이라서.


내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젊음을 살라고 백날 젊은이에게 말한들

그 마음이 와닿기 참 힘들었다.


이어령 선생님도 셀레브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던가.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어요"


그런 나이의 부모를 바라보는 엄마를,

주변의 부모상 부고가 자식들의 결혼소식보다 잦아지는 엄마를,

아직은 내가 이해할 그릇이 못되었던 것 같아서

갑자기 나 혼자 막 울었다.


<세상에, 놀이기구도 한번 타보고 싶으시다며 에버랜드에도 가신 할머니 할아버지. 너무 웃기고 귀여우시다>


<언제쯤 엄마를 온전히 이해해줄 수 있을까>

엄마의 세계는 참 넓고 깊다.

이건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 성품이다.


그건 아마 엄마가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맞이이자 딸인 엄마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다.

평생을 더 많은 사랑 주기만 한 엄마의 마음을 한껏 받아들일

넓은 마음을 가지고 싶다.


마음은 늘 그러한데,

말로는 그게 바로바로 안 되더라.


엄마가 엄마의 엄마에게 무한대의 노력을 하시기에,

엄마도 엄마의 딸인 나에게 그런 기대를 하시곤 한다.

자신의 많은 감정들을 받아줄 것이라고.


사실 사람이 가지는 

애정의 크기는 본디 같지 않아서,

어쩔 땐 나보다 오빠를 생물학적 이유로 더 사랑하지만,

어느 날은 또 딸인 나에게는 무한히 의지하고픈 여린 엄마일 때도 있었다.

10대의 여리고 작은 마음에 서운한 날들도 있었다.


20대 후반, 보통의 딸이 되어 엄마를 보건대,

그 마음 이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더이상 서운하지 않다.

서운함보다 많은 사람들을 케어해야만 하는

엄마의 감정이 안쓰러운 날들이 더 많다.


엄마의 엄마도, 엄마보다 삼촌들을 

더 사랑한 날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아주 많았을지도.


그러다가 엄마의 엄마도, 

 어느 날엔 하나뿐인 딸인 엄마에게나 

겨우 묵힌 감정을 쏟아내던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시간들을 모두 지나온 나의 엄마는

지금의 깊고 단단한 한 사람이 되었다.


엄마라고 엄마의 생일을 잊은 

할머니가 백프로 이해가 될까.

아무리 나이가 드는게 싫다지만,

일년에 한번뿐인 본인의 생일에 

맛있는 것 먹고 쉬며 놀러가지 않고 

힘들게 김장을 하고 싶을까.


다만 엄마는

슬픔의 크기를 내세우기보다

기쁨의 크기에 감사하는 사람이어서.

그보다 더,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사람이어서.

노구를 이끌고 김장을 하는

자신의 부모를 보는 게 더 아픈 사람이다.

그래서 그곳에 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렇게 웃으며

나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그 깊음을 이해하려면

나는 아직 멀었다.

언젠가는 내가 더 마음의 크기가 큰 사람이 되어,

엄마를 안아줄 수 있기를.


모두의 마음을 받아주는 엄마의 마음을

내가 온전히 진실되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며.


엄마를 위한

긴 생일편지를

여기, 브런치에 남겨본다.


<음력 10월 4일 호박이 영글어갈 때 태어난 우리 엄마, 가을처럼 성숙한 사람>


엄마, 생일 축하해!

2018.11.11

엄마의 54번째 생일날에.


#가족 #엄마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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