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초이 Dec 18. 2016

#19 여행을 맞이하는, 설렘부터

여행 전, 중, 후 -소소하지만 애착 있는 순간들

이번 해에는 '포르투갈'에 다녀왔다.


다녀온 후기를 쓰려고 했는데, '여행'을 맞이하는 마음부터 적고 있으니 서론이 좀 길어질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이라는 로망 가득한 단어를 떠올리면서 준비하는 순간부터 - 돌아와서 잠시 여운에 빠져 있을 때까지 모두 여행이 좋은 이유니까.


여행 준비부터 소소하지만 애착 있는 기억들을 일기로 쓰고, 다시 읽어봤다. 이렇게 좋아하는 순간들을 쌓아놓다 보면 여행의 목적을 찾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여행부터는 그 순간들을 문득, 여유롭게 발견할 수 있겠지 :)





여행을 맞이하는 설렘부터

# 관광서적보다 현지에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책 한 권을 읽어보는 시간이 좋다. 건축물이나 미술작품의 역사를 이해하고 가면 외관에서 느껴지는 심미적 감동 외에, 어떻게 만들어졌을지 스토리를 상상하며 더욱 유의 깊게 볼 수 있기에.

# 인스타그램에서 실시간에 가까운 포스팅을 훑어본다. '24시간 후에는 내가 저곳에 있겠지..'라는 상상을 하면서. 낯선 환경에서 독립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썩 긴장되는 일이기 때문에 간접체험을 해보는 것으로 걱정을 토닥인다.

# 혹시나 하면서 조금은 촌스럽게 컵라면을 챙기는 것도 기분이 좋다. 컵라면이 가장 맛있을 때는 해외에서 먹는 라면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감기 기운이 올 것 같을 때도, 입맛이 없을 때도 만병통치약.


설렘이 커진다.






설렘인지 긴장인지 모를 두근거림. 출발

#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비행기를 타는 것'을 최대 목표로 잡는다.

#  아직은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이지만 분주한 출근길 사이로 공항버스 정류장을 찾아가는 기분은 묘하다.
# 비행기가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은 언제나 긴장된다. 하지만 비행기를 탔다는 안도감에 거의 잠에 든다. 비몽사몽으로 눈을 뜨면 나는 하늘에 떠있고 기내식이 들어온다.

# 인터넷도 안 되는 제한적인 상황이 무엇을 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을 눌러주어 오히려 편안하다.

따뜻한 차를 들고 창가 아래로 낮게 깔린 구름을 보면 최고급 카페가 따로 없다.





그리고 도착. 첫 만남

# 도착하자마자 여행지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힌트를 찾아 눈치껏 탐색을 시작한다.

# 공항과 공항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첫인상 탐색

: 미국은 '사람이 참~ 크다', 일본은 '사람들이 비슷해서 해외라는 실감이 잘 안 나는데'였다. 포르투갈은 '무심한 얼굴들이지만 친절하네'였다.

# 사이니지 탐색

: 사이니지의 형태만 보아도 어느 정도 나라, 지역의 성향이 느껴진다. 발랄하고 조금은 비 정형적인 포르투갈 사이니지는 에스토니아에서도 본 적 있는 익숙한 느낌이었다.

학교 근처에서. 아빠 손을 잡고 뛰는 말총머리 아이





여행을 하면서

# 하루에도 4~5건의 광고 문자가 왔는데 해외 발신 차단으로 자연스럽게 안녕.

# 여행길에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새삼 반갑고, 외로운 이방인이라 눈인사만 나눠도 마음이 따뜻하다.

# 먼저 부탁하지 않았는데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는 고마운 순간이 있다.

# 자꾸 생겨나는 동전을 해치울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

# 한국에서 잘 입지 않는 과하게 밝은 옷을 입는 것도 좋다. 예전에 한 번은 검정 외투를 가져갔더니 배경만 바뀌고 검은 옷을 입은 나는 ctrl C + V 이길래, 밝은 옷을 몇 벌 챙겨가는 노하우가 생겼다.


# 따뜻한 물로 씻는 순간은 행복. 피로 회복제.


# 즉흥적으로 구매한 물건들이 더 좋다.

: 샀을 때보다 안 샀을 때 후회가 더 크더라. 이번 여행에서는 캡슐커피로 만든 귀걸이, 해리포터 서점에서 만든 비싼 노트, 코르크 재질로 만들었다는 동전 가방을 사는 소소한 사치를 부렸다. 


# 일정을 러프하게 짜는 것이 좋다. 나머지는 즉흥적으로.

분명 놓치는 것도 있겠지만 남들이 모두 가는 곳을 거치게 되면 성취감은 남지만 여운이 남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모든 것이 우연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좋다.
다만, 여유가 있어야 '우연'도 생긴다.



여행 후. 유증

#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우리나라 승무원 분들의 한국말이 들리면 안도감이 든다. 내가 조금은 긴장을 내려놓고 어리버리해도 챙김 당할 것 같은 심리적인 이유에서.

# 현실에 적응하느라 바쁘지만 나도 모르게 잠재된 그 여운이 있다. 그런데 귀신같이 그 여운을 건드리면 반응하게 되어있다.

(Airbnb에서는 호스트가 나의 후기를 남겨 나도 후기를 남기게끔 유도했고, KLM에서는 귀국을 환영합니다 라는 메일을 보냈다. 메일에선 '벌써 다음에는 어디로 가볼까?라는 생각이 드세요?' 라고 묻는다.)

# 주말이라서, 새벽이라서, 아침이라서 뜨겁고 매운 라면을 끓여 먹는다.

# 눈이 마주치면 모르는 사람이지만 눈인사를 할 뻔한다.  

# 5개월 정도 적응된 출근길인데 환승역을 잊어버려 지하철 노선도를 다시 확인한다.


나(현지인)도 현지화 기간이 필요하다.

#서울라이프패치






10일의 휴가가 있다면. 포르투갈

때로는 기대하지 않고 본 영화가 인생 영화가 된다. 포르투갈은 그렇게 내 인생 여행지가 되었다.

대부분은 스페인 가는 길에 들리는 여행지라 하지만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고 많이 들린다고 합니다.) 포르투갈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여행지다. 10일의 휴가가 있다면 포르투갈을 가보는 것을 추천할 정도로.

포르투갈 이야기 없이 포르투갈 여행기의 서론을 겨우 풀었다.

포르투갈의 그림같은 순간들. 찬란했고 따뜻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