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의식주의 삶. 쿠타
쿠타(Kuta)는 관광객으로 복작거리지만 1인 여행객에게는 복잡할 일이 없다. 바다가 보고 싶을 땐 가볍게 조리를 끌고 나가면 된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스쿠터를 타고 식당으로 카페로 간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일지라도 쿠타의 매력은 초보 서퍼들에게 좋은 바다에 있다. 단순한 일상에 서핑이라는 다이내믹한 액티비티가 있으니 무료할 일이 없다. 서핑과 노을을 즐기러 쿠타에만 머무는 사람도 있다.
카라카라인(caracarain)은 서핑을 하러 온 기분을 마음껏 낼 수 있는 숙소였다. 가격도 1박에 2만 원 내외로 저렴한 도미토리였다. 부담이 적어 숙박비에 2인실을 예매해 혼자 방을 쓰는 작은 사치를 누렸다. 관광지 발리에서는 숙소가 많아 잘 찾아보면 저렴하게 좋은 공간을 누릴 수 있다.
나름 인테리어를 신경 썼는지 곳곳에 귀여운 구석들이 있었다. 해변까지는 10분 내외로 걸어갈 수 있었고, 서핑을 끝내고 돌아오면 따뜻한 물로 씻을 수 있었다. 조식도 나왔는데 Fancy 하게 나오니 고르는 재미가 있었다. 여러모로 가성비가 좋은 숙소였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비가 막 그친 해변을 걷기 시작했다. 해변가에 도착하기 무섭게 서핑을 가르쳐준다는 많은 흥정가들이 말을 걸었다. 수많은 흥정가들에게 밀려 걷다 보니 해변의 마지막 즈음에 도착했다. 보드를 정리하고 있는 형광색 벙거지 모자를 쓴 친구에게 접근했다. “너도 서핑을 가르치니?” “응”. “그럼 내일 나 가르쳐줄 수 있니.” “그래. 아침 9시 만나.”
복잡하지 않은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큰 고민 없이 바로 약속을 잡았다.
다음 날,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고단함도 잊은 채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아침잠이 많은 내가 아침운동이 설레어 깬 건 처음이었다.
아침 일찍 도착한 해변가에는 이미 파도를 타려고 분주한 모인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바다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물의 온도는 적당히 시원했고 잔잔한 파도들이 계속 밀려왔다. 때를 기다리다 파도가 몸을 밀어내는 순간 가볍고 빠르게 일어서 파도 위에서 중심을 잡는 연습을 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바다에서 중심을 잡고 일어서는 건 쉽지 않았다. 굉장한 파도가 얼굴로 돌진할 때는 ‘하이파이브!’를 외쳐주었다. 손바닥이 마주치듯 크게 부딪히고 나면 온 몸으로 물을 뱉어냈다.
몸의 중심인 코어에는 힘을 주고 팔과 다리의 몸의 긴장은 풀어야 했다. 하지만 긴장감 가득한 초보자의 무거운 무릎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잘 타고 싶어!라고 마음먹으면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매번 넘어졌다. 인생의 기본적인 교훈이 서핑에도 적용될 줄이야. 20번은 넘어졌고 그중 5번 정도는 겨우 일어섰다.
여름 신발을 가져갔지만 바다를 걷거나 비를 맞고 나면 모래 투성이에 물을 머금고 무거워졌다. 매일같이 신발을 씻다 보니 왜 쿠타 사람들이 하나같이 조리를 신고 다니는지 이해가 됐다. 마침 발리에 오면 기념품으로 Fipper 조리를 사기도 한다니, 가벼운 마음으로 매장에 들렸다. 조리를 챙겨갈 필요도 없이 발리에 도착해 하나 사면 그만인 가격이었다. 조리까지 장착하니 현지인이 된 듯 마음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길을 걷다가 바다에도 발을 담그기도 하고 금발 털어내어 걷다 보면 쉽게 마르기도 했다. 조리는 걷기 불편할 수도 있지만 단 10분의 거리도 스쿠터(고잭)만 타면 5백 원~1천 원 내외로 이동할 수 있으니 크게 불편함이 없었다.
잠시 쉬었다 카페로 향한다. 평일 3시쯤엔 사람도 별로 없었다. 발리의 건강식에서는 아보카도를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었고, 현지식도 한식과 비슷한 결이 있어 입맛에 잘 맞았다.
근심을 잠재울 수 있는 책을 가져왔지만 근심이 없어 책이 읽히지 않았다. 운동도 하고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으니 평소에 즐겨 듣던 차분한 음악을 들으려고 했지만 다운된 정서에 공감이 어려울 정도로 마음이 들떠 있었다.
마지막 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핑크빛으로 물든 바다와 노을에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다. 옆에서 같이 사진을 찍던 친구는 발리 현지인이었는데, 퇴근길에 바다에 들려 노을을 본다고 했다. 바다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핑크빛 노을은 하루의 고단함을 다독여줄 만큼 정말 황홀하게 아름다웠다.
한 친구가 의자에 앉아서 보라고 여러 차례 말을 걸었지만 이제는 쿨하게 거절하는 여유가 생겼다. 그러자 어차피 영업시간도 끝났고 그냥 음료는 안 사도 되니까 앉아서 이야기나 하자고 해서 노을이 좀 더 내려앉을 때까지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발리의 다른 섬에 사는 돌리는 잠시 발리에 와서 해변가에 머무르며 서핑을 가르쳐 주고 있다고 했다.
쿠타에 와서 내내 궁금했다.
발리 사람들은 아시아 사람마다 각각의 언어로 인사말을 건네길래 쿠타 사람들은 어떻게 한눈에 한국인 와 중국인 일본인을 구별할 수 있는지 그 비결을 물었다. 중국인은 흰 드레스를 입고 있고, 일본인은 청바지를 입고 있으며 한국인은 셀카봉을 들고 한국 스타일의 화장을 하고 있다고 한다. 머쓱했지만 내 손에도 셀카봉이 있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말이 잘 통하는 친구를 만난 기념으로 쿠타에서 머무는 일정을 늘려 내일 돌리에게 서핑을 배우기로 했다.
강한 햇살에 선크림에 징크까지 꼼꼼하게 바르고 래시가드에 모자까지 챙겨 나갔다. 돌리는 날 보자마자 한국인들은 모두 검은 래시가드를 입는다고 덧붙였다.
서핑도 좋았지만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며 돌리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친해진 기념으로 1.5k(1.2만원 내외)에 2시간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 바다로 향하고, 돌아와 점심을 맛있게 먹고 잠시 쉬었다가 카페를 들린다. 마사지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노을을 보다 보면 의식주만을 고민하는 단순한 삶이 완성된다.
쿠타는 관광객과 호객행위로 조용할 틈 없는 도시형 관광지라 호불호가 있다. 하지만 내일은 뭐하지, 저녁엔 뭘 먹지, 내일은 날씨가 좋을까. 난이도가 낮은 의식주의 문제들만 고민하다 보니 선택이 어려운 사람들도 답도 쉽게 내릴 수 있다. 저렴한 물가에 실패해도 기회비용이 낮다. 도착한 곳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새로운 곳으로 자리를 옮기면 된다.
발리 내에서도 택시기사들의 반발로 고잭을 잡기 어려운 지역들도 있는데 쿠타는 특히나 고잭으로 이동하기 편한 지역이었다. 모든 것들이 너무 잘할 필요가 없어 더욱 마음을 내려놓기 쉬웠다.
아름다운 바다와 수더분한 느낌이 편했던 도시,
쿠타 안녕! 이제 짱구로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