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더 좋은 발리
치앙마이에 가서 원 없이 쉬려고 했건만, 봄 언저리즘은 치앙마이가 밭을 태우는 기간이라 미세먼지가 가득하다고 했다.
미세먼지를 피해 좋은 공기만 마셔도 좋을 것 같았는데, 치앙마이는 아쉽지만 다음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은 발리. 출국 2주 전에 급하게 발리 행 비행기 표를 구매했다. 여행은 원래 이런 식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여행지에서 한 곳에만 있어도 좋지만 발리는 쿠타, 짱구, 스미냑, 우붓, 롬복 등 선택지가 너무도 많았다. 하나씩 살펴보니 쿠타는 초보 서퍼들에게 좋은 지역이고, 짱구는 비치와 카페가 아름다운 곳이며 우붓은 자연과 요가로 유명한 곳이라 했다. 요가를 하면서 평화를 누리는 것이 가장 마음 편할 일이었다. 충분한 휴식을 가지고, 시간이 남으면 서핑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처음 만나는 발리의 루트는 쿠타 → 짱구 → 우붓으로 정했다.
비수기라 쿠타와 우붓의 숙소만 결정하고 중간 2일 정도는 상황에 따라 여유 있게 잡기로 했다. 어딜 가든 ‘발리’에 도착하면 무엇이라도 할 것 같았다 !
출발하는 날은 어찌나 흐렸는지 비행기는 뜰 수 있을까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생각해보니 비행기와 첫날과 마지막 날 숙소만 짜 놓은 빈틈 투성이 여행 계획이었다. 출발 전에 이미 무거워진 짐가방도 한몫을 했다. 수영복에 요가복까지 잔뜩 담은 짐가방을 들고 면허도 없이 세 군데나 이동할 수 있을까. 공항으로 가는 길에 환전, 유심, 이동수단, 흥정 등 현지에서 혼자 덤벼내야 할 문제들을 곱씹었다.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헤쳐내면 한 단계 성장할 것 같은 설렘도 있었다.
#환전
인도네시아 화폐는 한화를 달러로 환전한 뒤, 현지 발리 환전소에서 한번 더 환전해야 한다. (발리에서 환전소를 고르는 것도 큰 일이었는데, 다음 편에서 자세히 적어보자.)
토스로 미리 환전을 해두었지만 수령지는 출국 층이 아니라는 사실을 공항 은행이 문 닫기 15분 전에 깨달았다. 예상치 못한 첫 난관에 초인력을 발휘해 캐리어를 쥐어 잡고 숨 쉴틈도 없이 달려갔다. 이런 손님이 처음은 아닌 듯 편하게 웃어 주고는 안심이 되는 빠른 손놀림으로 100달러를 꺼내 주었다.
100달러짜리가 가장 환전 가치가 높아요. 안전한 여행되세요 :)
보통 작은 단위 화폐와 적절히 섞어 받지만, 환전 시 화폐의 가치는 100달러짜리가 가장 좋다고 한다.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진을 빼버렸지만 천만다행이었다.
#기내식
이름이 익숙한 저가항공편을 예약했는데, 후기를 보니 의자가 조금 불편하고 모니터가 따로 없다고 했다. 하지만 환승 대기시간(2시간)을 포함해 9시간 정도면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가격이 나쁘지 않았고, 거의 자정이 되어 출발하는 밤 비행기라 한 숨 자고 일어나면 될 일이었다.
그래도 기내식이 맛있다는 평이 있었다. 사전에 결제하거나 현장에서도 결제할 수 있는데, 블로그에서 ‘최고의 기내식’이었다는 글을 보고 혹해서 왕복 4번의 비행기 모두 기내식을 주문해 두었다.
실수로 치킨 요리만 두 번 연속으로 시켜 고추장 베이스의 치킨밥과 간장 베이스의 치킨밥을 먹었다. 생존을 위한 의무감으로 속을 채웠다. 가격은 저렴한 편이라 나쁘지 않았지만 ‘최고의 기내식’은 어디서 나온 표현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여행길에 적는 블로그 후기는 기분이 업이 되어 있음을 잊지 않기로 다짐했다.
환승한 비행기에서는 발리로 향하는 분위기가 물씬 났다. 크게 두 분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을린 얼굴에 멋스럽게 새겨진 타투로 힙함을 풍기는 사람들은 서핑을 하러 온 듯했고, 화장기 없는 차분한 얼굴로 가벼운 운동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은 요가 전문가의 포스를 풍겼다.
분야가 뚜렷한 두 갈래의 무리 속에서 나는 아직 어떤 분류에도 속하지 않은 채 계절감에 맞지 않은 점퍼를 목 끝까지 채우고 있었다. 돌아갈 때쯤이면 나는 어떤 분류에 속해 있을지를 생각하며 마냥 신기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Welcome to Bali!
발리에 도착하자, 승무원이 건넨 한 마디에 갑자기 뭉클했다. 오랜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여기까지 날아왔구나 싶었다.
출국 전 공항에서 숙소까지 이동하는 교통수단이 마땅하지 않아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역시나 택시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카풀 서비스도 있었지만, 택시기사들의 반발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고카나 그랩을 공항 근처에서 이용하긴 어렵다고 했다.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다 미리 예약해둔 클룩(Klook) 기사를 찾아 유심칩까지 함께 받았다. 큰 어려움 없이 쿠타에 있는 숙소까지 8천 원 정도로 갈 수 있었다. 택시 흥정에 자신이 없다면 클룩을 이용하는 것도 추천한다. 출국 전 미리 예약만 하고 간다면, 유심까지 한 번에 구매할 수 있다.
도착해서 현지 기사 분과 연락을 해야 할 수도 있으니, 왓츠앱을 미리 깔아 두는 것을 추천한다. (아직 클룩 가입을 안 하셨다면, 친구 초대 할인 코드 ‘HYGUL’를 입력하고 적립금 3500원 받으세요 :D)
클룩 기사 분을 만나 숙소로 향하는 길에 테스트로 10만 원 정도만 환전을 해볼까 싶었다. 하지만 모든 곳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이방인의 시선에서 환전 사기가 없는 곳을 알아내기 쉽지 않았다. ‘사기가 없는 환전소 추천해주세요!’라고 물어봤다.
잠시 고민 하시더니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 멈추었다. 길가에 있는 환전소였지만 호객행위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모습에 묘하게 신뢰가 갔다. 기사 분께서 너무나도 친절하게 우산도 빌려주었고 환전하는 것도 도와주셨다.
그렇게 도착한 쿠타에서는 대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발리의 계절은 우기라고 했지만,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이길 간절히 바라며 숙소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