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치 자기계발서 또는 과학적인 척만 하는 유사과학책처럼 보이는 제목에 호기심이 일어서 매우 비판적인 마음가짐으로 읽기 시작한 나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철저하게 과학적인 책이었다. '우연'이라는 것을 물리학적으로 분석하는 책이라서 나는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었지만 똑같은 이유로 책의 판매량이 걱정될 정도였다. 이 책의 내용을 담은 정확한 제목은 "우연이란 (과학적으로) 무엇인가?" 정도가 될 것 같다.
(이 책의 제목도 아마도 너무 과학적인 내용이 걱정된 출판사에서 고육지책으로 의역해서 붙인 것 같다. 원제를 직역하면 "확률, 세계와 당신: 행복의 과학"이다. 분명히 제목에 "과학"이라고 적혀 있다.)
'우연'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우연'이 얼마나 우리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지, 똑같은 자세, 똑같은 지식을 가지고 똑같이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우연에 의해 누구는 성공을 하고 누구는 실패를 한다는 예를 들면서 우연 크게 힘입어 '성공'한 사람들이 마치 '생존자 편향'에 빠졌던 영국 공군처럼 자신의 비결을 성공의 유일한 전략이었던 것처럼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자기계발서들의 의미없음에 대해 신랄하게 까는(?) 부분이 참 속시원했다.
계몽주의 이후 신의 섭리와 운명이 의미를 잃어가고 인류는 자유로운 존재로 인식된다. 특히 뉴턴 이후로 수학적 방법론으로 자연현상을 설명하고 천체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게 되면서 한 때 인간들은 자신들이 세계의 구성원리를 이해했고, 더 많은 것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분석할 수 있게 된다면 세상 모든 일을 예측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자만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경험을 통해 처절히 알고 있듯이 우리 인생의 수많은 부분은 운과 우연에 의해 결정된다. 이 책은 단순히 우연에 의해 벌어지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연'이란 무엇이고 우연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파해치기 위해 양자역학과 카오스이론을 이용하는 과학책이다.
우연은 단순히 원인의 부재인가?
따져보면 꼭 그렇도 않다. 예를 들어 우리 모두 로또 추첨은 순전히 우연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은 추첨기 안에서 정신없이 운동하는 로또 공들의 움직임을 역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양자역학을 거론할 필요도 없이 고전 역학 만으로도 공의 움직임을 지배하는 운동방정식을 쓰고 시간에 따른 공의 움직임을 꽤 정확히 해석할 수 있다. 이런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우리가 로또의 움직임을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순전히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초기 공의 위치, 공기의 미세한 흐름, 비탄성 충돌의 결과 등 미세한 초기조건의 차이가 카오스적 거동으로 인해 큰 차이를 만들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 모든 정보를 알지 못하는 인간은 그것을 우연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게 된다.
나비의 날갯짓 하나가 태풍을 일으킨다고 흔히 비유되는 카오스이론처럼 이 세계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카오스 이론에 따르면 모든 발걸음, 눈 깜박임 하나가 결국 우리 삶과 인류의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우연을 설명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양자역학적 불확정성에 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우리에게 가능한 결과와 그 가능성을 알 수 있지만 어떤 결과가 나올 지 예측할 수 없다. 가능성(확률)은 알 수 있지만 그 결과는 순전히 우연이다. 양자역학적 우연은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말하는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근본적인 우연성이다.
이런 '우연'에 대한 분석은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으로 연결된다. 우리 인간의 뇌는 사건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기 보다 단순히 우연이라고 생각하도록 진화되어 왔다. 결국 우리의 제한된 두뇌, 제한된 감각, 제한된 수학적 능력 때문에 인간은 어차피 이 에상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예측할 수 없고, 그 우연의 근본적 원인이 우라늄 핵분열 같은 양자역학적인 의미든 로또나 일기예측처럼 카오스적 정보의 부족이든 우리에게는 똑같은 우연이라고 느껴진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