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효능

20년간 1000권의 책을 읽고

by 독서의 효능

왜 그렇게 책을 열심히 읽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농담처럼 "숙면을 위해서"라고 답한다. 실은 농담보다 진담에 훨씬 가깝다. 잘 시간이 되어 침대에 들어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 각성 수치가 서서히 낮아지며 천천히 물에 가라앉듯이 자연스럽게 깊은 잠에 빠질 수 있다. 가끔 책 없이 다짜고짜(?) 불을 끄고 눈을 감고 잠이 오길 마냥 기다리고 있으면 뭔가 어색해서 "잠은 어떻게 드는 거였더라? 이렇게 가만히 누워있으면 저절로 잠이 드는 거였나?"라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을 정도다. 독서수면유도법의 효과를 높이는 팁이 있다면 점차 어두워지는 의식의 전구가 깜빡 꺼졌다 돌아오는 순간이 왔을 때 최대한 빨리 불을 끄고 눈을 감아야 한다는 것이다. 깜빡임을 극복(?)하고 책을 계속 읽다 보면 수면유도효과가 극적으로 감소하거나 오히려 불면을 초래할 수 있다. 20-30분 정도 책을 읽다가 눈을 감으면 1분 안에 잠이 들고 눈을 뜨면 바로 아침이라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유일한 "독서의 효능"이다.


독서라는 행위가 희귀해지는 요즘이다. 한국에서 성인의 40%정도가 일 년에 책 한 권 읽지 않는다는 조사결과는 몹시 의심스럽다. 나머지 60%는 책을 일 년에 한 권은 읽는다는 말인데 주변을 둘러보아도 책이라는 물건에 전혀 손을 대지 않는 사람이 80%는 되어 보인다. 취미가 '독서'라고 하면 너무 흔해서 묻는 이를 실망시키던 시절이 분명 있었는데, 지금은 '독서'라는 취미가 오히려 "(요즘에도) 책을 (자발적으로) 읽어요?" 라는 놀라움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TV에서 봤지만 실제로 만난 적이 없는 스킨스쿠버 동호인을 보는 것처럼. "어떤 책이요?"라는 후속질문에는 예전처럼 자신과 독서취향이 비슷할지 궁금해서라기보다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읽지 않아도 되는 책을 자발적으로 읽는지를 묻는 순수한 의아함이 담겨있. 여기서 내가 재테크나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소설도 읽고 역사, 과학, 지리 서적 등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대화가 주로 끊긴다. 스킨스쿠버가 취미라면 다양한 질문이 이어질테지만, 마치 전공이 전기전자공학이라고 답하면 더 이상 이 주제로는 대화가 지속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달까. 특히 내가 '골수 이공계'에 몸담고 있어서 주변에 책 읽는 사람이 더 드문 것 같기도 하다 (편견일 수도 있다. 전공이나 직업 별 독서율 조사가 있다면 흥미로울 것 같다).



일본 드라마 <중쇄를 찍자!>에는 "우리 모두에게는 보이지 않는 날개가 달려 있어. 멋진 날개로 키워내고 싶다면 책을 많이 읽으렴. 책의 형태는 새의 형상이란다. 책을 읽는만큼 강하고 부드러운 날개로 자라날 거야. 그럼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을 거야"라는 멋진 대사가 나온다. 책장에 꽂았을 때 보이는 부분을 책등이라 부르고, 앞뒤표지에서 접히는 부분을 책날개라고 한다. 페이지 상단에 크게 인쇄되는 챕터(chapter)의 어원이 라틴어로 머리를 뜻하는 caput인 것(captain, capital도 어원이 같다)으로 보아 책을 옆으로 누이면 새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책을 새의 형상이 되도록 옆면으로 세우는 것은 영 불안한 자세다. 책은 보통 '등'이 지면에 수직이 되도록 세워서 보관하는 데다 페이지의 하단에 다는 주석을 footnote(한글로는 '다리 각'자를 쓴 각주)라고 부르는 것을 생각하면 책은 직립보행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아는 동물 중에 후보는 사람과 펭귄 밖에 없다. 사람에게 없는 날개까지 갖춘 최적의 후보자인 펭귄을 탈락시킬 논리적 이유는 없지만,,, 나에게 책은 사람의 형상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은 딴지일 뿐, 드라마에서처럼 책을 읽는 사람은 강하고 부드러운 날개를 갖게 될 것이라는 말은 나도 100% 공감한다**.

*(설마해서 찾아봤는데 영국의 출판사 펭귄북스의 펭귄 로고는 특별한 이유 없이 동물원에서 펭귄을 보고서 만들었다고 한다.

**(공대생으로서 드는 "강하고 부드러운" 것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접어둔다면).



반찬에 들어가는 재료 하나에도 효능을 살피는 대한민국에서, 세상의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원되는 요즘 시대에, 가성비 계산식의 분자가 0인 행위에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일은 의미가 별로 없어 보인다. 나는 왜 20년 동안 1,000권의 책을 읽어왔나?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책이 사람의 형상이라면, 책은 사람에게 어떤 '(그런 것이 있다면)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 의미는 언제까지 유효할까? 인쇄혁명 이후 500년 간 인류역사에서 유별났던 읽고 쓰는 시대를 뒤로 하고 다시 말하고 듣는 시대로 되돌아갈까? 여러모로 혼란한 요즘 요즘 책을 읽으며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1,000권이 독서생활의 목표인 적도 없었고 1,000권을 읽었다고 앞으로 독서생활이 달리질 것도 아니겠지만, 마침 20년과 1,000권을 찍은 것을 나름 기회로 삼아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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