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과 전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

by 독서의 효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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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서울대 추천도서 100권> 같은 명저,필독서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책이다. 독일 출신의 양자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하이젠베르크는 '양자물리학'라는 학문을 정립한 사람 중 하나이기도 하다) 가 쓴 <부분과 전체>는 오랫동안 읽어야지 생각만 하면서도 섯불리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저런 권위있는 기관들이 좋아하는 책들은 대체로 재미가 없기 때문이었을까.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지난 학기에 <반도체 공학>이라는 과목을 강의하면서였다. 반도체물리에 쓰이는 양자역학적인 이론을 설명하면서도 나는 사실 교과서에 적힌 이야기 정도만 이해해서 전해줄 뿐 양자역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런 무지에 대한 '찔림' 때문인지 수업시간에 분위기 전환 겸 20세기 초반의 개성 강한 양자물리학자들의 개인사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게 되었다. 사소한 에피소드 몇개로 시작했는데 하다보니 나도 재미있어서 나중엔 수업준비보다 과학자들에 대한 조사를 더 많이 할 정도였다. 플랑크, 페르미, 디락, 보어, 슈뢰딩거, 파울리 등 인류 지식적 혁명을 일으킨 역동의 20세기 초였던 만큼 이 무렵 등장하는 쟁쟁한 양자물리학자들은 마치 지어낸 영화 속 캐릭터처럼 개성이 강하다. 그만큼 이야기거리도 많다.



그러다보니 나도 그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더 많이 가지게 됐고, 양자 물리학을 공부하긴 어려우니 그들이 쓴 책을 읽어보자는 호기심에 도달하게 되었다.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읽었고, 생각보다 잘 읽히며 흥미로웠던 기억 덕분에 '추진력을 얻어'서 '끝팥왕' 아우라를 풍기는 <부분과 전체>를 감히 시작할 엄두를 내게 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당연히 쉬운 책은 아니었다. 자기 전 침대맡과 반신욕 욕조 속, 두 군데에서 대부분 이루어지는 나의 독서생활에서 비록 덥긴 하지만 침대에 반쯤 누운 것 보다는 정신은 멀쩡한 욕조 속이 훨씬 집중이 잘 되기 때문에 보통 잘 안 읽히는 책을 반신욕에 가지고 들어가게 된다. 이 책은 반신욕 13번 정도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이 읽기 쉽지 않은 이유는 이 책이 과학서도 아니고 철학서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과학서이기도 하면서 철학서이기도 하다는 게 더 적확한 표현일 것 같다. 철학적 사고에 익숙한 사람이라도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대화에서 주제가 되는 양자역학적 개념이 너무 어려워서 읽기 힘들 것이고, 양자역학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하이젠베르크가 던지는 철학적 논의가 버겁게 느껴질 것이다. 물론 철학도 모르고 양자역학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은 더더욱 읽기 어렵다.



이 책은 양자역학의 혁명적 개념이 탄생하던 20세기 초반부터 양자역학 이론이 정립되고, 이어서 이론물리학의 범위를 벗어나 원자폭탄이라는 거대한 파급력으로 현실세계에 존재감을 드러내기까지 격동의 30여년 간 하이젠베르크가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등 다양한 과학자들과 만나 과학과 철학에 대해 토론한 대화들로 구성된 책이다.



양자역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통해 물질의 확률적 존재를 정립하면서 물질-시간의 절대성과 인과적 예측에 기반한 기존 과학적 토대를 허물어버리고서 31세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천재 과학자다. 이런 과학적 혁명의 시기에 혁명적 이론을 제시한 사람이지만 하이젠베르크는 항상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물음을 멈추지 않았다. 인간이 전에 보지 못하던 현상을 발견하고서 과학적 사고를 통해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여 전에 이해하지 못하던 현상을 완벽히 설명하게 되는 것이 과학의 발전일텐데, 그렇다면 인간의 인식의 한계는 무엇이고, 그것을 안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지, 새로운 양자물리학이 옳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한다. 인간이 가진 최고의 과학적 이론으로 이해하는 '인식의 한계'가 있다면, 그것이 아직 도달하지 못하는, 인간의 인식과는 무관한 궁극의 객관적인 세계가 실재하는 것인지 묻고 답한다. 인물간에 핑퐁처럼 오가는 대화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 질문의 무게보다는 훨씬 잘 읽힌다.



하이젠베르크의 천재성, 나치 치하에서의 활동여부 등을 떠나서 그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과학자로서의 성실성-- 즉 수도사 같은 한결같은 과학적 진실 추구 노력과 지식을 대하는 완벽주의자적 자세, 스스로에 대한 철저한 자기점검과 엄격함-- 은 정말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과학자는 아니지만 과학적 사고를 종교보다 더 절대적 선으로 삼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이 이 책에 별 다섯개를 줄 수 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온갖 영웅들이 차례로 나타나 인류의 인식을 빠르게 넓혀가던 '난세'의 20세기 초반 유럽 물리학계에서 천재 물리학자가 교과서에서 등장하는 유명 과학자들과 강의실에서 격렬히 토론하고, 산책을 하면서 토론하다가 혁명적 이론의 싹을 발견하고, 호숫가 별장으로 가서 또 밤새 토론하는 장면들은, 아.. 정말로 멋지다.



나도 100% 인정한다. 이 책은 서울대 추천도서 100권, 아니 추천도서 10권 안에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하지만 서울대 추천도서에 가장 관심을 가질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이 읽기는 많이 어려울 것 같다. 어쨌든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으로도 개인적으로 누구에게나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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