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의 수프카레들
사계절은 모두 아름답다.
저마다 가진 매력을 비교하는 일은 무의미할 만큼 상이하지만 그래도 그중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겨울을 꼽겠다. 다른 사람들보다 손발이 차지는 현상이 심한 내가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비현실적으로 눈이 많이 내리는 땅 북해도를 겨울에 찾아갔고 단번에 마음에 들었다.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렇게 단순하고 바보 같은 이유로 삿포로에서 2년 넘게 살면서 세 번의 겨울을 맞았다. 그곳에서 살고 계시는 분들께 눈을 치우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지긋지긋한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다. 막상 생활해 보면 생각이 좀 바뀔 거라는 말도 덧붙여서 말이다. 실제로도 그렇긴 했다. 유난히 긴 겨울은 춥고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지금도 나는 겨울과 눈을 변함없이 좋아한다. 그리고 그것은 북해도가 가지고 있는 내가 몰랐던 여러 가지 것들과 맏물리면서 더 좋아지게 됐다. 맛있는 먹을거리가 가득한 북해도이니 그것은 물론 먹을거리와 연결된다.
옷을 세어야 할 만큼 겹쳐 입고, 눈 외엔 신체가 밖에 드러나지 않도록 전신을 꽁꽁 감싸고, 신발 안쪽을 따뜻한 털로 감싸 튼튼하게 만든 부츠를 신고도 발이 시릴 만큼 추운 날 먹는 삿포로의 라멘이나 수프카레의 맛은 몇 마디 말로 이야기하기엔 너무 부족하다. 눈이 펄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먹는 오뎅 모리아와세와 맥주 역시 그렇다. 맛있는 우유와 치즈, 그래서 맛있을 수밖에 없는 수많은 스위츠들, 달콤하고 아삭아삭한 옥수수, 깊고 풍부한 단맛을 간직한 유바리 멜론, 이 모든 것들은 북해도의 땅에서 나고 자라거나 북해도의 땅에서 나고 자란 것들로 만들어진다.
삿포로는 북해도의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먹을거리를 이야기하자면 그 중심에 있다.
나는 먹는 것을 유난히도 좋아하는 사람인데 삿포로는 그야말로 맛있는 것들에 파묻혀 있었다. 새로운 음식에 대한 호기심도 많은 터라 2년 동안 머물면서 삿포로 주민이나 유학생보다는 조금 많이 가게들을 방문했다고 생각한다. 별로 가진 것 없는 유학생이 들락날락한 가게들이라 평범하고 소박한 곳이 많겠지만 그래도 카테고리 별로 내가 좋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선별해 알려드리고자 한다.
우선 첫 번째로, 수프카레 가게에 대해 이야기할까 한다. 눈 내리는 추운 날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음식이 있을까 싶을 만큼 삿포로의 겨울과 수프카레는 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셀 수 없이 많은 수프카레 가게들이 존재하고 있어서 그중 몇 곳만 꼽는다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런데 비단 그것은 수프카레뿐 아니라 삿포로 라멘이나 디저트 가게들도 마찬가지이니...
지금부터 삿포로에 자리 잡고 있는 맛있는 가게들을 동네 산책하듯 천천히 탐방해 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