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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ie Yang Feb 22. 2019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

대한민국 중증외상센터의 속 터지는 어제와 암울한 오늘에 대한 기록....


개인 평점 :  4.0  ★★★★

서평 :  대한민국 중증외상센터의 속 터지는 어제와 암울한 오늘에 대한 기록. 그의 분투와 작은 도움들이 만들어 내는 내일을 기대하고 싶은 책. 그러나, 여전히 현재 진행형.



 먼저, 이국종 교수의 책을 소개하기 전에 최근 그의 기고문에 대해서 먼저 공유한다. 병든 응급의료를 떠받치던 '아틀라스' 윤한덕 센터장의 안타까운 부고 소식은 응급 의료계를 버티고 있는 그들의 분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힘든 하루를 버티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번에 소개할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는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작은 독서토론 모임에서 2019년 첫 토론 도서로 선정된 책이다. 처음 이 책에 대한 느낌은 생고생하는 이국종 교수를 누군가 열심히 꼬드겨 대필 형태로 출간한 자서전 성격의 책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큰 기대를 가지지 않고 이 책을 손에 들었다. 물론, 독서토론 모임에서 기대 이상의 책이라고 얘기를 해주었지만, 이 책을 손에 들기 전까지는 그저 흘려듣는 수많은 추천 얘기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두 권을 읽으면서 그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커져만 갔고, 이 책은 그저 그런 그의 자서전 성격을 넘어선 중증외상센터의 분투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봄이 싫었다. 추위가 누그러지면 노동 현장에는 활기가 돌고 활기는 사고를 불러, 떨어지고 부딪혀 찢어지고 으깨진 몸들이 병원으로 실려 왔다. 봄기운에 밖으로 이끌려 나온 사람들이 늘었고, 늘어난 사람만큼 사고도 잦아 붉은 피가 길바닥에 스몄다. 병원 밖이 형형색색 꽃으로 물들 때, 나는 무영등 아래 진득한 핏물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 골든아워 1 Page 17)

 누구에게나 좋기만 할 것 같던 봄이 싫었다고 시작한다. 핏물 속에 허우적거리는 그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 책에는 유난히 붉은 색의 핏물에 대한 표현이 많이 나온다. 아마 그의 일상속에 쉽게 접하는 상황들과 잊혀지지 않는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면서 나오는 표현이 아닐까한다.


 나는 머리를 두드리며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집중해보려 애썼다. 수많은 생각들을 걷어냈을 때 남는 것은 하나였다. '에어 앰뷸런스가 없으면 석 선장의 생환은 불가능하다.' 내가 사인한 팩스를 보내려는데 김지영과 김후재가 막아섰다. 김후재가 내 팔을 잡았다. "교수님, 이건 아닙니다. 이렇게까지 하시는 건 아니지요. 이건 교수님이 책임질 사안이 아닙니다" 서류는 김지영의 손에서 여러 차례 잘게 찢겨나갔다.  (중략) 김지영이 사인된 사류를 모두 찢어 버렸으나 난 다시 서류를 받아서 그들 모르게 사인했고, 그대로 보냈다. 돌이킬 수 없었다.
(골든아워 1 Page 236)

 석해균 선장의 사건 때, 오만에서의 분투를 설명한 내용 중의 일부이다. 이국종 교수의 길이 많은 부분이 일반적인 길이 아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아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는 원칙에 기반하여 행동한다. 문제해결의 본질을 파고들어 핵심을 찌르는 형태로 해쳐나간다. 아덴만 사건의 석해균 선장의 사례도 비슷하였다. 물론, 나중에 보이지 않는 많은 손들의 도움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완료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중환자실 자리가 없어 여전히 응급실 급성구역 병상을 얻어 써야 했고, 팀원들은 감당 불가능한 당직 일정과 환자 부담을 버텨내며 헬리콥터에 올랐다. 모두가 극심한 악조건 속에서 일하고 있으나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 병원의 보직자들은 헬리콥터의 소음을 여전히 문제 삼았고 별것 아닌 환자들로 쇼를 한다는 말까지 뱉어냈다. 병원 앞 아파트에 사는 직원 한 명은 한밤에 병원을 오가는 헬리콥터 소음에 대해 권준식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중략) 간호대학에서도 민원이 올라왔다. 간호학과 학생 한 명이 헬리콥터 소음에 '학습권'을 침해받는다며 항의했다고 보직교수는 내게 쏘아붙였다. 훗날 의료 현장을 지킬 간호대학의 학생일 텐데, 나는 그 학생을 만나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지를 묻고 싶었다.
(골든아워 1 Page 397)

 그렇다. 이국종 교수의 길은 모두에게 환영받는 일이 아니었다. 응급 헬리콥터의 소음은 특히 풀리지 않는 숙제 중에 하나인 듯 하다. 이성적으로는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막상 당할 때는 그 스트레스로 인한 감성적인 폭발은 어떻게 해야 할지. 당연히, 위급한 상황임을 감안할 때 클레임을 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클레임이 많이 들어 온다. 그리고 여러 이유로 인하여 중단되기도 한다.


 병원 내에 외상센터에 대한 뒷말은 여전히 많았고 여러 임상과에서는 중증외상 환자에 대한 협진 의뢰를 반기지 않았다. 일부는 격렬히 반감을 드러냈고 일부는 절묘하게 중증외상 환자 진료를 방해했다. 10여 년이 지나도록 일관되게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이제는 고통보다 지겨움이 컸다. 그러나 치유되지 못하고 켜켜이 쌓이기만 한 상처들은 때때로 내장을 뚫고 나오는 것 같았다.
(골든아워 2 Page 240)
 한국 사회는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고, 그 안에서 각자도생하며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 사회는 영화 <매트릭스>와 흡사하고, 사회가 움직이는 시스템의 근간은 모르는 채 사는 것이 좋다.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는 정부나 사회 시스템을 개선해보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 게 낫다. 일부 '선수'들만이 그런 시스템을 이용해 개인의 이윤을 극대화할 뿐이다.
(골든아워 2 Page 283)

 아덴만 사건, 북한 병사 사건 등 큰 이슈가 되는 사건들을 맡고 환경이 변하는가 싶더니 제자리로 돌아가고, 또 제자리로 돌아가는 풀리지 않는 문제. 이제는 고통이 아니라 지겨움이라고 한다. 10년이 지나도록 그자리라고 모 방송에서도 이국종 교수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그 속에는 양육강식의 정글과 속터지게 답답한 시스템의 문제로 보고 있다.


 AW-139가 내뿜는 익숙한 엔진음 사이에서 최석호가 내 등을 툭 치며 던졌던 말이 들려왔다. "야 인마,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냐.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는거야."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 나는 늘 내가 어디까지 해나가야 할지를 생각했다. 어디로,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답이 없는 물음 끝에 정경원이 서 있었다. 하는 데까지 한다, 가는 데까지 간다.... 나는 정경원이 서 있는 한 버텨갈 것이다. '정경원이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을 이끌고 나가는 때가 오면'이라는 생각을 나는 결국 버리지 못했다. 그때를 위해서 하는 데까지는 해보아야 한다. 정경원이 나아갈 수 있는 길까지는 가야 한다... 거기가 나의 종착지가 될 것이다.
(골든아워 2 Page 316)

 골든아워 마지막 문구이다. 이국종 교수는 정경원을 너무나 애틋한 느낌으로 바라본다. 그로 인하여 버텨왔고, 그로 위해서 앞으로 나가간다. 골든아워 1,2 모두 글 앞부분에 '정경원에게'라고 적혀있다. 여기에 그의 생각들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나는 결국 이국종 교수의 다음 행보는 여의도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성격상 자발적으로 여의도를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다음 행보는 많지않아 보인다. 이제 그가 책임져야 할 정경원를 포함하는 많은 후배들과 그를 따르고 바라보는 또 다른 사람들이 한 두 명에 그치지 않는다. 그리고, 더이상 버티기 힘든 그의 물리적인 몸과 그가 처한 환경이 그를 자연스럽게 여의도행으로 이끌어 갈 듯 하다.


 결국 이국종 교수는 어느 때나 그랬듯이 원칙을 기반으로한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는 멋진 영웅으로 우뚝 서기를 기대해본다. 물론, 정치라는 또 다른 핏물에 허우적거려 헤어 나오지 못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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